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때가 되니 실험이 잘 되는 건 기분 탓인가?

by 이확위

"연구 빼고는 다 좋아요. 연구만 잘 안 돼요." 프랑스 생활이 어떻냐고 사람들이 종종 묻던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이었다. 프랑스 연구실이 싫다는 것이 아니라 연구 내용, 내가 하는 일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뜻이었다.


2년여간 합성에만 시간을 보냈고, 그 합성이 안되었으니 결과가 없던 셈이었다. 유기화학을 하는 사람이라 합성을 하곤 하지만, 나는 합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합성 이후, 만들어진 물질을 가지고 하는 일련의 다른 실험들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니 내가 프랑스 연구실에서 연구가 즐겁지 않았을 것이라는 건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 것이다. 계약이 끝나기 40일 전쯤 마지막 그룹 미팅에서 지금까지 내 연구를 발표를 하고 탈탈 털린 그다음 날, 보스와 다른 정규직 직원 (보스가 내가 하던 거를 이어갈 사람으로 지정해 준)과 함께한 미팅에서 나는 알았다. 보스는 내가 남은 40일간 결과물을 내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는 것을. 그런 생각은 조금은 나를 기죽게도 만들기도 했다. 내가 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기대감도 주지 못하는 연구원이었구나라고. 하지만 한편으로 약간의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내가 해내면 어쩔래?'라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40일 간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계획을 세우고, 계약이 끝나기 전까지 할 수 있는 것들을 차근히 진행해 나갔다. 연구실과의 계약이 2년 4개월 만에 곧 끝나고 프랑스를 곧 떠나야 하던 때쯤이었다. 2년 3개월간 안되던 실험들보다 더 많은 결과들을 내기 시작했다. 원래 하는 메인 프로젝트의 경우, 추가로 합성을 진행하고 측정을 의뢰해야 했는데 측정을 기다리는 시간이 오래 걸려 사실상 내가 계획을 세운들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서둘러 합성을 진행하고 측정을 의뢰했다. 이 측정 결과에 따라서, 사실 내가 일찌감치 합성에 성공했다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측정의뢰를 위해 샘플을 넘기고는 내가 제안해서 진행하던 두 번째 프로젝트에 보다 더 집중했다. 합성을 끝내고는 본격적으로 측정들을 시작했다. 프랑스에 오고서는 분광기들을 이용한 실험은 거의 처음 하는 것이었다. 반가웠다. 곧 계약이 끝나 기기 트레이닝을 새로 받을 시간도 없어 다른 친구에게 기기 예약을 의뢰하고 그 친구가 있는 자리에서 지켜보게 한 후, 내가 실험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 주에는 최대한 실험을 빨리 끝내고 샘플과 실험하던 자리등을 모두 정리해야 하기에 삼일 정도는 시간을 빼놔야 했다. 그랬기에 시간이 촉박했지만 계획했던 실험들은 모두 끝낼 수 있었다.


일주일만 있었다면 논문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데이터를 모두 완성할 텐데-라는 아쉬움이 조금 남았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마쳤다. 프랑스에 있는 동안 측정했던 데이터를 정리할 시간이 없어서 한국에 돌아와 어느 정도 자리 정리가 된 이후에야 데이터를 정리하여 프랑스 보스에게 보낼 수 있었다. 보내면서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해놓고 왔지만, 이후에 이 사람들이 어찌할지 모르니 논문이 나올지 안 나올지 알 수가 없었다. 좋은 논문만 내려고 하다 보니, 자잘한 논문들을 내야 할게 쌓여있는 보스의 입맛에 내가 해두고 온 것들이 마음에 차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2년 4개월간의 프랑스에서의 연구원 생활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연구 생활이 잘 풀리지 않았던 것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했다. 나의 태도의 문제였을까? 합성을 더 열심히 했어야 했을까? 새로운 방법을 더 시도해야 했을까? 프랑스에서 즐기던 다른 생활들을 모두 제쳐두고 오롯이 연구에 더 몰두해야 했을까? 아무리 어떤 생각을 하던 이미 지나간 일이고 바뀔 것은 없다. 한국에 돌아와 새로운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니, 연구원으로 내 장점이 무엇인지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그것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들을 즐긴다. 합성은 빠를수록 좋다. 나에게 연구의 즐거움은 합성 이후에 온다. 프랑스에서 내가 합성을 조금만 더 빨리 끝냈더라면, 내가 가진 것을 더 보여주고 올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연구실 사람들에게 '그저 그런 별 볼 일 없는 능력의 한국에서 온 박사 후연구원'으로 남았을 것 같아 정말이지 아쉽다. 나는 적어도 그보다는 나은 연구원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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