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피티 한 번 만들어 본 적 없고 발표 한번 해본 적 없었습니다.
2010년에 개봉한 영화 인셉션(inception)은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 바디 오브 라이즈(Body of Lies), 셔터 아일랜드(Shutter Island)’와 함께 지금도 자주 즐겨보는 디카프리오 영화 중의 하나입니다.
타인의 꿈에 팀원이 함께 들어가 꿈 설계자의 기획대로 임무를 완수하면 잠시 꿈을 꾸고 나온 대상자는 꿈에서 기획된 설계대로 행동에 옮긴다는 설정은 너무도 신선 했습니다.
특이 이 영화에서 아주 인상 깊었던 부분은 타인의 꿈속에서 이론과 실습이 병행되는 ‘현장학습’을 경험하고 꿈에서 깨면 학습한 대로 실행하게 된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절도를 저지르기 위해 마음먹은 범죄자가 사전에 범죄 장소와 대상을 선정하고 범행 도구를 완벽하게 준비 한 뒤, 범죄 실행을 위해 이동하는 기차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 안에서 꿈을 해킹하는 팀을 만나게 됩니다.
이 팀은 범죄자를 잠이 들도록 한 뒤, 다 함께 꿈에 들어가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피해자 가족들이 당하게 될 피해를 생생하게 경험하도록 해 꿈에서 깨어난 뒤 범죄를 저지르는 마음을 접도록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 제가 하고 있는 업무에 큰 영감을 준 장면은 바로 킥(Kick)이었습니다.
영화 인셉션에서 킥(kick)은 수면에 빠진 대상자와 해킹 팀원들을 깨어 있는 상태로 지키고 있던 다른 팀원이 꿈에서 벗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잠들어 있는 팀원들에게 헤드셋을 씌워주고 에띠드 삐아프(Edit Piaf)의 명곡 ‘Non Je Regrette Rien’을 꿈속에서 에코처럼 울려 퍼지도록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잠들어 있는 팀원들을 물에 빠뜨리면서 비로소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데,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전환점이 ‘Use the Kick!, 킥을 사용해!’였습니다.
2013년 사이버범죄 수사 업무를 시작하면서 2014년까지 약 2년 동안 혼자서 200건의 사건을 처리했고 직거래 사기 범죄자들을 구속하면서 누적된 수사 자료를 사이버범죄 피해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업무에 적응되고 난 후 거의 몇 달간은 이 문제로 매일같이 고민하였습니다.
1년에 혼자 100여 건의 사이버범죄 사건을 처리하는 건 형사 1명당 월 50건씩 사건을 처리하는 다른 경찰서에 비해 참고 희생해야 할 처리 건수로 비교될 수 있지만 매 사건을 깊이 있게 처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 케어는 아예 손도 댈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교육밖에 없는 것 같은데, 좀 더 확실히 체감할 수 있는 교육으로 접수되는 사건이라도 줄여 봐야겠다는 목표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사이버범죄 수사팀에서 정리해 둔 피해내용, 체포하고 검거한 범죄자들로부터 확보한 범죄 수법, 사건들을 처리하면서 사이버범죄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조심해야 될 내용을 정리해서 좀 더 체감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할 것 같아 자료를 더 수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이버범죄 예방을 위한 자료 수집에 목표를 정하다 보니 피해 신고를 접수하러 오시는 분들과 자진 출석한 범죄자나 체포해서 압송한 범죄자들 대상으로 그 사람들의 삶에 한 발짝만 더 들어가 인터뷰하고 자료를 수집하였습니다.
사이버범죄 수사 업무를 시작하기 전 2005년부터 교통사고조사계에 6년간 근무한 적이 있는데 한 번은 동일한 교차로 삼거리에서 시간차를 두고 연속적으로 3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현장에 출동한 적이 있습니다.
도로 상황은 신호등 없는 번화가 교차로 삼거리였고 시간차를 두고 저에게 접수된 3건의 교통사고는 모두 승용차량대 승용차량 간 발생한 사고였지만 사고마다 모두 각각의 특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도로 상황은 동일하고 사고 차량도 모두 승용 차량이긴 했지만 운전자는 저마다의 운전 습관을 가지고 있어 동일한 장소에서 사고가 났더라도 과실이 사고 때마다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일시정지 및 서행을 하지 않고 교차로 진입 전 주행속도 그대로 진입한 과실, 두차량다 서행하면서 진입하였지만 직진 차량에 우선권을 주지 않고 무리하게 진입한 과실 등 결국 운전자의 주의 의무가 얼마나 소홀했는지가 가장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
동일한 도로 여건이더라도 결국 사람의 운전 습관 및 행태에 따라 과실 유무가 달라지게 되니 사이버범죄도 피해자와 범죄자를 연령대, 성별, 죄종에 따라 구분해 데이터를 수집하면 예방을 위한 자료를 축척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보통의 경우는 사이버범죄 피해신고를 접수하면 피해자 분들 대상으로,
피해를 당한 사이트 주소.
상대방의 아이디 및 입금한 계좌 거래 내역서.
상대방이 검거되었을 경우 처벌을 원하는지 여부를 토대로 간략하게 조사를 받고 심지어 직거래 사기 사건 같은 경우는 워낙 접수가 많이 되다 보니 정형화된 틀에 맞춰 미리 작성된 간이진술서에 간단하게 답만 작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필요한 데이터들만 수집이 되고 풍성한 자료 수집이 되지 않아 피해자들이 당한 범죄 수법 중 제가 미처 몰랐던 출처 등은 조사를 받으면서 동시에 자료를 캡처하고 교육 자료로 활용하려고 별도로 정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쉬운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신고 접수를 마친 피해자분들은 직거래 사기 사건을 당하면 모두들 나름 중고거래 사기를 걸러내는데 탁월한 수사력을 드러내시는 분들이 많아 저에게 수시로 동일인으로 추정되는 범죄자가 아이디를 변경하여 다른 사이트에 게시글을 올리고 있다는 제보, 피해자가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왜 범죄자가 사용하는 계좌가 실시간 차단이 되지 않느냐는 제보, 왜 범죄자가 올린 글을 실시간으로 차단할 수 없느냐는 제보 등 본연의 업무만 하기에도 벅찬 때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을 위한 필수 도구인 ‘피피티’ 즉 ‘파워포인트’를 전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 번씩 경찰교육원, 수사연수원에 2주씩 교육을 위해 직무과정 교육에 입교하는 경우 대부분 현장에서 취급한 사건들을 교육생들이 발표하는 경우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는데, 저는 그때마다 한글로 작성해 그림과 도표를 삽입하고 한글 문서 그대로 띄워서 발표를 하였기 때문에 굳이 파워포인트를 작성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특히 자원해서 누군가 앞에서 발표하는 건 정말 싫어했습니다.
파워포인트도 못하고 발표를 해 본 적이 없는데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을 한다는 건 당시 욕심을 부렸던 것 같았고, 가끔 빨리 사기꾼 잡아 달라는 거센 민원인 전화 응대에 마음에 상처 받고 지쳐 버릴 때면 그냥 범죄자나 열심히 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압수수색영장, 체포영장 작성하고 외근 활동하면 1달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솔직히 피피티도 해본 적도 없고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해 본 적도 없는데 예방교육을 한다?
예방교육을 한다고 경찰서에 플러스알파가 되는 것도 아니고 100명 예방교육하는 것보다 직거래 사기 범죄자 체포했는데 피해자가 100명이면 정말 유능한 형사라고 인정받는데 제가 가야 할 길이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아 접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피해자분들 신고하러 오면 피해를 당하기 전 피해자들이 간과했던 부분, 피해를 당하게 된 과정 등을 정리해 체크리스트는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잠시 대중들 앞에 서있는 제 모습을 상상하며 유튜브에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3 발표하는 영상을 보기도 하고 TED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이들처럼 당당하게 발표할 수 있을까 고민도 했지만, 그 시간에 범죄자들이 사용한 휴대전화 통화내역 분석에 더 매달려 중고거래 사기의 신 ‘중신’을 하루빨리 검거하는 게 더 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