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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경복궁, 정애쿠키

크리스마스 산책

by 소소

크리스마스이자 12월의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으스스 춥고 몸이 무거워 집에 있으려다가 그래도 휴일 기분을 만끽하고자 종묘 산책을 나섰다.


휴일이니 사람이 많을 것 같아 9시에 문 열자마자 들어갔다 올 계획이었는데, 커피 한잔 내려 마시고 미적거리다 보니 10시 다 되어서야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탔더니 사람이 없다. 쉬는 날은 다들 늦잠인가, 하긴 크리스마스면 역시 호캉스나 쇼핑몰이겠지, 궁능에 가는 사람은 드물겠지.


세운상가에서 바라보는 전망을 무척 좋아해서 종묘를 갈 때는 늘 세운상가를 거쳐 간다. 세운상가 2층의 가게들은 쉬는 건지 너무 이른 시간이라서인지 문을 연 곳이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1층 조명 가게들 중 한 곳이 영업을 시작한다. 드르륵 철문을 올리는 소리, 짐을 실은 자동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나라 궁릉은 왜 이렇게 작은가 싶다가도 막상 산책하기엔 참 넓다. 구불구불 갈라진 길에서 매번 이쪽 길을 갈지 저쪽 길을 갈지 고민하게 된다.


주말, 공휴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종묘에서 창경궁으로 이어지는 문을 개방한다. 운이 좋다. 덕분에 평소에 가지 않던 종묘 북쪽의 산책로를 올라갔고, 창경궁과 창덕궁 역시 평소와 다른 동선을 따라 보게 되었다. 길을 조금 바꾸었더니 새롭게 발견하는 게 이렇게 많을 줄이야. 수십 년 관성에 묻혀 시야를 조금 돌려보는 것조차 못했구나.


회랑을 거닐고 대온실의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어 보자니 묘한 상념에 빠진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이곳에 사람이 가득하던 때를 그려본다.


금호문으로 나와 북촌 계동을 구경했다. 춥지는 않았으나 손이 얼었다. 손을 좀 녹이고 싶어, 정독도서관을 다닐 때 들어가 보고 싶어 기웃거리던 '까페 델 꼬또네'에서 에스프레소와 애플파이를 주문했다. 늘 북적였는데 오늘은 사람이 없어 한적하다. 크리스마스 정오엔 다들 어디에 있는 걸까, 경기가 안 좋은 걸까...

좌) 카페 델 꼬또네, 우) 정애쿠키


정애쿠키에 들러 쿠키를 몇 개 사 왔다. 크리스마스니까 그래도 쿠키를 먹어야겠지. 2013년부터 시작한 곳으로 할머니 한 분이 쿠키를 구우신다. 시작할 당시 나이가 68세였으니, 문득문득 앞날이 막막한 기분이 들 때 한줄기 빛과 같이 다가온다. 정신 차리라고 뒤통수를 친다. 나도, 60 넘어서도 쿠키를 구워 팔 수 있겠구나, 늦을 것도 없고, 어려울 것도 없고, 사소해서 하찮을 일도 없는. 포장 봉투에 100원은 할 텐데 아깝다, 다음엔 용기를 가져가서 받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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