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목이 아팠다. 살짝 만져보니 혹이 느껴졌다. 구글 검색을 해서 보니 편도선 위치 같았다. 구글링에 따르면 편도선염으로 목이 부을 수도 있다고 한다. 특별한 질병이 있는 게 아니라면 그냥 나을 거라 적혀있었다. 한국이었다면 아마 바로 병원에 갔을 수도 있겠지만, 프랑스에서는 병원을 예약해야 하는 것부터가 스트레스기에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으면 그냥 몸으로 버텨낸다. 이번에도 나 자신의 면역체계에 의지해 보기로 한다. 그러고 일주일 후쯤 지인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술을 마시며 놀다가 내가 말했다.
나: 저 여기 편도선염으로 부었어요. (목을 보여주며)
지인: (눈이 동그래지며) 거기 편도선 아니에요. 거긴 갑상선이에요.
나: 네? 갑상선이요?
지인은 갑상선 혹 수술을 해서 위치를 잘 안다고 했다. 우리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지인: 그래도 곧 한국 가니까 한국 가서 진료받아봐요. 한국이 초음파도 더 잘 봐요.
나: 그래야겠네요.
지인: 딱딱한 거 아니면 어차피 괜찮을 거예요
나: 어? 저 딱딱한데.
지인: (조금 당황하며) 그래도 안 아프면 괜찮을 거예요
나: 어? 저 만지면 아팠는데...
지인: (진지하게) 한국 가기 전에 병원 예약해 보세요.
그렇게 즐거운 술자리에서 갑상선 혹의 존재를 깨닫고 그 자리에서 바로 병원을 예약하기 시작한다. 내 주치의는 너무 바쁜지 매번 예약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다음 진료 가능날짜가 한 달 뒤다. 급한 대로 가장 빠른 진료가 가능한 일반의를 찾는다. 그렇게 며칠 뒤 의사를 찾아가서 진료를 받는다. 의사도 내 목의 혹을 만져본다. 혹은 더 커진 건지 목에 탁구공이 들어있는 느낌이다. 의사가 갑상선 초음파를 하도록 소견서를 써준다. 이제 또 다른 센터를 예약해야 한다. 프랑스는 이렇게 모든 게 분업화되어있고 모든 것이 예약제라서 너 무난도 피곤하다. 한국처럼 한 번에 쉽게 진료받을 수가 없다. 귀찮지만 최대한 빨리 초음파가 가능한 곳을 찾아본다. 내가 있는 스트라스부르의 거의 모든 병원 스케줄을 확인한다. 그렇게 가장 빠르게 일주일 뒤로 진료를 잡았다.
초음파를 하러 갔다. [초음파실(진료실)- 탈의실- 복도] 이렇게 연결되어 있는 구조에서 탈의실에서 상의를 벗으라고 한다. 역시나 가운은 없다. 프랑스 병원에서는 한국에서보다 쉽게 옷을 벗으라고 하지만 가운 같은 건 준비되어 있지 않다. 진료를 위해 옷을 벗는 게 뭐 어떻냐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일까? 가운으로 갈아입는 데 익숙한 나는 언제나 벌거벗은 느낌이라 어색하기만 하다. 갑상선을 초음파로 확인한 후에는 의사에게 가져다 줄 소견서를 적어준다. 궁금한 마음에 구글 번역기로 읽어본다. 혹의 사이즈가 적혀있다. 딱히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또다시 일반의와 진료를 예약한다. 일주일 뒤, 초음파 기록지와 의사의 소견서를 가지고 병원을 다시 찾아간다. 의사가 소견서를 보더니 피검사와 조직검사를 해보자고 말한다. 혹의 사이즈가 이 정도로 큰 경우는 조직검사를 해보는 게 좋다고 한다. 다시 소견서를 작성해 준다. 이제 또다시 예약해야 한다. 피검사해 주는 랩과 조직검사하는 곳이 또 다르다. 별도의 두 곳을 또 예약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아파도 편히 아플 수 없는 느낌이다. 예약하고 가야 할 곳이 너무 많다. 피검사를 먼저 예약한다. 조직검사는 의료예약 어플에서 아무리 찾아도 예약이 가능한 곳을 찾을 수가 없다. 프랑스애들조차 조직검사를 해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른다. 결국 연구실의 프랑스인 동료에게 병원에 전화해서 문의를 해달라고 한다. 병원에서 일주일 뒤로 예약을 잡아주는데, 병원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으니 프랑스어를 하는 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친절하게도 같이 가 줄 사람 없으면 자기가 가주겠다고도 말한다. 친절하다. 프랑스에서 운이 좋게도 친절한 사람을 많이 만났다.
조직 검사를 하러 가기 전에 피검사를 받았고 금방 검사 결과지도 받았다. 이제 조직검사만 마치면 결과지들을 들고 다시 의사와 진료를 예약하고 또 병원에 다시 가야 한다. 피검사 수치를 보니 간수치가 안 좋다. 아주 난리가 나있다. 한 달여간 잦은 술자리 때문일까. 코비드 이후 계속해서 찐 살 때문일까. 운동을 안 해서일까? 내가 먹는 약들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무슨 질환이 있는 걸까? 온갖 생각이 들면서 내 몸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내가 너무 몸을 방치한 채 살아온 건 아닌가 싶다. 이제 그럴 정도로 젊은 나이도 아닌데 말이다.
조직검사를 하는 곳에 불어를 잘하는 한국인 지인이 함께 가주겠다고 나서 주어서 검사 당일 함께 병원을 찾았다. 그날 아침에 목을 다시 만져봤지만 아무리 만져도 혹이 만져지지 않았다. 혹이 혹시 이동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 혹이 없는 것 같아 병원을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어렵게 예약한 곳이니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갔다. 나는 진료대에 눕고 지인이 의사와 불어로 얘기를 나눈다. 의사가 초음파로 먼저 혹을 확인한다. 이후에 조직을 떼어낸다고 했다. 초음파를 하더니, 혹의 크기가 1/3로 줄어들어서 조직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난 아무래도 운이 좋은 사람인 듯하다. 그렇게 조직검사가 필요 없다며 써 준 소견서를 지인에게 번역을 부탁해 보니, 당장 통증이나 다른 이상이 없으면 조직검사가 필요 없고 나중에 추적검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라고 했다. 한국에 돌아가기 열흘 전이었다.
다시 병원을 가봐야 얻을 게 없을 것 같아. 한국에 돌아가 다시 진료를 받기로 한다. 프랑스 병원에는 이미 한 달 동안 질려버렸다. 이런 예약 시스템에 장단점도 있다. 일반의에게 진료를 본 후, 소견서를 가지고 전문의를 찾아가는 것은 적어도 구글링으로 익힌 게 아니라 제대로 배운 의사가 나의 질병을 판단하여 적합한 진료과를 찾아주는 거니까 말이다. 내가 축농증으로 아팠던 몇 년 전, 내게는 치통, 안구통, 두통이 있었다. 난 치과에 가서 "윗니가 아파요." 안과에 가서 "눈과 그 주위가 아파요.", 그리고 내과에 가서 "머리가 아파요."라고 말하며 각각 별개의 약을 받아먹었다. 전혀 낫지 않았는데, 결론은 축농증에 의한 증상들이었고 이비인후과에 간 후에야 치료가 되었었다. 다만 너무 뻔한 경우도 있지 않나. 정말 안과에 갈 일인 경우, 그때조차 일반의에게 진료를 받고 소견서를 가지고 안과를 찾아가야만 환급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진료받을 시간만 지체시키는 듯하다. 이곳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게 급하다면, 그렇게 아프면 응급실을 가면 된다고. 한국의 시스템에 익숙해 언제라도 전문의의 진료를 쉽게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걸 아는 나는 이곳이 조금은 답답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불편함 때문에 프랑스 병원에 더는 가지 않고, 한국에 돌아왔다.
아프기 전에는 내 몸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건강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조금이라도 아프고 나서야 아프지 않다는 것이 건강하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나도 이제 어린 나이가 아니기에 조금은 더 나를 챙기고, 지금의 건강이 당연하지 않음을 인식하며 조금 더 나를 챙겨야겠다고 생각하게 해 준 나의 줄어든 갑상선 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