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친구가 차려준 풀코스 한 상

by 이확위

프랑스에 와서 얻게 된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은 새로운 인연들이다. 그중 가장 가까워진 이가 있다면 아마도 같은 연구실에 있던 루마니아 출신의 동갑내기 박사 후연구원인 E였다. E는 연구실의 다른 동료들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는데 그는 다른 이들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자신만의 기준이 있었고 그에 맞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나를 좋게 평가한 것 같았다. 나에게 항상 친절했고 많은 것을 도와주었다. 그러면서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서로를 알게 되며 점차 진짜 “친구”가 되어갔다.


그와 친구가 된다는 것은 그의 아내 I와도 친구가 됨을 의미한다. 그들은 일 외에는 거의 모든 것을 함께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베스트프렌드인 부부였다. 둘이서 함께하는 것들에 그들은 조금씩 나를 초대하여 셋이서 시간을 보내는 일들이 점차 더 생겨났다. 함께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고 새해를 맞이하고 기다리던 영화가 개봉하면 함께 가고 휴일에 공연에 갔다. 그들과 함께 하는 일 중 하나가 E네 집으로의 식사 초대였다.


처음 받았던 식사 초대는 2023년 부활절 시즌에 부활절 맞이 런치였다. 런치였기에 시작은 정오였는데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었던 날이었다. 이 정도 시간을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면 친해지지 않는 것이 어렵다. 그의 집에서 그의 아내 I와 나까지 셋이 그들이 준비한 요리와 각종 프랑스 와인, 여기에 더해진 온갖 주제의 대화들을 즐기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곤 했다. 이후에도 새로운 요리를 해주기 위해 나를 초대했고, 새해를 함께 맞이하며 식사를 하기도 했다. 이런 초대 때마다 E는 최소 4시간 정성 들여 요리한 것들을 대접했고 그의 모든 요리들은 언제나 인상적이었다.


그의 친절에 보답하기 위해 프랑스를 떠나기 전 그와 그의 아내를 집에 초대하여 한국 음식을 대접했다. 누구보다도 프랑스에서 나를 가장 많이 도와주고 한결같은 친절함을 보여준 이들이었기에, 이들을 위한 메뉴 선정은 다른 이들을 위한 것보다 훨씬 정성을 들이며 고민했었다. 다행히도 그들은 즐거웠는지 정오에 와서 밤 10시에 떠났다.


이후 내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집에 초대해 요리를 해준다고 했다. 그의 초대를 받으면 이번엔 또 어떤 맛있는 음식들이 있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약속된 날 트램을 타고 그의 진으로 향했다.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나 라는 생각에 벌써 아쉬웠다. 오늘은 모두 루마니아 요리로만 선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은 나뿐 아니라 또 다른 연구실 동료였던 이탈리아 출신의 A도 오기로 되어 있었다. A와 나는 대화할 일이 많지 않았었. 그래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그저 보이는 그의 모습이 전부였다. 지난번에도 한번 ㄴE의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며 내가 생각하던 곳보다 더 진중한 사람임을 알았다. 그런 그도 이번에 다시 한번 더 식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E와 A는 모두 이제 더 이상 연구실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만나고 모두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번에도 E네 부엌은 각종 요리들로 분주했다. E가 먹을 것을 많이 준비했다고 했다. 술도 당연히 언제나처럼 넉넉히 준비되어 있다 말했다.


첫 코스는 앙트레로 루마니아식 요리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익숙한 것들이었다. 연구실에 또 다른 루마니아인 T가 있는데, 그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자주 맛보았던 것들이었다. 다만 그 맛은 달랐다. T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E는 정말 “잘”하는 사람이었다. T는 시판 마요네즈를 썼지만, E는 그것을 혐오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집에서 직접 마요네즈를 만들어 요리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같은 이름의 요리지만 그들의 요리가 같을 리가 없었다. 앙트레에는 마요네즈가 많이 쓰였었다. 먼저 버섯샐러드가 있었고, 데블스 에그에 수제 마요네즈, 수제 피클이 얹어져 있었다. 그리고 가장 이색적이라면 돼지지방이 얇게 수육처럼 썰려 있어서, 생양파를 곁들여 먹는 것이었다. 약간을 소금을 뿌려서. 돼지껍질, 내장, 각종 돼지 요리에 익숙한 나는 이게 “지방”이라는 사실에 칼로리에 대한 두려움만 있을 뿐, 음식 자체에 거부감은 전혀 없었다. 모두 맛이 좋았다.

다음 요리는 수프였다. 토마토가 들어갔는지 붉은색이고, 훈제향이 났다. 훈제된 고기가 일부 첨가된 것이었다. E네 집은 수프 맛집이다. 얼마 전에도 내게 수프 하나를 선물로 끓여줬는데 너무 맛있어서 감동받을 정도였다. 너무 맛있어서 한국에 있던 언니와 엄마에게 한껏 자랑을 했었다. 항상 수프를 많이 주는데, ‘너무 많은데?’하지만 결국은 맛있어서 모두 비우곤 한다.

세 번째 코스가 이 날의 하이라이트였다. 루마니아의 일종의 꼬치 바비큐 같은 요리라고 했는데, 감성/그 분위기가 중요한 것 같았다. 축제 같은 날 하는 요리라고 했다. 연기를 한껏 뿜어내며 루마니아의 오래된 노래들을 틀어두고, 거친 빵에, 싸구려 머스터드를 곁들여야 한다고 했다. 디종 머스터드 같은 것이 아니라 싸구려 머스터드여야 이 요리가 완성된다고 했다. 나와 A에게 이 요리를 선보이며, 한쪽에서 그의 아내가 연기를 뿜어내며 계속해서 고기를 구웠는데, E는 루마니아 노래도 따라 불으며 한껏 들떠 있었다. 우리에게 이런 경험을 보여주는 게 그는 너무 신나는 모양이었다. 신나게 집 한가득 고기 연기를 내뿜으며 배불리 먹었건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와인을 마시며 조금 쉬다가 마지막 코스가 나왔다. 돼지 목살 스테이크였다. 홈메이드 감자튀김, 파프리카, 양파 등을 버무린 새 코한 샐러드가 나왔다. 맛있었다. 새콤한 샐러드는 배부른데도 입맛을 돌게 하며 계속 먹게 만들더라.

이렇게 점심부터 하루 종일 먹고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너무 많은 대화를 나누니 무슨 얘기들을 했었는지가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나는 그렇게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라서 주로 듣는 사람이고 어쩌다 한 마디씩 거드는 정도였다. 프랑스에서 이곳의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정말 다양한 대화 주제에 놀라곤 한다. 이곳 사람들은 정말이지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이미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이런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나도 전보다는 (절대 이들만큼은 아니지만) 내 의견을 더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나처럼 정오에 만났지만 거의 막차 시간 즈음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나 언제나처럼 정말 많은 대화와 많은 음식, 많은 술이 있었다. 그나마 내가 요즘 술자리가 많아 술을 자제해서 그렇지 평소라면 더 많은 술을 마셨을 것이다. 이런 E의 집에서의 만찬이 프랑스에서 경험한 많은 좋은 일 중 내가 제일 좋아했던 것으로 손꼽는 것 중 하나이다. 보통의 식당들보다 E의 요리들이 많고, 온전히 나를 위해 정성껏 준비된 요리들은 매번 감동적이었다. 나와 함께하며 즐거워하는 그들에게 고맙기도 하고, 함께하여 정말 즐겁고 좋은 시간들이었다. E의 요리를 맛보면서 정성 들여 요리한 시간을 담은 요리들이 확실히 섬세하고 깊은 맛을 지녔음을 알게 되었다. E와의 많은 추억이 있기에 프랑스를 떠나는데 더 큰 아쉬움을 느꼈다.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에 큰 미련은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알게 된 인연들과의 헤어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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