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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중현 Apr 28. 2021

사기는 게임이다.

Scam is a game!

이 직업을 택하지 않았다면 살면서 경찰서 갈 일은 없었을 건데 법과는 무관한 건설공학 전공자가 법 조문을 외우고 다닐 줄이야 나 자신도 몰랐다. 사실 경찰 시험 준비도 그 당시에는 부산 서면 시내에 단 한 곳뿐인 학원에 먼저 시험을 준비 중인 후배를 만나러 갔다가 나도 모르게 등록을 해 버렸으니 나에게 이 직업은 우연보다는 운명이었다고 믿고 싶다.

1년간의 지구대 생활을 뒤로하고 본격적으로 뛰어든 업무가 조사와 수사 업무였다.

경제범죄 수사팀, 형사팀, 강력팀, 지능범죄 수사팀, 교통사고 조사계, 사이버범죄 수사팀처럼 수사와 조사 부서에 근무할 때는 늘 형법과 형사소송법 그리고 특별법에 익숙해야만 했다.

교통사고조사계  근무 시절에는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사고 유형 중의 하나인 교차로 통행방법 위반과 관련한 조문은 기본적으로 외우고 있어야 했고 수사 부서에 근무하면 사기 범죄와 관련된 법 조문은 억지로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마치 몸의 일부분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건 기록에 작성할 정도였다.

사기 범죄는 형법에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형법 제347조(사기)

①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전항의 방법으로 제삼자로 하여금 재물의 교부를 받게 하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기망'은 '남을 속여 넘긴다'라는 뜻으로 허위의 사실을 말하거나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상대방을 착오에 삐지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중고나라에서 물건이 없으면서도 마치 물건이 있는 것처럼 인터넷 직거래 카페에 도용한 사진을 업로드하여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채게 되면 바로 이 형법 '사기'죄의 적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최근에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보이스 피싱 범죄에서 피해자들의 스마트폰에 대출회사를 가장한 특정한 어플을 설치하도록 유도한 뒤 피해자들의 인적사항과 금융 정보를 탈취해 계좌에서 돈을 빼내가는 경우는 형법에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형법 제347조의2(컴퓨터등 사용사기)컴퓨터등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거나 권한 없이 정보를 입력 ㆍ변경하여 정보처리를 하게 함으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즉 저금리 대환 대출과 같은 보이스 피싱과 사이버 범죄가 결합된 경우는 대출을 해 줄 능력이 애초부터 없었기에 형법 제347조 사기와 어플을 설치해 정보를 빼 내가면 형법 제347조의 2(컴퓨터등 사용사기)의 죄로 동시에 입건되어 처벌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만나서 사기를 치든 컴퓨터로 숨어서 사기를 치든 사기 범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법에서 정하고 있다.


사이버범죄 수사팀에 근무하면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구글, 스카이프(skype), 라인(Line)처럼 해외 기업에 협조를 받을 일이 자연스럽게 많아지다 보니 외국의 경우는 사기 범죄를 스캠(scam)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국내든 해외든 사기와 스캠(scam)은 피해자를 속여 범죄자 스스로 재산상의 이득을 취하거나 아니면 제3자로 하여금 재산상의 이득을 취하는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를 범죄로 정의하고 있다. 제3자는 대부분 공범들에 해당하고 이제 사기 범죄는 사이버 공격 기법과 결합되어 공범들과 함께 조직적으로 해야만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 연방 수사국 FBI는 나이지리아 사기와 관련하여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무역거래에서 선불 요금 사기(An advance-fee scam)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한 적이 있다.

미 연방 수사국 FBI에서 발표한 나이지리아 419 스캠 주의보


그리고 주 라고스 대한민국 분관에서는 2012년부터 나이지리아 419 스캠(scam) 피해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면서 공식 주의보를 발표했다. 4차 산업혁명과 전자상거래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는 무역 거래 시장에서 나이지리아 스캠은 큰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나이지리아인가?

아프리카는 인터넷도 안되고 심지어 스마트폰 보급율도 떨어지는 나라로 알고 있었는데 나의 편견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었는지는 국내에 잠입해있는 서남아프리카 출신 범죄자들을 체포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석사 이상의 고학력이었으며 심지어 전공이 컴퓨터 사이언스로 국내에 유학 중인 자들도 많이 발견되었다.

"어떻게 아프리카 사람들이 이럴 수가 있는가?"

사건을 하면 할수록 두려움이 커졌고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공포를 지울 수가 없었다.

아프리카 대륙 자체가 빈곤에 허덕이고 질병이 만연한 나라일 거라고 편견을 가진 데에는 어렸을  반찬 투정을 하면 "어디서 배부른 소리 하고 있어? 저기 아프리카로  달간 다녀와봐야 정신 차릴 거니?"라고 말씀 하시부모님과 선생님의 역할이 크지 않았나 생각한다.


나이지리아 419 스캠이란 용어는 나이지리아 형법에서 시작되었다.

나이지리아 대학교 내 cult 그룹 소속 대학생들이 인터넷을 통해 무역사기를 시작한 것이 기원이 된 이 나이지리아 419 스캠(scam)은 신용을 바탕으로 하는 거래 관계 중 발생하는 사기범죄가 시초가 되었다.

나이지리아 형법 제419조에 금융 사기 범죄(Financial Crime)를 규정하고 있는 데서 유래된 이 범죄가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인터넷과 전자상거래를 만나게 되었고 이메일 해킹과 같은 공격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장담하는데 이 범죄는 전자상거래 시장 구조가 존재하는 한 숨어 들어서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

그리고 이런 유형의 범죄를 저지르는 조직원들을 나이지리안 프린스 스캠(Nigerian Prince Scam)으로 부르고 2018년 미국에서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어 공개되었지만 아쉽게도 국내에는 공식적으로 수입이 되지 않은 듯하다.



영화 나이지리안 프린스 포스터 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나이지리안 프린스든 나이지리안 스캐머든 사기꾼들이다.

국가 신뢰도와 직결되는 이 문제를 왜 범정부적으로 대응을 하고 있지 않은가에 대해서는 2년 동안 약 30여 명의 서남아프리카 출신 관련자들을 조사하면서 알게 되었다. 비록 직접 건너가서 확인하고 검증해 보지는 않았지만 교육의 부재가 가장 시급해 보였다.

 2018년 카메룬 국적의 범죄자를 체포해 7개월간 조사하면서 수없이 많은 부족들로 나눠지고 그 부족들이 쓰는 언어가 통일되지 않아 발생하는 빈부의 격차와 교육의 차이는 국가가 성장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카메룬은 몇 년 전부터 불어권 카메룬(French Cameroonian)과 영어권 카메룬(English Caeroonian)으로 분산되면서 극심한 내전으로 이어져 끔찍한 살육과 무정부주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난민이 속출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의 차이는 빈부의 차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듯했다.

특히 놀랐던 건 체포된 범죄자들은 도덕(morality) 정신이 많이 부족해 보였다.

성실. 배려. 정의. 책임

학교의 급훈이기도 했고 초등학교 시절 정체성을 만들어 갈 때 도덕을 통해 배웠던 내용이기도 하다.

성실하게 공부하고,

남을 배려하고,

불의를 보면 눈 감지 말고,

나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게 도덕 정신이다.

물론 살면서 때로는 사회와 적당히 타협하거나 남의 일에 괜한 간섭은 자칫 다른 불상사를 야기할 수 있는 개인주의로 바뀌고는 있지만 도적 정신은 사회 구성원으로 반드시 필요하다.

"당신의 통장에 무역 회사로부터 수억 원의 돈이 들어왔는데 이건 무슨 돈인가요?"

"그럼, 그냥 돈을 돌려줘요!(Give it back!)"

체포된 범죄자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내 앞에서 당당하게 진술하고 있었다.

수사를 시작하면서 긴급하게 은행에 자금 동결 요청을 해 놓은 터라 돈이 빠져나가는 건 막을 수 있었지만 만약 이 마저도 늦었다면 이 돈은 범죄자의 소유이고 체포된 상태에서 너무도 태연하게 돌려주면 되지 않느냐라는 대답은 도덕성을 의심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기는 게임이다!(Scam is a game!)"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면 사기는 게임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공개된 나이지리안 프린스 예고편만 보더라도 전체적인 내용이 그려졌다.

사기가 게임이 되면 범죄자와 피해자가 아니라 승자와 패자로 나눠지게 된다.

승자는 이기는 게임을 위해 공식을 만들어 낸다.

그들만의 공간, 공격도구, 추종 세력이 바로 그 공식이다.


영화 예고편

https://youtu.be/n7_jlp1_M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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