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부 매뉴얼
여름 동안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책을 꽤 많이 읽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루시아 벌린의 '청소부 매뉴얼'.
천재 작가, 전설적 단편소설가 등의 수식어가 따라오는 루시아 벌린. 재미가 있는 듯도 하고 잘 쓴 글인 듯도 한데 조금 난해하다. 그러니까 내용이 어려워서 난해한 것은 아니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 의문을 품게 되기 때문에 난해하다. 잘 쓴 소설이란 무엇인가, 왜 이 소설이 명작인가, 어떤 면을 사람들이 높게 평가하는가, 애초에 무엇이 소설인가, 작가는 왜 소설을 쓰는가, 하는 질문이 연달아 떠오르는데 전혀 감을 잡지 못하겠다. 이야기에서 감동이나 주제의식이나 생각할 거리가 느껴지지는 않고, 그럼에도 글에서 뭔지 모르게 알 수 없는 내공이 느껴지는 것도 같고. 기승전결 스토리보다는 사진의 스냅샷을 하나씩 들추어 보는 것 같다.
조이스 캐럴 오츠가 두 번 이상 읽으면 조각이 맞추어질 것이라고 했으니, 할 수 없이 여러 번 읽어봐야겠다. 다행히 짤막짤막한 단편들이라서 지루하지 않게 읽고 있다.
평론가와 전문 작가들이 판단하는 좋은 소설이란 무엇일까? 관련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나로서는 답을 짐작도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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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름에 단편 소설을 한 편 응모했었고 당연히 떨어졌다. 선정되리라고는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다. 당첨될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로또를 사는 마음처럼. 덕분에 확실히 알게 된 것은 나는 무엇이 좋은 소설인지 전혀 모른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