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선물해 준 바르셀로나 기념품, 깻잎
해외에 나오면 먹기 힘든 재료가 콩나물과 깻잎이다. 두 가지 모두 한국인만 먹는 재료라서 그렇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아시아마켓에서 신선한 콩나물을 구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통조림 콩나물이 있어서 콩나물은 원할 때 언제든지 먹을 수가 있다. 하지만 깻잎은 다르다. 깻잎은 깻잎절임 통조림만 수입되어 있다. 신선한 깻잎은 없다. 삼겹살은 상추랑만 먹어야 한다. 참치김밥에도 깻잎을 넣을 수 없다. 그런 날들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토요일 오전 한글학교에서 일하면서 다른 선생님들과 가까워졌다. 한 선생님이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자고 했다. 한국인들이지만 다들 프랑스에서 지낸 시간이 길어져서 프랑스패치가 되어서 각자 먹을 고기를 사 오라고 했다. 어쩐지 삼겹살이 많을 것 같아서 나는 소고기를 사갔는데, 5명이 모이는데 3명이 삼겹살을 사 왔더라. 역시 한국인의 소울푸드는 삼겹살이다. 삼겹살을 먹으면서 호스트가 말하길 깻잎이 있다고 했다. 깻잎을 키우는데 이번에 수확이 그다지 좋지 않고 크기가 작고 별로 없다고 했다. 하지만 맛볼 수는 있다면 인당 2장의 깻잎을 나눠줬다. 두 손으로 공손히 자그마한 깻잎을 받았다. 이렇게 작은 깻잎은 처음이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맡는 깻잎 향이었다. 작은 깻잎에 삼겹살 한 조각을 얹어 최대한 맛있게 싸서 한 입에 넣었다. 맛있다. 한글학교 외에도 다른 경로들을 통해 한국 분들을 좀 더 알게 되었는데, 꽤나 많은 사람들이 깻잎을 키우고 있었다. 프랑스인들은 테라스에 다양한 화분들과 꽃을 키우는데, 한국인들은 깻잎을 키우고 있었다.
연구소에는 한국에서부터 함께 지내던 한국인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학회로 스페인에 다녀오면서 약간의 휴가를 내 바르셀로나에서 쉬다 왔다. 돌아오는 날 연락이 왔다. 바르셀로나에서 선물을 사 왔다고 했다. 뭔가 궁금해하니 깻잎이라고 했다. 한인 민박에 머물렀는데 신선한 깻잎이 아침에 나와서 깻잎을 어디서 구했는지 물어보니 한국인이 재배해서 파는 곳이 있다고 알려줬단다. 그곳에 가서 깻잎을 사는데 한 봉지만 사자니 이 기회가 아까워 두 봉지를 사 왔더니 너무 많다는 거다. 선물이니 고맙게 받으려다가 갑자기 걱정이 밀려왔다. 페스티벌을 보러 가느라 5일 동안 집을 비울 예정이었다. 신선한 깻잎을 줘도 깻잎 장아찌를 담그지 않고서야 깻잎이 5일 후에 성하겠나 싶었다. 그러자 고맙게도 이 친구가 유튜브에서 본 깻잎 보관법을 알려줬다. 깻잎의 꼭지를 좀 잘라주고 꼭지 부분을 컵 바닥에 닿게 하고는 컵에 물을 조금 부어주고, 물을 가끔 교체해 주면 깻잎이 일주일도 간다고 했단다. 자기도 그렇게 보관했다고 나도 그렇게 하고 돌아와서 먹으면 되지 않냐 조언해 줬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긴가 만가 하면서 별 수 없어 깻잎을 그렇게 보관해 두고는 걱정되는 맘으로 집을 떠났다.
며칠간 페스티벌에서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일요일 오후에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부터 집에 돌아가면 깻잎을 먹어야지라고 생각했다. 메뉴는 이미 정해진 상태였다. 깻잎을 넣은 참치김밥에 깻잎을 넣어 떡볶이를 만들 거다. 집을 떠나기 전에 깻잎으로 뭘 먹을지 정하고 장까지 봐뒀었다. 참치김밥을 위해 단무지와 참치통조림을 사두었고 냉동실에는 떡볶이 떡이 남아있었다. 집에 도착했다. 이제 깻잎 잔치를 벌일 시간이다. 먼저 밥을 새로 한다. 쌀이 익는 동안 떡볶이 재료들을 준비한다. 당근을 볶고 계란 지단을 준비한다. 오이도 잘라 소금에 살짝 절인다. 그런 후, 참치캔을 따서 참치를 마요네즈에 버무려준다. 이제 깻잎을 준비할 차례다. 컵 속 물에 살짝 담가뒀던 깻잎을 조심스레 꺼내온다. 조금 두근거린다. 깻잎이 담긴 컵을 지퍼백에 넣어둔 상태였다. 지퍼백을 열고는 깻잎의 상태를 살펴본다. 아직 싱싱하다. 잎이 무르지 않았다. 5일이 지났음에도 이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니 깻잎에게 고마울 지경이다. 참치김밥을 완성하고는 떡볶이를 만든다. (나는 따뜻한 김밥보다는 조금 식은 김밥이 좋다.) 떡볶이는 언제나 만드는 소스가 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신X 떡볶이 소스를 약간 내 식대로 변형한 거다. 물에 소스를 만들어 풀고는 끓인다. 그다음 떡과 어묵을 넣고 졸여주면 끝이다. 이 소스의 포인트는 약간의 카레가루다. 카레가루로 별다른 조미료가 필요 없이 맛이 난다. 떡볶이가 완성된 후, 깻잎을 꺼내 얇게 채를 썰어서 얹어준다. 빨간 떡볶이 위에 푸릇푸릇한 깻잎이 포인트가 되어 예쁘다.
이제 먹을 시간이다. 먼저 참치김밥부터 먹는다. 프랑스에서 참치김밥을 종종 싸 먹었는데, 깻잎까지 넣어 만든 건 처음이다. 먹어보니 역시 참치김밥에 깻잎의 존재는 중요하다. 처음 참치김밥을 만들며 깻잎을 넣은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김밥을 먹다가 떡볶이도 먹어본다. 오늘 떡볶이도 잘됐다. 깻잎 향이 퍼지니 더 맛있다. 참치김밥을 떡볶이 소스에도 찍어먹는다. 먹는 게 즐겁다. 모두 깻잎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