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베리아 국적의 존 도 씨
코로나 판데믹 이후 보이스 피싱 사건과 최근 지인이나 가족을 사칭해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를 이용해 접근하는 메신저 피싱 사건들이 폭증하고 있다.
저금리 대환 대출을 해 준다는 말에 속은 보이스 피싱 피해자들과 아들을 사칭해 접근한 뒤 휴대전화 액정이 파손되어 휴대폰 보험금 신청에 필요하다며 신분증과 신용카드를 넘겨받은 뒤 비대면으로 통장과 핸드폰을 개설하고 신용카드 대출을 받아 가로채는 메신저 피싱 사건이 끊임없이 접수되고 있다.
그리고 피해자들로부터 피해 신고를 접수한 수사관은 수사보고서나 인지 보고서상에 '피의자 : 일체 불상'으로 기록하고 사건을 시작한다. 일종의 사건 개시를 알리는 안내 문구와 같은 역활을 한다.
'일체불상'은 피의자에 대해서 전혀 특정되거나 확인된 바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피의자 : 일체 불상'에서 담당 수사관들과 형사들의 사투는 시작된다.
드라마 영화에서 형사들의 수사 활동은 늘 역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늘 그랬던 것처럼 반대이다.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데이터를 모으는 과정은 길고도 지루한 싸움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형사들의 수사 활동은 압수수색 검증영장 청구권을 가지고 있는 검찰과 법원과의 싸움이다.
영장 청구권은 검사만 가능하기에 사건 담당자나 형사들의 보고서가 검찰을 통과하지 않으면 수사는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사건은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영화 춤추는 대수사선 2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경시청에서 파견된 한 젊은 여성 간부가 주인공인 아오시마 형사에게 권위적인 모습으로 망신을 주는 대사가 있다.
사건은 현장에서 일어나는데 왜 안에서 일어나는 것인지는 형사 생활 3년정도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진급을 위해서 계급을 위해서 죽기 살기로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도 현장의 많은 형사들은 '피의자 : 일체 불상'에서 피해자들이 가져다준 단서들을 바탕으로 누구인지 특정해 나가기 위해 매일같이 전쟁과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영미권에서도 일체 불상 인물을 지칭하는 고유 명사가 하나 있다.
신원 미상의 남성 인물은 존 도(John Doe), 여성 인물은 제인 도(Jane Doe)라는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존 도는 신원 미상의 남성을 제인 도는 신원 미상의 여성을 지칭하는 이름인 것이다.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의 한 나라인 라이베리아에서는 사뮤엘 도(Samuel Kanyon Doe, 사뮤엘 캐니언 도)라고 불리는 사람이 대통령을 살해하고 폭력으로 정권을 장악한다.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정치인과 각료들은 모두 군중들 앞에서 공개 처형한다.
배우지 못하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상태에서 무력과 폭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사뮤엘 도는 오직 권력을 장악하고 충성을 다하는 자들에게만 보상하는 방식으로 연합을 형성했다.
이런 지도자의 국가 경제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성공하는 기업은 범죄조직 밖에 없을 것이다.(출처:독자재의 핸드북 중 어떻게 권력을 얻을 것인가)
"형사님!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진술 해줄 중요한 참고인을 만났는데 형사님 하고 얘기하고 싶다고 합니다!"
통역인 제니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제니퍼는 나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영어 통역인이다.
국내 숨어들어 활동하는 외국인 해킹 조직원들을 소탕하기 위해서는 영어 통역인과의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외국 유학 한 번 가본 적도 없고 오로지 독학과 미드 그리고 넷플릭스 만으로 토익 695점 영어 실력이 전부였던 나로서는 파트너로 통역인이 절실했다.
경찰서를 수소문해 찾아낸 통역인 제니퍼는 나의 가장 든든한 연합군이 되었고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무려 2년 동안 함께 해쳐 나갔다.
"제보자요? 이름은 뭐라고 하던가요?"
"실명인지는 모르겠는데 주변에서 존 도(John Doe)라고 부릅니다."
연락처를 건네받아 곧바로 통화를 했다.
목소리는 굉장히 차가웠고 대화의 끝마다 나에게 "sir(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였다.
제니퍼로부터 연락처를 건네받은 뒤 3일 뒤에 약속 장소를 정했다.
존 도 씨는 생산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공장 주변 입구에 잠복 차량을 세우고 나오기를 기다린 지 20여분이 지나가 검은색 가죽 롱 코트를 입고 서류 가방을 든 존 도 씨가 차 문을 두드렸다.
키는 185cm가 넘었고 검은색 가죽 롱코트를 입고 있는 모습과 눈매는 굉장히 차갑게 느껴졌다.
"Sir(선생님), 다음에는 만날 때 공장 입구에서 기다리지 말고 건너편 공터에서 대기해 주세요. 여기 공장에는 같은 국적의 동포들이 많기 때문에 제가 누군가를 만난다고 하면 소문이 날 수 있습니다."
내뱉는 단어 한마디가 굉장히 조심스러웠고 두려움도 있어 보였다.
"어디 조용한 곳으로 옮길까요?"
"다른 곳에 가는 곳보다 그냥 형사님의 사무실이 얘기하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라이베리아에서 경호원으로 근무를 했고 미국 뉴욕에 전문 경호와 전술 과정을 수료받았습니다."
서류 가방 안에서 각종 학위증과 미국과 해외에서 수료한 인증서들을 나에게 제출했다.
"경호원이라 함은 누구의 경호원인가요?"
존 도 씨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현재 라이베리아 대통령이 누구인지 아는가요?"
당연히 알지 못했고 알 필요도 없는 국가의 대통령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차마 무시하는 발언은 할 수 없었다.
"미국 대통령이 도날드 트럼프인 건 알고 있어요."
"현재 대통령은 축구선수 출신의 조지 웨아입니다."
무슨 축구 선수가 대통령을 하는지 나라 수준을 알 것 같았다. 축구 선수가 대통령을 할 수 있는 나라 수준이라면 나에게 제출한 서류는 모두 위조된 서류들로 보였다. 하지만 지독한 편견은 버리고 문화 차이를 최대한 수용하면서 제보자 존 도가 누구인지를 알아내야 했다.
"지금 현재 대통령 개인 경호원이라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현재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 대통령의 친 아들 개인 경호원이었습니다."
"그 사람 이름이 뭐죠?"
갑자기 아프리카 역사를 공부하는 분위기였지만 모두 받아들여야 했다.
"전 대통령 이름은 엘렌 존슨 설리프입니다. 그리고 제가 경호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당시 비디오 영상입니다."
구글로 엘렌 존슨 설리프와 그의 아들을 검색하고 존 도 씨가 제출한 비디오 영상을 보니 구글 이미지 속 인물들 뒤에 서서 경호를 하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렇다면 권력의 실세에 있는 인물인데 왜 한국에서 그것도 힘든 육체노동을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존 도 씨는 나의 질문에 어두워지면서 휴대전화 속 사진 하나를 나에게 전송했다.
사진 속 인물은 목이 그어진 채 잔혹하게 살해되어 있었다. 사진 속 시체 주변에는 피가 낭자해 있었고 눈을 뜨고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요?"
"제 친동생인데 살해당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날 외출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현재 정권에 반대되는 세력들은 이런 식으로 처형해 버립니다. 그날 저는 외출을 나가는 바람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집에 있던 동생은 이렇게 살해를 당했습니다."
"그럼 동생은 전 정권에서 현재 정권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처형된 거군요."
"네, 맞습니다."
이때부터 나는 아프리카 역사를 공부하게 되었고 그때 '독재자의 핸드북(Dictator's Handbook)'이라는 책을 구매해 며칠 만에 완독해 버렸다.
"그럼 앞으로 존 도 씨라고 부르죠. 그리고 현재 제가 수사하고 있는 사건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가요?"
"예, 형사님이 나이지리아, 라이베리아, 콩고, 우간다 국적의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조사를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타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서로 커뮤니티가 잘 운영되기 때문에 소식통도 굉장히 빠른 모양이었다. 아프리카 특유의 네트워킹과 같은 국가 출신의 사람들이면 모두 형제. 자매로 부르는 아프리카식 블러드 문화가 있는 듯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존 도 씨의 진실성과 과연 이 사람을 믿어도 되는지에 대한 확신이 들어야 했다.
"저를 도와줄 수 있어요? 가족들 일도 정말 가슴 아프고 지금 한국에서 숨어 지내는 상황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만약 이중 스파이 짓을 하면 제 권한으로 여권을 압수해 비자를 취소시키고 강제 출국시킬 수도 있어요."
"동포들이 범죄에 연루되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대신 저도 목숨을 걸고 도와주는 일이라 형사님도 저의 신변을 보장해 줘야 합니다."
존 도 씨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알고 있는 모든 자료를 건내 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제보자 존 도 씨는 가명으로 숨어 지내면서 나와 함께 수사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