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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Aug 30. 2023

한국인의 소울푸드 삼. 겹. 살

나 홀로 삼겹살 정식

프랑스에서는 돼지고기와 소고기의 가격차이가 그다지 심하지 않다. 내가 있는 곳은 독일 국경 근처이고 역사적으로 독일에 속했던 적도 있는 곳이라 독일 음식과 비슷한 요리들이 조금 있다. 그래서인지 그나마 돼지고기 요리들이 제법 있는 편인데, 그 외의 프랑스 요리들에서는 돼지고기 요리가 그다지 흔치 않은 느낌이다. 점심시간에 통 삼겹살 요리가 나온 적이 있는데 프랑스인들은 삼겹살의 비계를 다 떼어내더라. 그 외에도 여기 사람들은 고기의 기름에 기겁을 하는 것 같다. 그나마 유럽에서도 동유럽 출신들을 보면 한국처럼 돼지고기에 익숙하고, 고기의 기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기름이 주는 풍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먹으며 자라왔던 거다.


내가 사는 곳에서 삼겹살은 마트 정육코너를 가면 쉽게 살 수 있는데, 비계와 고기의 비율이 적절하게 딱 좋은 상태의 삼겹살을 구하는 건 운이 좋은 경우에 한해서다. 어떤 날은 비계가 너무 적어 내가 먹는 게 삼겹살이 맞자 싶을 때도 있다. 여기는 삼겹살이 모두 오겹살이다. 항상 껍질까지 있는 상태다. (하지만 편의상 삼겹살이라 부르자.) 아마 내가 가장 자주 사 오는 고기 중 하나가 삼겹살일 것이다. 삼겹살이 있으면 구워서 먹기도 하고, 양념으로 제육볶음을 해 먹기도 하고, 김치를 담근 날은 수육을 하기도 하고 또는 김치를 넣어 김치찌개를 끓이기도 한다. 한국 요리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삼겹살로 파스타도 할 수 있고, 오븐에 껍질이 바삭하게 구워내는 크리스피삼겹살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삼겹살은 다양한 방법으로 날 배부르게 하고 기쁘게 해 준다. 이런 다양한 요리들이 있으니 삼겹살을 가장 자주 사는 건 내게 당연한 거다. 나와 비슷하게 같은 연구소의 한국인 친구는 삼겹살을 항상 냉동해 둔다고 했다. 삼겹살은 한국인의 소울푸드인 거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집에서 혼밥을 하고 있지만, 한국에 있을 때는 내가 좋아서 혼밥을 많이 했다. 혼밥뿐이겠는가, 혼고기, 혼술 뭐든 혼자 다 잘했다. 혼자 하는데 많은 것이 익숙해서 내가 프랑스에 살면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삼겹살이 먹고 싶으면 고깃집을 간다. 보통 2인분 주문이 가능하기에 2인분을 주문한다. 삼겹살 2인분 또는 목살 1, 삼겹살 1로 주문하곤 했다. 사람들은 식당에 혼자 가면 주인이 싫어할 거라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가던 곳들은 혼자 왔기에 더 잘 챙겨주는 친절한 분들이었다. (어쩌면 혼자지만 두세 명처럼 주문해서 먹기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고기가 먹고 싶을 때는 그렇게 혼자 고깃집 갔었다. 고깃집을 가니 상차림이 다 나와 잘 먹고 돈만 내고 나오면 된다. 하지만 프랑스에 오고 나니, 한식당에서 삼겹살을 팔기도 하는데, 2인분이 40유로가 넘더라. 하지만 이것도 그나마 큰 도시인 파리의 얘기고, 내가 사는 곳에는 한식당이 겨우 4개 정도 있고 삼겹살을 파는 곳은 없다. 그러니 먹고 싶으면 직접 구워 먹어야 한다. 혼자서 구워 먹자니 식당처럼 제대로 상을 차려 먹는 게 조금 귀찮았다. 삼겹살은 사실 고기만 잘 구워 쌈장만 곁들여도 맛있지 않은가. 퇴근하면 언제나 너무 배고프기에, 고기만 얼른 굽고 상추 같은 채소를 조금 씻어서 삼겹살을 먹었다. 불판이 없어서 아쉽게도 테이블에서 구워 먹을 수 없고, 팬에서 모두 굽고 접시에 옮겨 담아 먹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언제나 맛있었다.


하지만 역시 정말 맛있는 삼겹살은 불판을 앞에 두고 사람들과 오순도순 대화하며 구워 먹는 삼겹살이다. 한 한국인 지인이 집에 전기그릴 불판이 있다며 고기파티를 하자고 한국인들을 초대했다. 각자 먹을 고기를 사들고 갔는데 삼겹살이 많아서 그날 오래간만에 질리도록 삼겹살을 먹었다. 혼자 먹을 때는 그런대로 삼겹살을 맛있게 먹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혼자인 것에 너무 익숙해서 함께 먹는 즐거움을 잊었던 것 같다.


하루는 종일 열심히 일을 하고 돌아온 날이었다. 사다 뒀던 삼겹살이 냉장고에 있는데, 오늘은 열심히 일한 나를 위해 제대로 요리를 해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삼겹살에 곁들일 것들을 준비한다. 먼저 삼겹살을 먹으면서 떠먹을 된장찌개를 끓인다. 구워 먹을 삼겹살 일부를 잘라서 된장찌개를 고기 된장찌개로 끓이기로 결정한다. 나는 된장찌개를 끓일 때 약간의 고추장을 첨가한다. 또한 마지막에 고춧가루를 넣어 칼칼한 맛을 낸다. (칼칼하게 청양고추를 넣는 사람들이 있지만 난 맵찔이라 청양고추는 나에게 너무 과하다.) 된장, 호박, 양파 정도의 재료면 충분하다. 버섯이 있을 때는 버섯도 넣어준다. 된장찌개가 끓는 동안 빠르게 밥도 새로 안쳐준다. 프랑스에서는 대파를 구할 수 없어서 쪽파 아니면 이곳에 파는 양파 줄기를 써야 한다. 채칼이 없으므로, 열심히 파채를 만들어본다. 파절이는 보통의 파절이와는 조금 다른 우리 엄마표 파절이다. 식초와 설탕이 메인이다. 여기에 고춧가루는 넣기도 하고 생략하기도 한다. 이렇게 새콤달콤하게 파절이를 만들면 고기가 밑도 끝도 없이 들어간다. 파가 맛있다고 너무 먹어 다음날 속이 쓰린 적도 제법 있다.

오래간만에 삼겹살을 제대로 한 상 차려본다. 아쉬운 점이라면 쌈채소가 없어서 샐러드 채소를 곁들였다는 점이다. 또한 불판이 없으니 이번에도 팬에 구워내 접시에 담겨 있는 삼겹살이란 점이다. 아쉬움도 잠시, 된장찌를 먼저 한 입 먹는다. 역시 고기 넣은 된장찌개는 맛있다. 삼겹살에 무쌈과 우리 엄마표 파절이를 곁들여 먹는다. 쌈장도 잊지 않는다. 그런 후, 오이 하나도 쌈장에 찍어 한 입 베어문다. 맛보니 아쉬울 게 없는 완전한 한 한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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