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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May 31. 2024

떠날 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요리했다  

프랑스에서 떠날 날이 이제 한 달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한국 식재들이 집에 많이 남아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내가 스트라스부르에서 지내는 동안 나를 가장 많이 챙겨준 고마운 친구인 E과 그의 부인 I에게 한식의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동안 그들의 집에 초대받아 루마니아 요리를 다양하게 많이 보여준 반면 나는 닭볶음탕 한 번, 두부요리 3종 한 번, 그리고 도토리묵 한 번으로 맛보기 같은 것만 보여준 게 전부였다. 한식이 이렇다고 한 상 차려준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기를 꺼렸던 이유는 내가 셰어 하우스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룸메들의 친구나 가족이 종종 오긴 하지만 아무래도 혼자 사는 집이 아니다 보니, 오는 사람도 살고 있는 사람도 조금 불편하지 않겠냐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떠날 때도 되어 요리를 못해준 게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 그들에게 설명할만한 명분이 있었다. "내가 이제 곧 떠나서 마지막으로 친구들에게 요리를 대접하려고 한다" -라고 말이다.


처음은 친한 루마니아 친구 부부에게만 해 줄 생각이었는데, 그들과 한 번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니- 다른 사람들도 초대하고 싶어 져 약속들을 더 잡았다. 그렇게 5번에 걸친 손님 초대-한식 밥상을 준비하였다.

1. 루마니아 부부 (연구실에서 제일 친했던 친구- 당당히 친구라 할 수 있다.)

2. 프랑스인 자매 (내 쿠킹 클래스에 매번 참여하고 내게 친절했던 프랑스인 자매)

3. 연구실 사람 3명 (연구실 사람들 중 그나마 내가 편한 사람들)

4. 한글학교 교장선생님과 프랑스인 친구 (고마운 사람들)

5. 한국인 지인 2명 (선생님으로 만나고, 계속해서 인연을 이어온 사람들)




1. 루마니아 친구 부부

루마니아 친구를 가장 먼저 초대했다. 무슨 메뉴를 선보일지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이 친구가 미식가에 요리도 잘한다. 지금까지 그의 집에 초대받아서 맛본 요리 중 실망스러운 건 하나도 없었다. 섬세한 맛들이 다 너무 좋았다. 한식은 김치만 먹어본 그에게 (내가 닭볶음탕, 두부요리 세 가지 정도는 줬었지만..) 한식의 묘미를 선보이고 싶었다. 그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굳이 한정식처럼 모든 요리를 한 번에 깔아서 선보이진 않기로 했다. 코스 형태로 음식을 선보이기로 결정하고 고민 끝에 정한 메뉴는 다음과 같았다.


-전채요리: 녹두전, 오징어 초무침

-메인 1: 돼지고기 양념 구이, 돼지고기 고추장 구이, 쌈재료 (상추, 쌈무, 파절이, 콩나물 무침, 쌈장)

-메인 2: 흰쌀밥, 순두부찌개, 각종 나물, 김치

일요일에 점심에 초대해서 요리할 시간은 충분했다. 먼저 전날 고기를 재워둔 것 외에는 당일 아침에 모두 조리를 시작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으로 집에 초대하는 거여서 먼저 집 소개를 간단하게 해 줬다. 모두 갖춰줘 있는 게 좋다고 했다. 2년 넘게 이 집에 머물렀지만 불편한 건, 외곽이란 점 외엔 없었던 좋은 집이었다. 내가 준비해 둔 와인도 있는데, 그 친구도 와인을 세병이나 더 가지고 왔었다. 그러면서 나중에 먹으라며 루마니아 수프를 만들어와서는 건네줬다. 따뜻한 사람들이다.


전채요리로 녹두전과 오징어 초무침을 건넨다. 녹두전에 녹두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양이 적어서, 원하는 대로 잘 구워지지 않았다.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오징어 초무침을 설명하니, 자기는 보통 오징어가 아무 맛이 안 나서 안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한 번 시도해 본다며 먹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더라. 이런 오징어라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이건 "맛"이 있으니까라며 양념이 맘에 든다고 했다. 첫 와인을 따서 음식에 와인을 곁들였다.


그런 후, 대화를 좀 하다가 돼지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와인잔을 들고는 주방에 함께 와서 얘기를 나눈다. 고기가 모두 구워지고 상추와 각종 쌈 재료들도 준비하고는 상을 차려낸다. 본식 첫 코스였다. 쌈 싸는 먹는 법을 알려준다. 한입에 먹어야 함을 강조한다. 왜 이렇게 불편하게 먹어야 하냐고 하더니 막상 먹으니 왜 이렇게 먹는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음~음~"하며 맛을 음미하더라. 두 부부가 모두 한국식 쌈을 즐기는 것을 보니 보기 좋았다.


두 번째 본식은 한국의 국과 밥, 반찬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순두부찌개를 준비했고, 집에 남아있던 건 나물들까지 총동원하여 각종 나물을 준비하였다. 이 친구가 흥미로워한 것은 바로 무말랭이와 고사리였다. 공룡시대 때부터 있던 그 고사리를 이렇게 먹는다는 걸 신기해했다. 그리고 맛보더니 자기가 예상하던 이상한 맛이 아니라서 신기하다고 했고, 무말랭이 식감이 좋다며 무말랭이를 무척 잘 먹었다. 이런 나물들로 비빔밥도 한 그릇 만들어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맛보게 했다. 이 중 순두부찌개를 정말 좋아했다. 맛의 조합이 굉장히 좋다더라. 점심부터 시작된 식사자리였는데,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세 명이서 비우는 와인병도 계속 늘어났다. 결국 밤 10시가 되어서야, 이들은 떠났다. 빈 와인병 6병을 남겨둔 채 말이다.


이 날이 워낙 즐거웠기에 나는 그 이후로 손님 초대 계획을 세우고 손님들을 집에 초대했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룸메들에게 "내가 곧 떠나서 마지막으로.."라는 동일한 멘트로 양해를 구했다. 착하게도 다들 언제나 괜찮다며 즐거운 시간 보내라고 하더라.


2. 프랑스인 자매

두 번째로 초대한 사람들은 바로 내 쿠킹 클래스의 단골(정말 매번 왔다)인 프랑스인 자매였다. 친절하게도 지난겨울에는 집에서 크리스마스 쿠키를 만든다며 나를 초대하기도 했었다. 내가 곧 떠나니 함께 티타임을 하자며 근교도시의 유명 블랑제리에도 데리고 가줘서 티타임을 하기도 했다. 날 좋아해 주는 게 고맙기도 하고,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이들 자매에게 가기 전 한국의 맛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서 그들을 초대했다. 이들을 초대한 날은 평일이었기에, 퇴근 후에 모든 걸 준비하기엔 시간이 촉박하기에, 전날 미리 어느 정도 요리를 마쳐두었다. 이들을 위한 요리는 다음과 같았다.


-전채요리: 직접 만든 쌈장과 채소스틱, 새우전

-메인 1:소갈비찜, 배추김치, 부추김치, 상추

-메인 2:감자탕, 나물들과 반찬, 김치

디저트는 본인들이 좋아하는 가게에서 사 오기로 했다. 레몬타르트 좋아하냐 묻기에 제일 좋아한다 답하니 잘됐다며 사 오기로 했다. 이미 마실 와인을 챙겨두긴 했는데, 와인을 한병 챙겨 오더라. 이게 프랑스의 문화인가 싶었다. 애피타이저로 준비한 채소스틱 (당근, 오잉)와 수제 쌈장과 새우전을 준비하여 맛을 보게 했다. 쌈장이 맛있다며 좋아하고, 새우전도 부드럽다며 좋아했다. 다음 메뉴로 바로 넘어가서, 소갈비찜과 김치들을 준비해 왔다. 갈비찜은 프랑스의 비프 뷔르기뇽과 비슷한 것 같다는 평이었다. 내가 비프 뷔르기뇽을 먹었을 때 '어? 갈비찜이랑 좀 비슷하네?'라고 생각했던 걸 기억하면 납득이 갔다. 인상 깊게도 부추김치를 잘 먹더라. 원래 부추전을 하려던 것을, 전날 김치로 담근 것인데 잘 먹어주니 고맙고 뿌듯했다. 마지막 메인은 감자탕이었다. 저렴한 등뼈를 푹 삶아내어 국물에 간을 하고 한국에서 보내 준 들깻가루까지 넣어주면 맛있는 감자탕은 금방이었다. 프랑스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는데 무척 좋아하며 즐기기에 집에 돌아갈 때 싸주기도 했다. 이 착한 자매는 와인만 가져온 게 아니라, 내가 곧 스트라스부를 떠나니 스트라스부르를 기억하라며 나에게 맞춤 선물들을 몇 개나 준비해 왔다. 내가 식사를 대접한 날인데도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걸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3. 연구실 친구들 

나에게 친절했던 연구실 친구 no.1은 처음으로 초대했던 루마니아 친구 E이고, 그다음이라면 아마도 또 다른 루마니아인인 T일 것이다. T만 초대하기보다 몇 명 더 초대할 생각으로 고민을 하다가 (T와 사이가 좋지 않은 그룹 멤버들이 제법 있어서...) T와 잘 지내는 이탈리아인인 L과 다른 연구실이지만 이 둘과 무척 친한 인도인 A를 집에 초대하기로 했다. 평일에 프랑스인 자매를 초대하고 바로 다음날에 이들이 오기로 되어 있어서, 프랑스인 자매와 헤어진 후, 설거지와 함께 다음날 요리를 하느라 조금 분주한 시간을 보냈었다. 6시에 서둘러 퇴근하고는 집에 가서, 이들을 위한 요리를 데우며 준비하기 시작했다. 메뉴는 다음과 같았다.


-전채요리: 직접 만든 쌈장과 채소스틱, 바삭한 군만두

-메인 1: 소갈비찜, 매콤 갈비찜, 부추김치와 상추쌈 재료들 (무쌈, 파절이 등)

-메인 2: 순두부찌개와 각종 반찬

이날의 테이블은 연구소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뤘다. 이런저런 불만 사항들이나.. 그리고 나 보다 이들 셋이서 더 친하다 보니, 내가 잘 모르는 얘기들이 나오기도 했다. 조금 아쉬움이 남기도 하는 식사자리였지만, 이들도 거의 밤 12시까지 머물다 가며 너무 늦어서 이제 가봐야겠다-하며 떠난 걸 생각하면 모두 즐겁게 보낸 식사자리였다고 생각되어 제법 뿌듯함이 느껴진다. 채소스틱의 쌈장을 무척 좋아했고, 갈비찜도 부드럽다며 좋아했고 (인도인 친구는 나중에 갈비찜 레시피를 물어봤다) 순두부찌개도 잘 먹는데 밥과 수프(순두부찌개를 수프라고 소개했으니까)를 함께 먹는 걸 낯설어했다. 인도인 친구는 젓가락을 사용할 줄 몰라 포크를 줬지만, 자기는 포크조차도 편하지 않다고 했다. 인도에서는 손으로 먹기 때문에 손이 편하다고 했다. 인도인이 손으로 먹는다고 들어보긴 했지만, 진짜 그렇다는 걸 알게 되었다.


4. 교장선생님과 친절한 프랑스인

한글학교 교장 선생님께도 고마운 게 많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많은 문화 아뜰리에들을 열 수 있게 모두 기회를 주었고, 내게는 언제나 친절하셨다. 물론 일하면서 100% 잘 맞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함께 하며 좋은 결과를 많이 냈다고 생각한다. 교장 선생님과도 친하면서 내 아뜰리에에 자주 찾아주는 프랑스인이 있었다. 중년의 여성분이신데, 영어를 무척 잘하신다. (알고 보니 젊을 적 미국에서 일하셨다고 했다. 심리학자이다.) 이 두 분을 평일에 초대했다. 내게 베풀어준 친절함에 대한 보답으로 한국의 한 상을 맛 보여주고 싶었다. 이 분들을 위한 메뉴는 다음과 같았다.


-전채요리: 오징어 파강회, 파전

-메인 1: 된장 수육, 고추장 삼겹살 구이, 명이나물, 부추김치, 무말랭이, 쌈무

-메인 2: 버섯전골과 반찬들

이번에도 두 분이 모두 음식을 맛있게 먹어줬다. 무엇보다 버섯전골이 인기가 좋았다. 한국인인 교장선생님은 (이제는 프랑스 시민권을 따면서 프랑스인이 되셨다) 남편이 프랑스인인데 한국에서 맛본 버섯전골을 좋아하여 댁에서 남편에게 해줘 봤지만 이 맛이 아니라고 했다고 했다. 남편이 너무 좋아할 맛이라기에, 버섯전골을 포장해 드렸다. 된장 수육과 고추장 삼겹살도 모든 메뉴를 다들 잘 먹었다. 이 날은 식탁에서 한국어 (나와 교장 선생님), 영어 (나와 프랑스인 M 씨), 프랑스어 (교장선생님과 M 씨)가 오고 가는 다소 정신없는 언어의 장이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언어를 쓰면서도 함께 어울리는 이 사회가 재밌기도 했다.


5. 한국인 지인들

스트라스부르에서 지내면서 고마운 한국인 지인들이 많다. 그중에도 이 두 분은 한글학교를 통해 만나게 되고 계속해서 친분을 이어온 존재들이다. 함께 술도 거하게 종종 마셨고, 서로의 생일도 축하해 줬으며, 함께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기도 해서 좋은 추억이 많았다. 종종 내가 요리한 음식을 배달처럼 가져다주곤 했지만, 아무래도 집에 초대해야 제대로 된 요리를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들을 위한 요리가 마지막 초대 요리였다. 무슨 메뉴를 만들지 고민을 했는데, 한국인들이라고 굳이 한국요리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평일이었기에 쉽게 만들 수도 있으면서 맛있는 요리를 준비하기로 한다. 내가 자신 있는 것들로 차린다. 한국인이니 굳이 코스로 내놓을 필요 없다. 우리 식으로 한꺼번에 다 차려내기로 한다.


오븐에 구운 바삭, 매콤 치킨 구이, 어묵튀김, 새우튀김, 돈가스 (+수제소스), 배추코울슬로, 마카로니 샐러드, 숙주샐러드, 그리고 인도네시아풍 볶음밥을 준비했다.

음식이 차려진 모습에 모두 우와~하며 환호했다. 메뉴 하나하나를 무척 좋아했다. 모든 메뉴들이 양이 많아서, 주방에 덜어두고 룸메들에게 양해해 줘서 고맙다며, 맘껏 먹어도 좋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지 다들 "you are so sweet"하며 고맙다고 했다. (나중에 한 룸메는 닭고기구이 레시피를 물어봤다.) 언제나처럼 즐거운 대화의 자리였다. 지금까지 여기서 지내서 있었던 일들이나 여러 가지에 대해 대화를 나눠서, 워낙 많은 얘기를 해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즐거웠다는 느낌만이 남아 있다.



이렇게 5번에 걸친 손님 초대 요리를 마쳤다. 열흘 남짓 남은 상황이었기에 이 이후에는 남은 식재료들을 모두 처분하고, 가능하면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 식사를 하기로 맘을 먹은 상황이었다. 룸메들이 양해해 준 덕분에 이렇게 기회가 있었지만, 그래도 종종 사람들이 초대해서 이런 자리를 가졌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룸메들에게도 내 요리를 더 나눴다면, 우리가 좀 더 친하게 지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떠날 때가 되니, 즐거운 기억도 가득하지만 아쉬움도 한 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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