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한식 안주로 혼술 하기
나는 예전부터 혼술을 즐기던 사람이다. 한국에서 대학원생이던 시절, 내가 있던 연구실은 토요일도 출근하여 오후 5시까지 일해야 했고 주중은 밤이 기본 밤 10시까지였다. 그렇기에 주어진 자유시간은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로 매우 짧았다. 그래서 나는 주로 토요일 저녁 혼술을 즐기곤 했다. 내가 밖에서 혼술을 할 때면 언제나 쉽게 집에 돌아갈 수 있게 안전한 집에서 도보 10분 내의 곳으로 가곤 했다. 그런 내가 자주 가던 술집이 몇 곳 있는데 대표적이 두 곳 중 하나는 반건조 노가리를 파는 포차가게였고, 다른 하나는 회와 다양한 해산물 요 릴르 파는 해물포차였다. 종종 친구들과 가기도 했지만 나는 혼술의 시간을 더 자주 즐기곤 했다. 혼자일 때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아니면 그저 생각에 잠긴다거나 하곤 했는데 그 시간들이 좋았다. 나는 혼자가도 짧은 주말의 자유시간이기에 돈을 아끼지 않고 주문해서 먹고 마셨다. 그래서인지 혼자인 손님인 나를 싫어하던 분들을 없었다. 혼자 가니 더 잘 알아봐 주고는 항상 서비스들을 챙겨주셨다.
그런 내가 프랑스에 와서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술집을 보고는 안 가봤을 리가 없다. 몇 번이고 언급했지만 나는 시내 중심가에서 트램으로 30분 떨어진 시 외곽 주택가에 살고 있다. 집 주변에 별다른 게 없지만 그래도 술집이 하나는 있으니 좋다고 생각했었다. 좋으면 단골이 돼야지-라는 마음으로 처음 들어갔는데 우선 주인이 영어를 못하고 친절함이 전혀 없이 아주 차가웠다. 가게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걸 봐서는 딱 동네장사만 하는 술집이었다. 이 가게의 사람들에게 나 ㄴ그저 갑자기 찾아온 이방인으로 내가 그들의 공간에 침입한 듯한 느낌이었다. 그 후에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에 시내 중심가에 있는 술집에 가보기도 했다. 한국에서처럼 즐겁게 마시며 좋은 시간들을 보냈지만 트램을 타고 어두운 밤을 한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조금 위험하게 느껴지더라. 그렇기에 약속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술을 즐기는 건 집에서 혼자 준비해서 혼술 시간이 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혼술 시간은 금요일이다. 술을 마시고 다음날이 조금 피곤해서 낭비해 버려도 일요일 하루가 더 남아있기 때문이다. 평일에도 가끔 맥주나 와인을 즐기기는 하지만 직접 차린 저녁식사에 반주하는 정도일 뿐이니 정말 술을 마실 생각으로 술을 마시는 건 주로 금요일 저녁시간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식사에 곁들이는 와인을 제외하고 맥주나 다른 술을 마실 때는 안주를 먹지 않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본 바로는 그랬다. 술을 한 참 마시다가 조금 배고파지면 그때 치즈 플레이트 같은 거나 차가운 햄 종류를 먹는 정도 같아 보인다. 처음으로 연구실 동료들과 퇴근 후 맥주를 마시러 갔는데 그냥 냅다 각자 맥주만 시켜서 마시는 모습에 놀랐다. 학생들이 있어서 안주를 시키는 가격이 부담스러워인 걸까 싶기도 했지만, 둘러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테이블 위에 아무런 안주 없이 맥주잔만 덩그러니 올려져 있다. 어쩌다 뭔가를 시켜서 먹더라도 한국처럼 모두 함께 나눠먹는 문화가 아니다. 그러니 여러 음식을 시켜두고 나눠먹으며 술을 마시는 그런 안주와 술자리는 이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나를 위해 안주를 준비하고 술상을 차리게 되었다.
어느 금요일 저녁 퇴근길이었다. 금요일 퇴근길을 항상 발걸음이 가벼운 기분이다. 이틀의 자유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가 잘 진행되지 않아 일하러 가는 게 하루하루가 끔찍한 나날이라 주말을 매일 기다린다. 아시아마켓에 들러 주말 동안 해 먹을 요리가 뭐가 있을지 생각해 본다. 지나가다가 골뱅이 통조림이 눈에 띈다. 10유로가 살짝 넘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좀 더 특별한 날을 위해 남겨두기로 한다. 냉동코너를 지난다. 냉동낙지가 (실제로 "낙지"라고 한글로 적혀 있다.) 보인다. 가격은 골뱅이 한 캔과 비슷하니, 같은 가격이면 골뱅이보단 낙지다 싶어 낙지를 짚어든다. 집에 맥주가 있지만, 낙지볶음에 파전, 여기에 막걸리를 곁들이면 좋은 술상이 될 것 같다. 다행히 이 날은 기본 막걸리가 있다. (보통 기본 막걸리가 없이 포도맛 같은 다른 맛이 가미된 막걸리들만 있는 날이 많다.)
장을 보고는 집에 와서 냉장고에 막걸리를 얼른 넣어두고 잠시 쉰다. 즐거운 혼술 타임을 위해서는 에너지를 좀 충전해야 한다. 잠시 쉬고는 나를 위한 저녁 술상을 차리기 시작한다. 쉬는 동안 해동된 낙지를 이용해 양념을 넣고는 낙지볶음을 만든다. 나는 낙지볶음에 미나리를 넣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집에서 엄마가 미나리를 넣고 해 주셔서 그 맛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미나리는 도저히 구할 수가 없어서 내가 좋아하는 우리 엄마표 낙지볶음은 할 수가 없다. 오늘은 그냥 내 맘대로 낙지볶음이다. 막걸리가 시원해지는 동안 파전도 얼른 만들어본다. 해물 파전을 하고 싶지만, 해산물이 냉동실 새우뿐이다. 새우라도 넣어 새우 파전을 완성한다. 시원해진 막걸리를 그릇에 담는다. 컵이 아닌 그릇에 담아야 막걸리 감성이다. 낙지볶음을 맛본다. 낙지가 쫄깃함이 조금 부족하지만 냉동이니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하고 넘어간다. 양념은 내가 했지만 훌륭하다. 엄마의 낙지볶음처럼 미나리까지 넣었다면 훨씬 훌륭했을 텐데 아쉽다.
몇 달 후 금요일이었다. 이번 한 주는 조금 뿌듯한 한 주였다. 계약을 일 년 연장했고, 몇 주간 스트레스받던 발표도 겨우 끝냈다. 내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들이 많이 해결된 한 주였다. 그러니 이번 주 술상은 더 화려해도 된다 생각했다. 지금이 바로 10유로가 넘는 골뱅이 캔을 살 때다. 집에 있는 채소들을 이용해 골뱅이 무침을 하고 파전을 하고... 뭔가 더 하고 싶다. 평소보다 더 푸짐한 상을 차리고 싶었다. 그러다 두부를 발견한다. 두부김치! 별거 아닌데 한국에서도 밖에서 사 먹는 데는 그렇게 싸지많은 않은 두부김치다. 이렇게 메뉴가 정해졌다. 이 날 메뉴도 막걸리에 딱이다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일반 막걸리가 없었다. 집에 사뒀던 레드와인 한 병이 기억나서 페어링이 어떨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와인과 함께 하기로 한다.
골뱅이 무침을 먼저 만든다. 채소들이 충분치는 않지만 냉장고 속 재료들로 최대한 준비해 본다. 골뱅이 캔의 국물을 전부 버리진 않는데 약간의 비린맛이 있을지 몰라도 국물의 감칠맛이 양념에 가치를 더해준다. 내 양념은 간단하다. 간장, 고춧가루, 고추장, 설탕, 식초, 그리고 골뱅이 국물과 후추가 전부이다. 적당히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골뱅이와 갖은 채소들을 넣고 한데 버무려준다. 그다음은 두부를 잘라 따뜻하게 데워주고 볶음김치를 곁들여 그릇에 담아둔다. 파전도 잊지 않는다. 바삭하게 먹어야 하니 파전을 제일 마지막에 만든다. 마지막으로 와인과 와인잔을 챙긴다.
와인과 한 상 차린 한식 술상을 맛본다. 안주는 너무 맛있지만 오늘의 와인과 그렇게 어울리는 느낌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와인은 와인대로 즐기고, 안주는 안주대로 즐긴다. 각자는 좋은데 함께 하니 이렇게 어울리지 않기도 한다니 어쩔 수 없다. 이 날의 술과 잘 어울리진 않았지만 "푸짐한" 한 식 한 상이 었던 건 사실이다.
프랑스는 와인의 나라답게 와인이 한국보다 저렴하고 그 종류도 어마어마하다. 선택의 폭이 너무 넓다 보니 와인 초짜인 나는 마트의 와인코너만 가도 어쩔 줄 몰라한다. 뭘 사야 하는지 정하기조차 벅차다. 주변에 와인 애호가들은 너무나도 많은데, 그들은 와인을 잘 모른다는 나를 보면 뭐라도 더 설명해 주고 알려주려 애쓴다. (와인 애호가 외국인 친구의 집에 초대받아서 그날만 6 병의 와인을 시음했다.-아니 마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일 년 반의 시간 동안도 와인에 대해 전혀 늘지 않았다. 와인은 좋아한다. 다만 잘 모를 뿐이다. 와인을 가까이하기 가장 좋은 환경 속에 있으면서 그러지 못하고 있는 사실에 나 자신이 제일 안타깝다. 이번 글을 쓰면서 다시금 생각한다. 와인에 대해 좀 더 알아가야겠다고. 와인을 더 잘 알면 각 와인에 어울리는 한식 술상도 더 잘 차릴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알겠는가 혹시나 내가 미래엔 와인에 페어링 하는 한식의 전문가가 될지도 모를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