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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Aug 28. 2023

이것은 프랑스산 명이나물

명이나물 지옥에서 요리하기

한국을 떠나 온 지 일 년 반이 지나가면서 이 작은 도시에서도 오고 가며 한인들을 조금 알게 되었다. 이곳의 한글학교에서 토요일마다 유아반의 보조교사로 봉사를 하기 시작하면서 더욱더 한국 분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 유아반은 두 부모가 모두 한국인으로 프랑스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아이, 부모 중 한 사람이 한국인인 국제부부 사이의 아이, 부모 중 누군가 한국에서 입양된 분 세 경우가 있었다. 아무래도 만 7세 미만의 유아반은 어린 나이이기에 한국과 인연이 없이 한국어를 배우게 하는 부모는 없었다. (하지만 성인반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한국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들이라 한국 문화의 힘을 새삼 느꼈다.) 이런 유아반 학부모 중 한국인 분이 친절하게 날 잘 챙겨주셨다.  얼마 전 다른 도시에서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Abilympics)의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을 위해 통역사로 지원해서 일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그곳에서 버스에 함께 타며 친해질 수 있었던 분이다. 한글학교에 오는 아이를 통해 내게 그릇도 챙겨주시고 뭐라도 하나 더 주려고 하는 좋은 분이다.


날이 좋던 어느 봄날, 평소처럼 연구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학부모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명이나물을 좋아하냐는 질문이었다. 뜬금없었다. 태어나서 명이나물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런 질문을 프랑스에서 받으니 이게 대체 무슨 질문인가 싶었다. 그러면서 명이나물 밭의 사진과 명이나물을 한 움큼 손에 들고 있는 인증사진을 보내주셨다. 숲에 자연산 명이나물이 널려있다고 했다. 주말 시장에서 1kg 당 15유로에 파는데 숲에 가서 그냥 뜯으면 된다면서 혹시 좋아하면 같이 가자고 했다. 지금까지 간장에 절여진 명이나물 외에 자연산 명이나물을 본 적이 없어 너무 신기했던 나는 함께 하기로 했다.

그렇게 약속한 날이 되어 함께 명이나물이 있다는 숲으로 갔다. 숲 입구에 들어서면서 마늘 향 같은 게 나기 시작했다. 내게 이게 명이 향이라고 했다. 새삼 명이가 왜 Wild garlic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길가 근처에서는 애완견들이 오줌도 쌌을 수 있으니 조금 깊숙이 들어가서 수확하자고 했다. 나는 이렇게 많은 줄 모르고, 작은 가방 하나를 가져왔고 그냥 손으로 뜯는다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챙겨 오지 않았었다. 완전 초보자의 모습이었다. 이 분은 몇 번이나 해보셨는지, 위생장갑과 깔끔하게 자를 가위, 그리고 넉넉하게 커다랑 봉지를 챙겨 오셨다. 친절하게도 내게 가위와 장갑, 그리고 여유분의 봉지를 나눠주셨다. 명이나물이 워낙 많아서 너무 쉬웠지만 앉아서 잘라내다 보니 평소 좋지 않은 허리가 조금씩 아팠다.


명이나물을 두 봉지 가득 수확했다. 초대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헤어졌다. 혼자 처리하기에는 아무래도 너무 많아서 친구에게도 주고, 다른 아는 한국인 지인에게도 나눔을 했다. 그런 후, 남은 것은 장아찌를 담기로 결정한다. 명이나물이 워낙 많다 보니 씻는 것도 일이었다. 게다가 신선한 채소이니 따뜻한 물로 씻을 수도 없고 싱싱하도록 차가운 물로 씻다 보니 손이 시릴 정도였다. 씻고 씻어도 명이나물이 남아있었다. 명이나물 지옥에 빠진 기분이다. 한 번도 간장 장아찌를 담가본 적이 없다. 그저 남이 만들어 준 것을 맛보긴만 했을 뿐이다. 유튜브를 찾아보며 최대한 간단한 방법으로 소스를 제조한다. 그런 후, 씻어둔 명이나물에 통에 담고는 소스를 부어준다. 반절은 다른 통에 담았다. 조금은 매콤한 맛을 내고 싶어 칠리플레이크를 넣었다. 청양고추를 구할 수 있었다면 청양고추를 넣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난 후 매운맛이 충분치 않아 고춧가루를 넣어서 매콤한 깻잎김치 같은 느낌의 명이나물로 재탄생되었다.)


담을 수 있는 통에 최대한 담았는데도 명이 나물이 남았다. 명이나물을 잔뜩 수확했던 학부모님의 말에 따르면 명이 나물로 전을 해도 맛있다고 했다. 명이나물 전이라니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 애초에 신선한 명이나물 자체를 구해본 적이 없으니 명이나물 전을 내가 해봤을 리가 없다. 또한 한국에서도 명이나물이 저렴하지 않으니 식당에서 전을 팔지도 않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전을 만드는 건 간단했다. 부추전이나 파전이랑 비슷하면 되지 않겠는가. 부침가루를 꺼내 물을 넣어 적당한 농도로 만들어 준다. 명이나물을 하나를 그대로 넣기에는 조금 큰 듯하여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반죽과 섞어주었다. 팬에 기름을 넉넉히 둘러주고는 반죽을 넣고 구워준다. 마침 냉장고에 홍고추가 있기에 잘라서 몇 개 얹어주니 색도 나고 보기 좋다. 바삭하게 구워낸 명이나물 전과 지인에게 명이나물을 주고받은 도토리묵을 곁들여서 상을 차린다. 마치 등산 후 먹방과 같은 자연적인 식탁이 맛있어 보인다.

처음 맛보는 명이나물 전을 젓가락으로 잘라 한 입 먹어본다. 우왓 맛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다. 식감은 부추전과 비슷한데 부추전보다는 더 향이 강했다. 기분 좋은 향으로 말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만들었지만 반죽의 농도가 기가 막히게 적당했었는지 바삭함이 최고였다. 게다가 선물로 받은 도토리묵도 한국에서 직접 수집한 도토리로 가루 내어 만든 거라더니 도토리에서 내가 싫어하는 쌉싸름한 맛이 없이 깔끔하게 도토리만의 향은 풍부하면서 아주 탱글탱글한 게 너무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것을 혼자 먹는다는 게 너무 아까워서 주변에 누군가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아끼는 동생이 생각나 바로 연락한다. 명이나물 전 큰 한 판을 혼자 다 먹어치워서 가져다주기 위해 명이나물 전을 다시 만든다. 도토리묵도 함께 도시락통에 담아 동생네 집으로 간다. 건네주며 서로 근황에 대한 대화를 좀 하다가 헤어지고 집에 돌아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에게서 메시지가 온다. 미친 맛이라고 했다. 이 친구가 이렇게 격하게 반응해 준 건 처음이다. 명이나물전이 그만큼 맛있다는 거다.

명이나물 전을 하고도 명이나물이 남아서 내 마음대로 오리지널 레시피 요리들을 몇 가지 해보았다. 정말 맛있게 먹었던 요리가 명이나물과 다진 마늘, 버터, 파프리카 파우더, 그리고 새우를 함께 볶아낸 명이갈릭버터새우다. 내가 만들었지만 내가 식당을 한 다면 메뉴로 내놓고 팔고 싶을 만큼 맛있었다. 그 외에도 평소 만드는 바삭한 군만두를 만들 때 전분물을 부어서 구워내는데 전분물에 명이나물을 잘라 넣어 명이 군만두를 만들어냈다. 이것 또한 맛있어서 혹시 내게 요리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여러 요리를 했지만  아무래도 생 명이나물 상태로는 오래 보관할 수가 없으니 가장 요긴하게 오랫동안 즐긴 것은 역시 명이나물 장아찌다.

며칠이 지나고 명이나물 장아찌가 숨이 죽었다.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 숨이 죽으니 절반으로 줄었다. 괜히 나눔을 한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아주 잠깐 들었다. (역시 나누는 게 좋지!) 누룽지를 끓여 맛 보니 줄기부근은 생마늘 같은 알싸함이 조금 강했다. 조금 더 숙성시켜 두기로 한다. 며칠이 더 지나고는 맛 보니 맛있게 잘 되었기에 그날 퇴근길에 삼겹살을 사 온다. 한국인에게 명이나물하면 삼겹살이니까. 삼겹살을 구워서는 명이나물, 쌈장, 고추냉이 등에 곁들여 맛있게 먹는다. 명이나물 장아찌 두 통이 냉장고에 자리 잡으니 요리가 귀찮을 때 누룽지 또는 물밥에 곁들여 한 끼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내 느낌대로 고춧가루를 추가하여 만든 매콤한 버전도 맛있어서 밥도둑으로 손색이 없었다.


한국에서도 제대로 많이 먹지 못하는 명이나물을 질리도록 먹었던 이번 봄이었다. 프랑스에 오기 전에 프랑스에서 명이나물 장아찌를 먹을 거라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데, 직접 자연산 명이나물을 수확하고 그걸로 장아찌, 전, 그 외 여러 요리들을 질리도록 해 먹었다. 잠깐이지만 참으로 맛있었던 명이나물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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