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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Jun 06. 2024

프랑스에 있는 동안 치즈를 좀 더 많이 먹을 걸 그랬어

프랑스에 올 때만 해도 이곳에 있으면서 내가 치즈와 와인의 준전문가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막상 프랑스에 와서 보니, 치즈와 와인의 세계는 내 생각보다도 너무 거대해서 초보자였던 나는 시작부터 이미 엄두가 나지 않는 정도였다. 와인을 사러가도 너무 많은 종류의 와인들 앞에서 뭘 사야 할지, 뭐가 좋은 건지,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와인이 종류만 많으니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 상황은 치즈도 비슷했다.


치즈의 나라 프랑스에서 2년 4개월을 머물렀지만 내가 시도한 치즈의 종류는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평소에 집에서 한식을 주로 요리해서 먹다 보니 치즈를 먹을 일이 많지 않았다. 점심을 때우는 캠퍼스의 직원 식당에서는 그저 뻔한 치즈들만 나오니 크게 새로울 게 없는 경험이니 식사로 치즈를 접할 일이 많지 않았다. 프랑스의 치즈 요리로 조금 알게 된 것은 꼬르동 블루 (포크 커틀렛인데 안데 햄 같은 것과 치즈가 들어있다)와 하끌렛(=라끌렛) 정도일 거다. 하끌렛은 한국에 있을 때도 알고는 있었는데 먹어보진 못했었다. 뭔가 색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저 치즈, 햄, 감자를 같이 먹는 건데 그게 뭐라고 대표 요리라 부르나 싶었다. 여기에 요리랄 것은 감자 삶기 뿐인데 말이다. 하끌렛을 제대로 즐기고자 한국인 친구와 함께 스트라스부르의 하끌렛 맛집을 어렵게 예약해서 찾아갔었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하끌렛을 맛볼 기회가 있었고, 그렇게 먹다 보니 이 맛의 조합이 단순하지만 너무 맛있게 느껴지더라.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라끌렛이 그리운 정도이다.) 그 밖에 요리로는 스트라스부르가 있는 알자스지방의 음식인 딱뜨플렁베 (얇은 피자처럼 생겼지만 하얀 프로마쥬 블랑을 바르고 구워낸다. 모차렐라 안 올린다~)에 올리는 Munster 치즈였다. 다른 딱뜨 플랑베를 먹어도 나는 Munster가 얹어진 게 최고더라. 어느 날은 오늘은 다른 딱뜨플렁베 먹어야지-하고 시킨 후 한입 맛보면 '아... 왜 Munster 안 시켰지'하고 후회하곤 했다. 약간의 꼬리꼬리함이 있는 Munster치즈를 좋아하게 되면서, 치즈의 매력을 좀 더 알게 된 듯하다. 치즈가 들어간 요리는 이 정도가 전부였다.

그 외 치즈를 접한다면, 술집에서 치즈 플래터 정도랄까? 일단 치즈 플래터에 치즈 종류는 한국의 그것과는 정도가 다르다. 어디 가서 시키더라도 좋은 가격에 한국의 몇 배는 좋은 치즈가 다양하게 나온다. 거기에 차가운 햄 종류들인 샤퀴테리와 작은 피클인 꼬르니숑, 와인, 빵을 함께 먹다 보면 단순한 것들 같지만 그 조합과 깊이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렇게 다양한 치즈 플래터는 여기저기에서 즐겼지만, 문제는 치즈 플래터에 치즈 이름이 따로 적혀있지 않으니 내가 먹으면서도 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프랑스에서 알게 된 치즈 중 프랑스 대표치즈 꽁떼(comte)가 있다. 한 때는 이 꽁떼에 빠져서 아침마다 빵집에 가서 갓 구운 바게트를 사 와서는 아침으로 꽁떼, 바게트를 먹곤 했다. 그렇게 몇 주는 먹었던 것 같다. 내가 찌운 살의... 5% 정도는 comte의 지방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먹는 치즈들만 사서 먹었다. 마트에서 comte, emental, mozarella, brie 정도의 프랑스인이라면 비웃을 치즈들만 사 먹었다. 가끔은 블루치즈 종류도 사 와서 뇨끼를 해먹기도 하긴 했다. 하지만 무난한 치즈들만을 사 왔다. 몰라서 그랬다. 어떤 치즈가 맛있는지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일단 사서 맛봤어야 했는데 왜 그렇게 치즈 구매에 조심스러웠는지 모르겠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정해진 후, 내 쿠킹 클래스에 매번 참여하며 친해진 프랑스인 자매가 함께 티타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들과 함께 근교 도시에 유명 파티셰의 가게에서 각자 원하는 케이크와 티를 마셨다. 그런 후 그 근처에서 주말마다 장을 보러 오는 로컬 마켓이 있다고 했다. 근처 농장에서 수확한 식재료들이나 직접 만든 신선한 치즈, 요구르트들을 판다고 했다. 마켓 자체는 크지 않았는데, 그곳에서 함께 간 다른 프랑스인이 치즈를 추천해 주었다. 신선해야 맛있다며 염소 치즈를 추천해 줘서 그것을 사 왔다. 집에서 한껏 들떠서 아침에 바게트를 사 와서 신선한 염소치즈, 그리고 다른 치즈 하나 (그 프랑스인이 제일 좋아한다는 것)를 맛보는데, 너무 맛있는 거다. 염소 치즈가 너무 맛있어서, 향이 그렇게 강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고 숙성되면서 보통 냄새가 더 강해진다고 한다.) 나 혼자 이걸 맛보는 게 너무 아까웠다. 바로 엄마와 언니에게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내면서 염소치즈가 너무 맛있다고 다음에 함께 여행하며 신선한 염소치즈를 먹자는 얘길 했다. 그렇게 너무나도 뒤늦게 신선한 치즈의 맛을 느껴서 '왜 진작 좋은 치즈들을 시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했다.

그런 생각을 한 바로 다음날, 한국지인 가족의 집에 초대를 받아 점심 식사를 하러 갔다. 샤부샤부를 준비해 줘서 맘껏 배 터지게 와인과 함께 샤부샤부를 먹었다. 그 후, 담소를 나누면서 지인의 남편분이 치즈 얘기를 하시면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치즈가 있다면서 얘길 하다가 내가 흥미를 보이자 바로 아래 마트에 내려가 치즈와 와인을 더 사서 오셨다. 그들이 좋아하는 치즈는 겉에 곰팡이 같은 것이 있으면서 쿰쿰한 향이 있는데, 안의 치즈는 고소한 넛트 향이 가득 나는 마일드한 치즈였다. 그들과 치즈를 먹으면서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치즈를 열심히 먹으려고요"라며 다짐을 내뱉었다.

온 우주가 나에게 치즈를 맛보라고 하는 걸까? 남은 시간 동안 치즈를 많이 맛보겠다는 다짐 바로 다음 날, 한글학교의 선생님 한 분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에 가족여행을 다녀오면서 내 선물로 치즈를 사 왔다는 거다. 신선할 때 맛봐야 해서 얼른 전달해주고 싶은데 언제 시간이 되냐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마트산 치즈를 위주로 먹었던 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치즈의 신선도를 신경 쓰는구나 싶어 신기했다. 그분이 준 치즈도 신선해서 그런지 향도 좋고 맛이 너무 훌륭했다. 치즈들이 맛있어 감동이었다.


프랑스를 떠나기 일주일 전에는 집에서 요리를 안 하고 요리 식재료들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짐을 비워가던 시기였다. 그때 곧 부활절이 다가올 때라서, 작은 광장에 조그만 마켓이 열려있었다. 그곳을 지나다가 치즈 점포가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갔다. 마지막으로 이런 곳에서 치즈를 사서 맛보고 싶었다. Comte 한 조각을 사는데 커다란 둥근 원형 치즈통에서 치즈를 잘라서 주는데 너무 크게 잘라주려 하기에 "아니요, 그보다 더 작게.. 작게..."라고 주문하며 크기를 조절했다. (무게별 가격이었다.) 내가 하나를 고르자 다른 치즈를 또 추천했다. 그것도 맛봤는데 또 너무 감동적인 맛이라, 그것까지 구매했다. 그러자 하나를 또 추천하더라. 이러다가 치즈 지옥에 빠지겠다 싶어 단호히 거절하고 두 개의 치즈만 샀다. 생각보다 비쌌다. 크기가 평소 마트에서 사는 것보다 커서 그랬을까? 그렇게 남은 일주일 치즈를 정말 열심히 먹었다. 치즈조각이 커서 하나는 뜯지도 못한 채, 지인에게 선물로 건네주고 프랑스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그때 못 먹은 치즈가 아른거린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올 때 인당 5 kg의 살균된 치즈를 가지고 올 수 있다고 했다. 캐리어에 선물로 나눠주기 위한 comte를 8개 정도 넣고 다른 치즈도 세 개쯤 추가했다. 그렇게 가져온 치즈를 지인들에게도 나눠줬다. 프랑스에서 지냈던 적이 있어 comte를 좋아하는 언니는 내가 치즈를 가져다준 날, 친구와 함께 와인 두병에 comte 하나를 다 먹었다더라. 너무 맛있다면서 말이다.


최근에는 한 와인바에 갈 일이 있었다. 치즈 플래터를 시켜서 치즈가 나왔는데, 그 모양새가 너무나도 단초로 와서 프랑스 생각이 났다. 가격은 두 배인데 치즈는 1/4 정도 인 느낌이라... 한국에서 좋은 치즈 맛보기는 역시 어려운가 하며'역시 프랑스에서 좀 더 먹을 걸 그랬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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