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이 안 되면 내가 만들어야지
한국의 대표 배달 메뉴라면 역시 짜장면일 거다. 한국에 살 때 이사를 가면 할 일 중 하나가 근처 짜장면 맛집을 찾는 거다. 매운 걸 잘 못 먹어서 어릴 적부터 짬뽕보다는 언제나 짜장면파였다. 짜장면 or 짬뽕이 한국인에게 엄마 or 아빠 질문이라고 하기엔 나는 80% 짜장면/ 20% 짬뽕이다. 프랑스에 오고 나니 짜장면을 먹을 수가 없더라. 내가 사는 곳은 프랑스에서 독일 국경 근처인 스트라스부르로 인구가 30만이 채 되지 않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이다. 파리정도면 한식당이 제법 있지만 이곳은 한식당도 몇 개 없다. 짜장면은 당연히 팔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유튜브에서 먹방 영상들을 왜 보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종종 보는 시청자 중 한 명이다. 누가 먹는 걸 보는 게 재밌어서라기보다, 음식의 조합이나 아이디어를 얹는 편이라고 하자. 먹방을 영상들을 살펴보다 보면 중국집 먹방이 참 많다. 면치기라는 이상한 문화가 요즘 먹방 유튜버들에게 너무나도 당연시되고 있는 것 같은데, 후루룩 먹지 말라는 밥상 교육을 받았던 나는 조금 이 새로운 문화가 낯설다. 어쩌다가 짜장면 먹방의 썸네일을 보기만 해도 짜장면이 그리워진다. 중국집이라고 하지만 우리 모두 이제는 알지 않나. 짜장면은 한국식 중국음식, 이제는 거의 한국 음식이란 것을 말이다. 그런 짜장면을 일 년 가까이 먹지 못하다 보니 존재하지도 않는 짜장면 금단 증상이 나타날 것만 같다. 지금까지 짜장라면으로 버텨왔었다. 처음에는 그냥 짜장라면을 먹었고, 그다음에는 짜장라면을 최대한 짜장면처럼 하고자 고기와 다른 채소들도 썰어 넣어 볶아서 만들어 먹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짜장라면으로는 더 이상 만족이 안된다. 괜히 짜장면 영상을 찾아서 시청한다. 너무 먹고 싶어 져서 유튜브로 집에서 짜장면 만드는 법을 찾아본다. 생각보다 간단한 레시피를 찾았다.
다음날 바로 마트에서 재료들을 사 온다. 짜장면 만들기에서 가장 까다로운 것이라면 춘장을 기름에 볶는 것인데 다행스럽게도 이곳 아시아마켓에는 볶음춘장을 팔고 있었다. (볶음 춘장만 판다. 어차피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돼지고기와 호박을 골라 들고 한참을 면 코너에서 서성였다. 어떤 면이 적당한지 모르겠다. 짜장면의 탱탱한 면같은 게 없다. 한국 브랜드에서 나온 우동국수 옆에 짜장국수라는 게 있었는데, 그냥 봐도 중면처럼 생겼다. 이걸로 만들어봐야 사 먹는 짜장면 같지 않을 게 빤히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짜장국수라는 이름으로 팔고 있으니 일단 한번 사 보기로 한다.
집에 돌아와 재료들을 다듬는다. 고기, 양파, 호박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준비한다. 먼저 팬에 기름을 둘러준 후, 고기를 볶고, 양파를 넣고 마지막으로 호박을 넣는다. 간장 1, 설탕 1, 굴소스 1, 춘장 1의 비율로 간단하게 모두 넣고는 휙휙 저어 볶아내 준다. 물을 부어줘서 재료들이 완전히 다 익도록 해주고 준비한 전분물을 풀어넣고는 빠르게 저어준다. 금세 끈적한 짜장소스가 완성되었다. 면을 삶는다. 역시나 이건 그냥 중면이나 칼국수 면의 느낌이다. 탱글함이 부족하다. 면을 삶고 차가운 물에 헹궈낸 후, 짜장소스를 얹는다. 나는 오이를 좋아해서 오이 고명을 얹어준다. 검은 짜장소스 위에 푸릇한 오이가 보기 좋다. 맛을 보니 약간 부족함이 느껴진다. 어쩌겠는가 그래도 이 정도면 짜장라면보다는 짜장면에 조금 더 가깝다. 부족한 맛은 어쩌면 조미료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중국집에서 조미료를 많이 쓴다는 얘기를 들어봤던 적이 있다. 춘장도 남았으니 다음에는 조미료도 넣어 만들어 보기로 한다.
며칠이 지나고, 마트를 둘러보다가 인스턴트 라멘 면을 발견했다. 약간 노르스름하고 둥근 면이 조금 얇지만 그나마 짜장면 면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이 면으로 짜장면을 다시 시도해 보기로 한다. 지난번과 같은 재료에 조미료만 추가한다. 이번에는 고기와 채소들을 더 잘게 썰어서 유니짜장 느낌으로 만들어준다. 마지막에는 조미료 미X을 살짝 넣어주고 맛을 본다. 오! 식당에 거의 근접했다. 역시 조미료의 힘은 위대하다. 잘게 썬 재료들 덕분에 면에 소스와 재료들이 더 잘 묻어온다. 면도 지난번 짜장국수라는 이름의 면보다는 한국 짜장면에 가깝게 탱글함이 있다. 제법 만족스럽다. 프랑스에서 이 정도라면 성공이다.
내가 짜장면을 만들어 먹는 것을 내 SNS 계정에 업로드했다. (나는 프랑스에서의 내 요리들만 포스팅한다.) 아는 유학생 동생이 언제 한번 진짜 먹으러 가고 싶다며 우는 이모티콘을 보낸다. 흔쾌히 초대하며 뭘 먹고 싶냐고 물으니 짜장면과 떡볶이란다. 떡볶이는 원래 잘하던 레시피가 있어서 거뜬했고, 짜장면은 마침 최대 조미료와의 콜라보로 자신감을 얻은 터였다. 초대하고 떡볶이와 짜장면을 준비해서 대접한다. 한식을 한동안 너무 오랫동안 먹지 못했다는 이 동생은 매운 것을 너무 오랫동안 먹지 않아 떡볶이를 매워하며 거의 먹지 못했다. 하지만 곱빼기 양으로 만들어준 짜장면을 맛있다며 바닥까지 긁어먹을 기세로 짜장면을 다 비웠다. 그렇게 먹고는 너무 배가 부르다며 어기적거리는 모양새로 돌아갔다. 그 후에도 그때 먹은 짜장면이 맛있었는지 그 동생과 그녀의 외국인 남자친구를 우리 집에 다시 초대하게 됐는데, 원하는 메뉴를 물어보니 다시 한번 짜장면이라 말했다. 그때 너무 맛있어서 남자친구에게도 맛 보여주고 싶다는 거였다.
프랑스의 작은 도시에 살면서 짜장면이 너무 그리웠다. 배달은커녕 파는 식당에서조차 팔 질 않는다. 하지만 팔지 않으면 어떠한가. 조미료와 함께라면 식당에서 파는 것에 근접한 짜장면을 만들 수 있다. 짜장면이 배달이 안 돼서 아쉽다면 우리 집으로 오세요. 누구든 초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