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도 짧은 축제의 계절
사계 중 봄을 가장 좋아했지만 이제는 망설여진다.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모자란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운 가을의 기후와 자연을 마주하고 나서부터다. 우리의 축제는 이러한 무대에서 열린다. 눈부신 태양에 자연이 빛나고 세찬 바람에 억새가 일렁이는, 덥지도 춥지도 않은 걷기 가장 적절한 계절에.
다른 어떠한 활동보다 쉬운 동작과 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어 운동인 듯 아닌 듯한 걷기에도 축제가 있다. 2년 전 걷기축제의 첫인상은 좁은 길에 병목현상이 발생할 정도로 빼곡한 도보 여행자들의 모습이 정말 생경하게 느껴졌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사상 초유의 장기분산형 축제가 열렸다. 매일 각 코스에서 한 그룹씩 소규모로 시작되는 생소한 축제.
올해도 같은 방식의 축제가 시작됐다. 3일이었던 운영 기간이 23일이 되자 그에 따른 일감과 책임감이 커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축제에서는 걷기 외에도 공연과 지역 문화를 즐길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어, 걷기만을 예상했다면 의외의 재미도 한몫이다. 사실 그 모든 것을 막론하고 환상적인 날씨가 중요하다. 이런 날씨에 밖에 나서지 않는 건 두고두고 후회뿐이란 걸 경험해 봤기에 축제에 설 수 있길 간절히 바랐다.
곧 겨울이 가까워져 오는 시기인데도 맑은 하늘을 닮은 투명한 바다와 싱그러운 밭담은 다시 여름의 계절로 순회한 듯하다. 한 코스 내에서일 뿐인데 좁은 길에서부터 발길이 닿는 곳곳마다 발을 떼기가 아쉬운 장관의 연속이다. 순전히 이런 모습을 보고자였지만 짧게는 10km 초반에서부터 20km에 육박하는 코스까지, 걷기를 만만하게 봤다면 정말 다친다. 다행히 여러 참가자와 걸음을 맞춰 걷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축제 현장 즉, 길 위에서는 걷기만 행해지는 게 아니다. 타지에서 온 참가자 일색인 축제에서는 멀리서 온 귀한 손님을 인솔자가 일솔만 하는 법이 없다. 연륜으로 쌓은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 연신 걸음을 멈추고, 오랜 걷기에 손님이 기운 없을 새라 새벽부터 분주하게 준비해 온 간식 배낭으로 어깨가 짓눌려도 끝까지 감내한다. 이러한 따듯한 환대와 연대로 대여섯 시간 동안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은 축제에 점차 스며든다. 각자의 역할을 넘어 오가는 온정으로 가득한 시간. 그렇게 올해 축제 역시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과거, 전에 없던 새로운 길을 잇기 위해 힘겨움과 아득한 나날을 견뎠을 길 개척자와 자원봉사자.
섬에 온 여행자를 반기며, 그들을 최적의 컨디션으로 종점까지 이끄는 인솔자.
용기와 기대를 안고 도착한 이곳에서 한 걸음씩 자신만의 목표에 도전하는 참가자.
유기적인 이 관계를 최상으로 연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또 한 번의 축제를 완성해 낸 스태프들.
길의 명성보다 축제가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서 기억에 남을 또 한 번의 축제를 보냈다. 축제를 위해 수고한 모두에게 감사를 보낸다.
축제는 저물었어도 매일 축제 같은 일상이 되기를.
길에서 우리의 뜨거운 인내와 열정이 앞으로의 삶에도 눈부시게 펼쳐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