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누군가에게 인사를 나누는 건 익숙했지만 그 떠나는 이가 나인 경우는 많지 않았다. 대학원 생활을 오래 하면서 많은 석사생들이 졸업하며 떠나갔다. 떠나는 건 나보단 주로 다른 이들이었다. 내가 졸업을 하고, 프랑스로 박사 후연구원으로 떠나오면서 남은 이들과 인사를 나눴을 때, 조금은 어색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익숙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프랑스에서 있는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다. 먼저 와있던 박사 후연구원이 떠나고, 짧게 머물던 인턴들이 떠나고 박사를 졸업하며 떠나고... 그렇게 사람들을 보냈는데 이번엔 내 차례였다.
내 계약이 일주일을 남겼을 때 주말에 한 친구가 자기 생일을 위해 일이 끝난 후 술자리를 갖자고 제안했다. 한동안은 이런 자리에 나가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자기들끼리 뭉치기 시작한 프렌치들 때문이라 핑계를 대겠다. 생일을 맞이하는 친구는 박사과정생으로 이제 더 이상 연구실에 나오지는 않고 학위논문 디펜스만을 남겨놓고 있는 친구였다. 나와 크게 가깝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적당한 예의바름을 장착하고 나를 대해주었으니 나쁠 기억도 없는 동료였다. 그 친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출신 나라, 다양한 언어에 능통하다는 것, 모두가 인정하는 연구실 제일의 브레인, 맥주와 축구를 좋아한다는 점 (독일의 레버쿠젠 팬이었다) 정도였다. 빈손으로 가기엔 너무 허전할 듯하여, 술자리에 가기 전 수제맥주 가게에 들러 조금 비싼 맥주를 골랐다. 맥주를 들고는 약속 장소로 갔다. 꽤나 많은 동료들이 모였다. 테이블에 자리가 부족하여 아주 빼곡히 둘러앉았다. (금요일 저녁이라 미리 예약한 자리 외에 더 앉을자리가 없었다.) 동료들과의 술자리는 오랜만이었다. 한동안 이런 자리를 피해왔기에 말이다. 하지만 이제 이런 자리도 이 친구들과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나와서 즐기니 제법 즐거웠다. 시간은 훌쩍 흘렀고, 트램 막차 시간이 다가오는데 어쩌다 보니 막차를 놓쳐버렸다. 이왕 늦은 거 자리가 마무리될 때까지 함께 맥주를 즐겼다. 생일 주인공인 친구와 내가 집에 가는 방향이 같아 함께 걸어갔다. 30분가량 걸어가며, 그 친구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내가 아는 게 레버쿠젠의 팬이라는 점이라서 그 친구에게 왜 그 팀을 좋아하는지 질문했다. (최근 레버쿠젠이 무패우승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때 그 날밤 그 친구와 나누던 대화들을 떠올랐다.) 이 친구와는 그날 밤의 그 함께 걷던 순간이 아마 마지막일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가깝던 사이도 아니었기에 아마 앞으로 우리가 만날 일은 없을 것이었고, 서로 그걸 알았기에 조금은 어색한 듯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나에게 그 친구는 돌아가서도 다 잘되길 바란다고, 나는 그 친구가 앞둔 디펜스를 잘하라며 서로를 응원하는 인사를 나누곤 헤어졌다. 뭐든 마지막이란 사실은 아쉬움을 안겨준다.
연구실에서의 마지막 주간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실험을 마무리하고, 가지고 있는 샘플들을 모두 리스트업 하고 정리하여 인수인계까지 마친다. 실험노트도 모두 점검하고 내가 있던 자리에 먼지 한 톨 정도만 남기고 모두 비우고 정리한다. 마지막 날은 분명 정신없을 것을 알았기에, 그 전날 연구실 사람들과 인사와 대화를 나눌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프랑스인들이 많으니 그들이 좋아할 수 있는 다과거리를 챙겨가자고 생각했다. (원래는 한국 음식을 조금 해서 차릴까 했지만, 떠날 준비를 하느라 요리할 것을 준비하는 것도 번거로웠다.) 그래서 고른 것이 치즈와 쏘시쏭(생소시지)이었다. 그리고 음료로 알자스의 스파클링 와인인 크헤멍을 준비했다. 그렇게 준비한 것들을 아침 출근길에 챙겨 들고 연구실에 도착한 후, 단체 왓츠앱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오늘 4시 반쯤에 준비된 다과를 즐기며 인사를 나누자고 말이다.
시간이 흘러 4시 반쯤이 거의 다 되어 나는 내 오피스의 책상에 음식들을 모두 차려두었다. 4시 반이 되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하필 오피스도 어두운 게 내 기분을 표현하는 느낌이었다. (사실 오피스는 거의 항상 어두웠다.) 그런데 십분 쯤 지났을 까 한 명씩 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이니 스파클링 와인을 따라서 나누고, 준비한 치즈와, 감자칩, 쏘시쏭 등을 모두 먹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연구실에 내가 초대한 메시지를 받은 모든 이들이 찾아와 주었다. 내가 정말 친하게 지냈던 것은 이들 중 소수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했었다. 다들 이렇게 시간 내어 찾아와 나와 인사를 나눠준 점이 고마웠다. 준비한 음식들은 모두 금세 동이 났다. 이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준비하길 역시 잘했다 싶었다. (역시 타인을 위한 준비는 자기만족이 아니라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준비하는 게 정답인 듯하다)
다음 날이 되어 오지 않을 것 같은 연구실에서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정말 모든 정리를 끝마치고, 떠나기 전 확인해야 할 체크리스트들을 출력하여 전부 체크하고 서명을 한 후 보스에게 가져간다. 이인자에게 마지막 점검을 받으라 하여 연구실 이인자인 E를 찾아간다. 추가로 해야 할 일이 있어 그것마저 마치니 정말 끝이 났다. 서류에 서명을 받고는 담당자 오피스를 찾아가 서류를 건네고 연구소 출입 키와 배지를 반납한다.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된다. 가방을 모두 챙겨둔 후, 모든 실험실, 오피스를 방문하여 사람들에게 말한다.
"Hey, I'm leaving now."
그렇게 모든 이들과 서로의 미래에 행운이 깃들길 바라는 덕담들을 나눈 후, 가방을 챙겨 들고 오피스 문을 하나씩 닫으며 밖으로 나왔다. 하늘은 맑았다. 이곳을 떠나는 나의 앞날도 이 푸른 하늘처럼 맑았으면 좋겠다 생각한 게 기억난다. 연구실에서 좋은 이들도 많이 만났지만, 마지막 몇 달간 실망스러운 것도 많았기에 이곳을 떠나는데 아쉬움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헤어짐은 역시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연구소를 뒤로 하고 걸어가는데 마음 한편에 뭔가 일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울컥함까지는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감성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저 헤어짐이, 이날 인사를 나눴던 그 순간이 그들과의 마지막일 것을 알았기에 느낌이 이상했을 것이다. 함께 나눈 시간들이 이제는 모두 추억으로 그들과는 정말 안녕이라는 사실이 와닿았기 때문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