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럭 메뉴 선정의 어려움
포트럭 (Potluck)은 참가자가 음식을 가져와서 모든 참가자들의 음식을 한데 모아 함께 나누는 이벤트다. 모두가 음식을 맛볼 수 있게 어느 정도 충분한 양을 챙겨 와야 하는 것이 포트럭의 유일한 룰이라 하겠다. 프랑스에 오게 된 후 종종 포트럭파티에 참가할 일이 있다. 프랑스에서 내가 알게 된 사람들이 거의 연구실 동료들이니 모든 포트럭이 연구실과 관련된 건 당연한 일이다.
연구실 내 옆자리 친구는 루마니아에서 온 박사과정생이다 화학에 대한 열정이나 그의 성실함을 보면 나도 더 분발해야겠단 자극을 받게 된다. 그런 그는 굉장히 사교적인 성격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니 그가 코로나 시기에 박사과정을 시작하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이 시기는 그에게 많은 활동의 기회를 잃어버린 일종의 암흑기 같았을 것이다. 프랑스는 한국보다 더 일찍 마스크가 해제되었었다.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며 사람들끼리의 모임이 가능해지자마자 그가 추진한 두 가지가 본인 집에 연구실 일원들을 초대한 포트럭 파티와 연구실 전체 그룹 바비큐였다. 그는 고맙게도 내게도 그의 집에서 열리는 포트럭 파티 참가를 권했다. (모든 사람을 초대한 게 아님을 알기에 초대가 고마웠다.) 그는 인터내셔널 포트럭이니 내게 한국 음식을 준비하면 된다고 했다. 그는 이 포트럭에 진심이었다. 사람들을 초대하고 초대에 응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포트럭에 뭐 가져올지 정했냐고 묻곤 했다. 코로나가 끝나고 첫 연구실 일원들 간의 이벤트였기에 다른 이들도 기대하긴 매한가지였다.
대부분 이들이 한식에 대해 알지 못하는 상태라서 메뉴를 무엇으로 할지 고민이 되었다. 사람과의 만남에서도 첫인상이 그 이후에 영향을 미치듯, 그들의 첫 한식이 인상 깊었으면 했다. 내 요리를 먹고 한식을 더욱 맛보고 싶어 진다거나 뭐든 긍정의 영향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포트럭 메뉴를 막판까지 고민하다 겨우 결정한 것이 바로 불고기다. 너무 무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잘 모를 땐 무난함이 최고의 선택이 되기도 한다. 불고기용으로 얇은 소고기를 준비해 두고 당일이 되었다. 고기를 양념해서 익혀낸다. 너무 금방 끝났다. 아직 시간이 남아서 한식 특유의 매콤한 양념을 해볼까 싶어 매콤한 제육양념으로 고기에 양념을 해서 소고기 제육볶음을 만들었다. 채식주의자인 인도 친구가 생각나서 매콤한 제육 양념으로 냉장고 속 채소들을 볶아 채소볶음을 준비했다. 시간 여유가 많아서 여기에 추가로 김치볶음밥, 그리고 고기들을 싸 먹을 쌈채소와 쌈장까지 준비했다. 조금 과한 것 같기도 하지만 집에 있던 재료들로 준비한 거라 부담은 없었다. 그렇게 호스트인 친구 집으로 향했다.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약속 시간에 늦었다. 프랑스에서 사람들은 약속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다. 한국과 다른 점이라면 이상하리만치 약속에 이미 늦고 "나 늦음" 연락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집에 초대받았을 때 조금 늦게 가는 게 예의라고 한다.) 모두 도착하고 포트럭 상을 차리니 이미 처음 약속 시간부터 한 시간 반이 지나있었다. 루마니아식 각종 애피타이저, 세빌스에그, 일본 계란조림, 일본식 미트볼, 이탈리아 라자냐, 프랑스 치즈타르트, 인도의 향신료 칩과 매운 콩요리, 그리고 내가 준비한 한식이 차려졌다. 가장 먼저 사람들의 손이 간 것은 라자냐다. 라자냐를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게다가 이탈리아인이 만든 라자냐다. 궁금하긴 나도 마찬가지라 제일 먼저 나도 라자냐를 맛봤다.
잠시 후, 호스트 친구가 매운 요리 궁금하다며 한식 요리 소개를 부탁했다. 간단하게 요리들에 대해 설명을 하자 하나 둘 무슨 챌린지 하듯 매운 요리 맛보기에 도전하듯 매콤 제육볶음을 먹기 시작했다. 너무 맵지 않아 좋다고 했고, 매워서 잘 못 먹고 불고기를 더 잘 먹을 줄 알았건만 제육볶음이 더 인기가 많았다. 일본인 친구는 내게 먼저 "이거 불고기지? 난 자주 먹어봤어"라고 하면서 능숙하게 쌈에 싸 먹기도 했다. 이탈리아 친구는 얼마 전 한식당에 갔었는데 그곳도 맛있었는데 오늘 여기서 한식 맛보니 자기 한식에 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에게 선보이는 나의 첫 한식은 성공적이었다. 이 날은 처음 준비하는 포트럭이라 의욕이 조금 과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모두 고려한다고 이것저것 다 준비해서 뭔가 많아졌다. 다음이 있다면 좀 더 제대로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다행히도 그다음 기회가 찾아왔다. 비록 일 년 뒤였지만 말이다.
작년 봄의 첫 포트럭 이후에는 모두들 바쁘기도 해서 일 년이 지나서야 같은 친구가 다시 연구실 동료들을 초대해 두 번째 포트럭을 연다고 했다. 메뉴가 고민되었다. 이번엔 작년보다 참석한다는 연구실 동료들이 더 많았고 이번에도 처음인 친구들에게 한식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전보다 메뉴를 더 고민하고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절대 실패할 리 없다고 생각되는 한국식 양념치킨을 하기로 결정했다.
토요일에 오전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서둘러 요리를 시작한다. 먹기 편하게 순살로 하고자 닭다리살을 사 왔다. 원래는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닭가슴살을 사용하려 했었으나 그날 마침 마트에서 생닭가슴살이 다 팔려서 어쩔 수 없이 닭다리살을 사 왔다. 고기를 준비하기 전에 먼저 소스를 만든다. 다 튀겨진 튀김에게 소스가 준비되길 기다리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간장마늘양념과 오리지널양념치킨 두 가지 치킨을 만들 생각이었다. 먼저 간장마늘 소스를 만든다. 간장에 설탕 또는 물엿을 넣어 단맛을 내고 마늘 가루를 넣는다. 다진 마늘은 넣을 수도 있지만 깔끔함이 좋아 난 이 소스에 마늘가루 넣기를 선호한다. 그런 후 물을 살짝 넣고 한번 끓여주면 완성이다. 그다음으로 한국식 기본양념치킨 소스를 만든다. 고추장, 케첩, 물엿이 기본이다. 여기에 마늘가루를 넣고 조금 더 맵게 만들고 싶었기에 파리에서 사 왔던 동결건조 청양고추를 첨가한다. 맛을 본다. 내게는 너무 맵다. 매운 걸 좋아하는 친구들이 몇몇 있는데 그 친구들이 좋아했으면 했다.
이제 치킨을 튀길 차례다. 닭다리살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주고 소금, 후추로 밑간 한다. 튀김가루에 마늘가루, 파프리카 파우더, 케이안 페퍼를 조금씩 넣어 맛을 내준다. 절반은 마른 가루로 두고 나머지 절반에 물을 부어 농도를 맞춰 반죽을 만든다. 그런 후 닭고기에 젖은 반죽을 묻혀주고 그대로 마른 가루들로 덧입혀주면 튀길 준비 완료이다. 두 번 튀겨주는데 첫 번째는 고기를 속까지 다 익히는 게 목표다. 타면 안 되니 조금은 낮은 섭씨 140도 정도의 저온에서 순살이면 5분이면 충분히 다 익으니 그렇게 한번 튀겨 건져내 주고, 섭씨 170도로 온도를 올리고 튀김옷이 황금빛이 되도록 다시 한번 튀겨내 준다. 이때부터 온 주방에 치킨집 냄새가 난다. 이렇게 잘 튀겨진 치킨을 절반은 간장마늘 소스, 절반은 매운 양념에 버무려준 후 통에 담아 집을 나선다.
이번에도 내가 제일 제시간에 도착했다. 역시나 1시간도 더 지나서야 사람들이 모두 모여 테이블에 가져온 음식들이 모두 차려진다. 이번엔 좀 더 다양해졌다. 프랑스 샐러드, 치즈그라탱 종류, 초콜릿케이크, 이탈리아 라자냐, 페루의 고구마요리, 루마니아의 돼지고기 요리, 레바논 샐ㄹ드, 그리고 각종 술들. 각자 자기가 가져온 요리를 간단히 사람들에게 소개한다. 몇몇 사람들이 벌써 매운 요리 맛보고 싶다며 한국 요리를 제일 먼저 맛보기 시작했다. 뒤따라 매운걸 못 먹는 사람은 간장마늘치킨을 맛본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나온다. "Wow. It's amazing." 어메이징 하다고 한다. 뿌듯하다. 한 프랑스인 친구가 말하길, 자기는 보통 튀김요리를 안 좋아하는데 이거는 너무 맛있다며 다음에 꼭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했다. 많은 요리 중 내가 해 온 한국식 양념 치킨만 바닥이 났다. 남은 튀김 조각을 챙겨가서 마지막까지 먹는 친구도 있었다. 대성공이다.
가장 최근에도 인터내셔널 포트럭이 있어서 한식을 선보일 수 있었다. 이번엔 규모가 더 컸다. 우리 연구실이 아니라 연구소 전체 대상이다. 요리를 준비하겠다고 리스트를 남긴 사람만 스무 명이 넘고 실제 당일에는 서른 가지 종류의 요리가 차려졌던 것 같다. 다른 한국인 친구도 참여하는데 치즈김밥, 불고기김밥을 한다고 했다. 나는 이번에도 메뉴를 고민했다. 고민하고 고민하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맛보고 가장 좋아하는 한식으로 뽑는다는 닭갈비를 선택한다. 행사 전날 닭갈비를 미리 양념에 재워두고 포트럭 당일 출근 전에 서둘러 ㄷ락갈비와 채소들을 볶아준다. 맛을 보고 조금 양념이 아쉬워 간장과 고추장을 추가하며 더 진한 맛을 내본다. 굉장히 자극적인 맛이다. 하지만 맛있는-좋은 자극이다.
일을 하다가 어느새 점심 포트럭 시간이 되었다. 연구소 카페테리아 테라스에 테이블이 세팅되어 있었다. 전자레인지에 닭갈비를 데워서 내 요리 설명종이와 함께 닭갈비를 테이블에 올려둔다. 조금 일찍 와서 테이블 위에 올려진 세 번째 요리였다. 그렇게 자리 선정이 좋았던 것일까 아니면 나의 손맛이 좋았던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닭갈비를 굉장히 좋아했다. 여러 요리들이 있음에도 두, 세 번 더 가져가는 사람들도 목격했다. 내게 다가와서 너무 맛있다며 한식에 대해 칭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순식간에 동이 났다. 많은 요리 중 가장 먼저 바닥을 보인 요리가 나의 한식, 닭갈비였다.
포트럭을 처음 준비할 때는 매워서 못 먹을까를 너무 걱정했었다. 하지만 어차피 내가 맵찔이라 내가 만드는 요리의 매운맛은 외국인들이 챌린지라고 도전정신으로 맛볼 정도의 극강의 매운맛은 아니다. 내가 만드는 매운 요리는 고통을 주는 정도는 애초에 되지를 못한다. (내가 맛을 못 보니까) 간장양념의 요리들은 일본에도 많이 있어서 매콤한 요리가 다른 나라 요리와 더 차별점을 주는 듯했다. 매운맛은 있지만 매우면서 단맛이 가미된 요리가 있는 나라는 흔하지 않은 듯하다. 한국 양념이 외국인들에게는 상당히 새롭게 다가오면서 그들도 한국인이 사랑하는 단짠의 매력을 알게 되는 것 같았다. 포트럭에는 다른 요리도 많으니 내 요리의 매운맛을 견딜 수 없다면 다른 요리로 배를 채워도 될 것이다. 그렇기에 포트럭에서 매운 요리는 사람들에게 한식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상당히 매력 포인트인 듯 하니,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포트럭을 준비한다면 매콤한 요리를 추천하겠다. 강한 인상에 매운맛만큼 강렬한 게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