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순대국밥 끓이기

by 이확위

프랑스에 있으면서 언제 한국이 가장 그립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국밥이 먹고 싶을 때"이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도 가족들과 오래 떨어져 살았고, 친구들과도 자주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기에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는 데는 익숙했다. 그랬기에 프랑스에 와서도 사람에 대한 외로움, 그리움은 없었다. 음식에 대한 그리움도 사실 크지는 않다. 내가 혼자 요리해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 이기에 한식이 그리울 일은 크게 많지 않다. 대부분의 요리들은 내가 할 수 있다. 다만 혼자 하기 어려운 게 많은 양을 오래 끓여야 하는 "국밥류"들이었다. 돼지국밥, 순대국밥, 곰탕과 같은 것들 말이다. 프랑스에 2년 넘게 있으면서 이런 류를 끓이는 것은 시도를 하지 않았다. 일단 내가 혼자 다 먹을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고, 두 번째라면 역시 오래 끓여야 하니 피곤하다는 점이었다. 세 번째 이유는, 셰어하우스에 사는데 육수를 오래 끓이면 집에 냄새가 날 수도 있다는 점이 걸렸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시도조차 포기했던 국밥 끓이기를 프랑스를 떠나기 직전 하게 되었다.


시작은 집 근처 언제나 가는 아시아마켓에서 순대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보통 고기류가 있던 냉동코너가 정리되고는 순대, 편육, 뼈 없는 족발이 냉동으로 들어와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순대를 보고는 바로 사 와서 순대 볶음을 해 먹었다. 며칠 뒤에도 여전히 냉동코너에 순대가 남아있었다. 그걸 보자, 순대국밥 생각이 간절해졌다. 바로 시도하지는 않았다. 며칠을 고민했다. 일하면서도 머릿속에 순대국밥이 아른거렸다. 끓일까 말까를 계속해서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러다 끓여야겠다고 마음먹고는 퇴근길에 바로 아시아마켓에 있는 정육점으로 향했다. 하지만 허탈하게도 돼지 잡뼈가 안 보이고 돼지 등뼈만 있었다. 큰 맘을 먹고는 아무것도 못하고 포기하느니 등뼈로라도 시도하자는 맘으로 돼지 등뼈를 2 kg정도 샀다. 워낙 저렴해서 4유로도 채 안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로 다음날 토요일 오전, 돼지등뼈를 끓이기 시작한다. 온 집안에 돼지 냄새가 날 것이 걱정되어, 부엌문을 닫고 창문을 열고 환풍기를 최대로 작동시키고 2시간 끓였다. 조금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오고 있었다. 한 시간쯤 더 끓이고는 국물 맛을 본다. 조금 연한 것 같다. 그러다, 전에 파리에서 사 왔던 사골 국물이 생각나서 남아있던 사골 국물 한팩을 뜯어 부어버린다. 그렇게 한 시간을 더 끓여 총 4시간을 끓여냈다. 국물이 뽀얗게 나왔다. 돼지 잡내는 안 나고 국물이 그래도 제법 진하게 되었다. 물론 한국에서 먹는 순대국밥처럼 진하진 않았다. 맛을 보고는 그래도 순대국밥을 위한 맛이 제법 나는 사실에 만족하면서 이 큰 한 솥을 어찌 다 먹나 싶어서 바로 친한 지인들에게 연락한다. 혹시나 순대국밥을 싫어할까 싶어 먼저 좋아하는지 묻고 좋아한다고 하니, 나눔 하기로 한다. 며칠 전에 담가둬서 맛있게 익은 섞박지도 꺼내서 그릇에 담는다. 순대국밥 국물을 담고, 곁들일 부추와 들깻가루, 마지막에 넣고 끓일 순대도 적당하게 잘라서 담는다. 나눔을 위해 순대국밥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선다.

다음날인 일요일에도 국밥을 먹었건만 여전히 남아있었다. 난 아무리 맛있어도 계속 같은 음식은 잘 먹지 못하는 사람이라, 이걸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근처에 사는 한국인 지인 가족이 생각나 연락했다. 다들 순대국밥 너무 좋아한다 말하기에 잘됐다 싶어 국밥을 챙겨 들고 또 한 번 집을 나섰다. 점심시간쯤에 도착하여 순대국밥을 건네주는데, 나보고 점심했냐 묻더니 그러지 말고 자기들과 함께 목자셨다. 이 집의 아이는 프랑스에서 태어나서 한국에 몇 번 가보긴 했지만 순대국밥은 처음이라고 했다. 아이가 한입 국물을 맛볼 때 나도 모르게 긴장하며 쳐다봤던 것 같다. 한 입 먹더니, 숟가락으로 다시 먹기 시작했다. 안심이 되었다. 아이 입맛에 맞는 모양이었다. 아이보다 물론 어른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들깻가루까지 넣고 한 입 맛보더니. "어우 이거 제대론데요"라며 밥을 말아서 먹기 시작한다. 다들 프랑스에서 순대국밥을 끓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고 있었다. 함께 맛보면서 이미 많이 먹어 조금은 질려버린 국밥임에도 함께 먹으니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이 집 아버님은 맛있어서 두 그릇을 드셨다. 뿌듯함이 커졌다.


며칠 뒤에는 첫 순대국밥 나눔을 했던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그때 순대국밥을 너무 맛있게 먹어서 자기도 끓여보려 한다면서 어떻게 국물을 냈는지 물었다. 설명을 해주고 몇 시간 뒤 정육점에서 뼈를 사 왔다고 했다. 그러더니 한두 시간 뒤에는 끓이고 있는 인증사진이 왔다.


스트라스부르 한인 가정에 순대국밥을 전파했다. 나는 곧 떠나지만, 나와 순대국밥의 기억은 사람들에게 남아 나를 기억해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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