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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중현 Oct 05. 2023

사이버범죄 프롤로그(prologue)

데이터가 스스로 교정이 가능해질 때 사이버 스페이스는 자정 능력이 생긴다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Friedrich Max Müller)의 관점에서 바라본 디지털 성범죄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Friedrich Max Müller 1823.12.6. - 1900.10.28.) 독일 출신의  

영국 철학자이자 동양학자이다. 인도 연구에 관한 학문 분야를 서양에서 창시한 사람 중 한 명이다.


도대체 왜 이 순진무구한 어린 시절이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가?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Friedrich Max Müller) 독일인의 사랑(Deutsche Liebe) 中


8월의 어느 날 민원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여학생이 사이버범죄 피해를 당한 것 같은데 상담이 필요하다는 전화였다. 그날은 작년대비 기온 상승이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는 날이었다. 디지털 성범죄인 것 같다는 민원실장의 목소리가 흐려지는 통화를 끝으로 상담실로 향했다. 민원실 구석에서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중학생과 옆에서 울고만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경찰서에서 지방경찰청으로 근무지를 옮겨 10년째 사이버범죄 수사 업무를 맡고 있지만 여전히 디지털성범죄 전담팀에 근무하지 못하는 이유가 저 두 사람의 모습이다.


첫 근무지는 3 급서 시골 경찰서였다.

2014년부터 2021년까지 8년간 혼자서 사이버범죄 업무를 담당했었다. 인구수에 비례해 발생하는 사건 사고 비율로 등급을 부여하는 3 급지 경찰서에는 이렇다 할 지원도 팀원 증원도 없는 최하위 시골 경찰서다. 아무리 최하위 등급의 시골이어도 국경과 관할이 없는 사이버범죄만큼은 균등하다. 특히 경찰서 근무시절 담당했던 디지털성범죄 사건을 계기로 공포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전담팀에 지원하지 않고 있다. 


처음 맡았던 디지털 성범죄는 랜덤 채팅에서 시작되었다.

‘하이 OO’라는 랜덤 채팅 앱에서 만난 남자 친구는 슈퍼스타k 오디션에도 출전할 만큼 괜찮은 노래 실력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학교 남학생과의 카카오톡 채팅 내용을 발견한 뒤로 폭력적으로 변했고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나타나지 않으면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그녀의 삶을 통제하고 있었다. 손목에 가득한 자해 흔적을 가린 채 모자를 눌러쓴 여학생 그리고 옆에서 울고만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마주하면 그들의 두려움과 공포는 담당 형사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당시에는 피해자와 가족의 심리를 보듬어 줄 기관도 없었다. 사건 담당자가 언제 어디서 유포될지 모르는 사진과 영상을 찾아 사이트를 모니터링해야만 했다. 그리고 유포 후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피의자가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해 버리면 모든 책임은 담당 형사가 뒤집어써야만 했다. 그래도 사건 접수 후 5일 만에 체포해 구속시켰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7202306?sid=102 

https://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97048

-관련기사 링크 : 피의자 구속 후 영상물 삭제 차단을 위한 후속 작업까지 한 달이 걸렸다.-



그때 경찰서 근무시절 맡았던 디지털성범죄의 출발점은 랜덤 채팅이었고 지금 경찰청 민원실에 찾아온 사건의 시작도 랜덤 채팅이다. 


추적단 불꽃이 쏳아 올린 ‘N번방 사건’ 이후 달라진 건 랜덤채팅 사용 연령제한 표시 하나가 붙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불꽃이 사회에 던져준 메시지로 디지털 성범죄가 줄었다고 믿고 있었다. 사실 피해를 당한 사람들만의 이야기로 프레임을 씌우고 애써 외면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생산되고 있고 플랫폼이란 공장에서 재생산되어 대량 유포되고 있다. 종류가 더 많아졌고 유통망이 더 촘촘해졌다.  




‘사랑에 대해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사랑은 생명이나 마찬가지로 이미 우리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Friedrich Max Müller) 독일인의 사랑(Deutsche Liebe) 中


경찰청 민원실을 방문한 여학생은 이미 학교 폭력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어머니와 함께 홈 스쿨링을 하고 있었다. 사이버폭력 피해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고자 가족 모두가 스마트폰 사용에는 엄격했다. 하루 중 오전과 오후 정해진 시간에만 사용이 허락되었다. 사이버폭력과 공부에 지쳤던 그녀에게 랜덤 채팅에 접속하는 시간만큼은 누군가로부터 관심과 호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이 시간은 부모님이 주는 사랑과 다른 애틋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녀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의사로 자신을 소개한 그 사람은 공부로 힘들어하는 그녀에게 문화상품권을 보내며 관심과 위로도 함께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부모님에게도 알려준 적 없는 SNS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넘겨준다. 그 어디에도 그녀를 비난할 이유를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대중은 피해자에게 보고 싶은 프레임만 씌워서 볼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계정을 넘겨받은 뒤 원 주인은 접속하지 못하도록 비밀번호를 바꿔버렸다. 어떻게든 계정을 돌려받고 싶어 그 사람의 지시대로 옷을 벗고 카메라 앞에 섰다. 이때 그녀의 마음과 머릿속에 수호천사가 되어줄 누군가를 바로 찾을 수 있는 좌표가 각인되어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가족은 없었다. 나아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반성문을 자필로 작성해 사진을 찍어 올릴 수 있는 대화방이 텔레그램에 개설되어 있었다. 


‘훈육방’


텔레그램에 개설된 훈육방에는 그녀의 이름, 가족관계, 집주소가 공개되어 있었다. 더 이상 상담이 어려울 것 같아 디지털 성범죄 담당자에게 인계하고 자리를 나왔다. 처음 대면한 수사관과 공감대가 형성되면 사건 담당자가 되어 주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어 고소장을 작성하도록 양식을 건네주고 자리를 나왔다.


2018년 9월에는 카카오톡 오픈채팅, 트위터, 텀블러와 같은 SNS에서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과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하는 101명의 피의자들과 마주했다. 진급을 앞두고 있던 IT 계열의 직장인, 대학생, 공기업 외주 직원, 공방(工房) 운영자, 연극배우, 성전환 수술을 준비하고 있던 트랜스젠더에 이르기까지 직업은 다양해도 디지털 성범죄자로 수갑이 채워졌던 그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숙였다.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었다. 그토록 숨기고 싶었던 그들의 자아(自兒)가 드러나는 순간을 부끄러워했다


http://www.ob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28834


101명의 피의자들로부터 압수한 외장하드, USB, 나스(NAS : 네트워크가 결합된 저장장치. 외부에서 언제든지 접속해 자료를 들여다볼 수 있다.), 클라우드(cloud)에 보관되어 있던 영상물은 범죄자들에게 전리품과 같았다. 그리고 그 전리품에 가격을 매겨 유통할 수 있는 시장이 플랫폼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다. 

성착취물, 불법 촬영물의 피해자와 그 영상을 유통하는 피의자들의 스마트폰에는 ‘랜덤채팅’ 앱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가해자의 처벌과 피해자의 잘못에만 집중되었고 정작 이 싸움의 시작이 되었던 플랫폼 회사는 조용히 비켜나갔다. 가해자들의 처벌 수위는 국민들의 법 감정을 만족시키지 못했고 그나마 피해자들은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디지털성범죄와 불법 도박 사이트는 수요자의 지분이 생태계를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제작자와 배포자 그리고 수요자 사이에는 플랫폼의 방관이 숨어있다.

 

이 시작이라는 게 문제다. 시작이라는 건 아예 처음부터 없는 편이 더 나았을지 모르겠다. 바로 그 시작이라는 데서 모든 생각과 기억이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Friedrich Max Müller) 독일인의 사랑(Deutsche Liebe) 中


사건은 피해자들이 남긴 메시지를 시작으로 피의자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 그리고 피의자들의 자백을 담당 형사가 기록으로 만들어 완성한다. 나는 수사관으로 20년, 그중 10년 동안 사이버범죄수사를 하면서 사건 기록에 배어 들어간 피해자들의 삶과 피의자들의 삶을 기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속성값 메타데이터(metadata)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직거래 사기와 같은 정보통신망이용형범죄, 인스타그램 계정 도용과 같은 정보통신망침해형 범죄, 성 착취물 영상과 같은 불법콘텐츠범죄 사이버범죄는 인터넷이 만들어 낸 가장 급진적인 결과물이다. 최근 경제가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를 등에 업고 무차별 적으로 양산되는 가짜뉴스(Fake News)는 주식투자 리딩(leading) 사기꾼들에게는 마치 한 줄기의 섬광이다. 그 섬광으로 드러난 길은 그 길이 성공으로 향하고 있든 말든 무조건 따라가게 만드는 그런 성격의 섬광이다.(출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中)


우리가 아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지나간 사람, 알고 지냈던 사람, 살았던 사람 그 모든 사람은 여기 안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데이터를 만들었고 그 데이터가 연결되어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모든 데이터는 해석이 가능하다. 

모든 데이터는 교정이 가능하다.

모든 데이터가 스스로 교정이 가능해질 때 사이버 스페이스는 자정 능력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는 만큼 보이듯이 보려고 하는 마음, 디지털 문해력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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