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중현 Jul 09. 2021

적의 적은 나의 친구인가?

Enemy of Enemy is my friend?

경찰청은 2017년 영국  범죄 수사국 NCA(National Crime Agency UK)로부터 국제 공조 사건을 접수한 뒤 이 사건을 경기북부지방청으로 배당한다.  지방청으로 발령받기 전 이미 사건은 전임자에게 배당되었다가 발령 후 우연히 회의 때 서류를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뭔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 다시 나에게 배당되었다.


사건의 개요는 영국 런던에 있는 무역회사와 국내 경남에 있는 협력 업체 회사 간에 무역거래 중 발생한 사건이었다.

영국과 한국에 있는 회사가 무역 거래 중 이메일이 해킹당하면서 심각한 피해로 이어진 듯했다.

당연히 사건에 대한 지식도 없을뿐더러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 상태였기에 기대감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사건을 하면 할수록 심각한 내용들이 너무 많이 발견되었고 시스템의 취약점 또한 많이 발견되었다.


'12341234'


또 하나 발견한 건 그래도 해외 기업들과 수십억 원의 무역 거래를 하는 기업의 대표들이 사용하고 있는 비밀번호 현실이었다. 심지어는 토렌트와 같은 파일 공유 시스템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었고 업무용 메일과 개인용 메일을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이런 상황은 소규모 사업장이나 1인 기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저희 회사는 오랫동안 회사 간 무역 거래는 전신환 송금(T/T : Telegraphic Transfer)으로만 이루어집니다."


본격적으로 사건을 시작하면서 피해를 당한 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를 시작하자 난관에 부딪혔다. 회사의 거래 시스템과 복잡한 거래 운영 방식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해외 기업 간 거래 시 무역영어가 있을 정도로 복잡했다. 국내의 무역거래 시스템도 못 알아먹겠는데 해외 기업들의 시스템까지 파악해야 하니 괜히 사건을 가져왔나 하루에도 수십 번 후회를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2012년부터 어디에 써먹을지도 모르지만 몰래 준비했던 영어 공부가 결정적인  창과 방패가 될 줄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 당시 경찰청과 IBM이 언제 업무 제휴를 맺었는지 영문법과 토익 준비 대비 온라인 강의를 무료로 수강할 수 있어 출퇴근길과 비번날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교통사고 조사계 근무하면서 관내에서 발생한 미군  SOFA(한미협정 주둔군 지휘사건) 사건과 미군이 연관된 모든 교통사고 통역과 번역은 혼자서 전담했다. 이것도 부족한 것 같아 수강생이 적은 원어민 영어 회화 학원에 직장인을 위해 개설한 수업을 등록해  퇴근 후 6개월간 영어 회화 공부에 매달렸다.

매월 첫 시작은 영어 공부를 하겠다는 직장인으로 수갱생이 10명 남짓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수강생은 줄어들었고 심지어 혼자 수업에 참석하는 날이 꽤 있었는데 나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기회였다. 특히 혼자서 수업하는 날이면 교사가 수강생이 되고 그동안 발표하고 싶었던 주제로 혼자서 수업을 진행했다. 미드와 넷플릭스를 보다가 자막을 만들어 보고 싶어 서브타이틀 에디트(Subtitle Edit : 나만의 자막을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글 검색에 깃허브(Git Hub)에서 다운로드 후 사용 가능) 프로그램으로 나만의 자막을 만들어 보면서 그렇게 조용히 혼자서 영어 공부를 준비해왔다.


자막을 만들 수 있는 서브타이틀 에디트(Subtitle Edit)  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시간이 흐르면서 누적되는 사건 서류가 무역회사와 관련된 영어로 되어 있다 보니 통역인과 번역인을 찾아 의뢰하고 회신받는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해 혼자서 서류를 만들고 사건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국내에 체류 중인 결정적인 제보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제보자 존 도(John Doe)는 한국에 살고 있는 같은 국적의 동포들이 범죄에 연루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범죄자들은  서남아프리카 출신의 나이지리아, 라이베리아, 카메룬 국적의 조직원들이었다.  제보자 또한 서남아프리카 출신이다.

영국 범죄수사국으로부터 접수된 사건을 수사하면서 20여 명이 넘는 서남아프리카 출신의 외국인들을 직접 조사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지금껏 배운 수사 실무지식과는 차원이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했다. 오랫동안 내전과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서남아프리카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고 TV에서 가끔 유니세프 광고를 보면서 도와줘야 하는 국가로만 알고 있으니 이런 상식으로 접근했다가 범죄사실도 밝히지 못했고 미궁에만 빠져 버렸다.


 더군다나 제보자는 타국에서 같은 국적의 동포들이 체포되는 걸 도와주는 꼴이 된다. 비록 범죄는 용납할 수 없다고 하지만 제보자 또한 영원히 한국에서 머무르지 않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건데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웠다.

 

Enemy of Enemy is my friend?(적의 적은 나의 친구인가?)


섣불리 믿었다간 안 그래도 복잡한 사건이 더 미궁으로 빠져 버릴까 봐  제보자에 대한 뒷조사가 더 필요했다. 외국인을 뒷조사하려니 소스를 받을 루트가 없어 난감했다.


"Sir(선생님!), 제가 지금 인종 차별을 당하고 있습니다. 좀 도와줄 수 있나요?"

새벽에 자고 있는데 제보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생산 공장에서 주야간 교대 근무를 하고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날은 야간 근무였던 모양이다.

상황을 들어보니 사소한 의견으로 다툼이 일어났다가 감독자가 제보자의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욕설을 해대는 모양이었다. 새벽이고 공장 내부적인 문제에 경찰이 개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당일 오전에 통역인 제니퍼로 하여금 상황을 파악해 달라고 요청했다.


제보자는 살기 위해 고국을 떠나 신분을 숨기고 한국에서 힘든 육체노동을 하고 있었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었다.


"모든 한국 사람이 절대 피부 색깔로 인종 차별할 거라는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앞으로 힘든 일 있으면 제가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제보자와 조금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제보자는 그동안 모아 두었던 자료를 가져와 서남아프리카 내전의 역사 그리고 어떻게 해서 범죄 단체가 설립되었는지부터 공부를 하면서 조사도 병행했다. 라이베리아 현지에서 근무하는 경찰도 연결해줬다.


2달 가까이 자료를 분석하고 조사하면서 사건 기록에는 첨부하지 않았다.

검찰과 법원에서 어디서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자료를 가져왔냐며 당장 검사실에서 전화가 오거나 들어오라고 할 것이 눈에 보였다.


어느 날 존도씨로부터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형사님 다음 주에 미국에서 거액의 돈이 들어올 예정인데 통장에 돈이 입금되면 곧바로 인출해 해외로 도주할 것 같습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그동안 배경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조직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고 무엇보다 제보자의 진술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전 06화 경기도에서 만난 존 도(John Doe)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