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치기에게 폭행을 당하고 프랑스 응급실에 가다

by 이확위

파리에서 즐겁게 2박 3일간의 짧은 휴가를 마치고 사는 도시로 돌아가려던 기차역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7월 14일은 프랑스혁명기념일인 "바스티유 데이"이다. 이날 오전에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군사 퍼레이드를 하고 저녁 해가 지면 에펠탑에서 불꽃놀이를 한다. 전년도에 혼자 에펠탑 불꽃놀이를 봤는데 무척이나 만족스러웠고, 그 해에 다시 한번 파리를 찾아 친구와 함께 오전 군사 퍼레이드와 밤에 불꽃놀이까지 보고 난 그다음 날이었다. 나는 잠시 K-마트에 들러서 물건을 사기로 해서 숙소에서 헤어진 친구와 기차역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었다. 지하철에서 파리동역 (Gare de l'Est)에서 내리고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바로 기차역이었다.


왼손에 핸드폰을 쥔 채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섰다. 저 앞 쪽에 두 명이 올라가고 있었고 주변에 사람은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집에 가면 뭐 먹지? 아! 전에 사둔 짜파게티를 먹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뭔가가 내 손을 건드렸다. '응? 뭐지?'하고 고개를 돌리자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소매치기였다. 내 손을 쳐서 에스컬레이터 밖으로 폰을 떨궈 훔쳐가려던 그의 계획이 내가 생각보다 꽉 잡고 있던 터라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한 거였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바로 내 손에 있는 폰을 다시 낚아채려 했다. 그런데 내 핸드폰이 그의 쪽이 아닌 내 앞 쪽 에스컬레이터로 떨어졌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나는 재빠르게 두 계단 내려가 핸드폰을 쥐어들었고, 그가 휙 돌아 에스컬레이터로 올라서 재빠르게 나를 향해 뛰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바닥에 들어 눕듯 자세를 고치고 폰을 등 뒤로 감췄다. 그는 내 손을 어떻게든 낚아채며 내 폰을 빼앗아가려 했다. 난 불어를 못했으니 영어로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Don't!", "Stop it" "Help"등을 외쳤지만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았던 걸까. 그는 멈추지도, 누군가 나를 돕기 위해 오지도 않았다. 그가 거의 들어 누운 자세의 날 일으킬 수 없으니 내가 등뒤로 감춘 내 폰을 낚아채기는 불가능했다. 에스컬레이터는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고, 역으로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이 바글바글 할 것이니 그는 실패를 직감한 듯했다. 나에게 프랑스 욕인 듯한 말을 내뱉으로 주먹으로 내 얼굴에 펀치를 날렸다. 안경을 쓰고 있던 내 눈과 눈 사이 그 중앙을 그는 주먹을 날렸다. 아무 의미 없는 폭력이었다. 그저 화풀이였던 거다. 나에게 폭력을 가한 뒤, 바로 등을 돌려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내려가 지하철 역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일어났다. 조금 멍한 기분이었다. 이런 폭력에 노출된 적이 없었기에 모든 게 당황스러웠다. 처음에는 통증도 없었다. 그러다 코를 한번 만지고 손을 떼어보니 손에 피가 흥건해져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가 역에 들어서자, 피를 뚝뚝 흘리는 나를 보고 사람들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냐 물었고, 나는 영어로 소매치기에게 맞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나를 근처 벤치로 안내했다. 그런 후, 한 사람은 날 챙겨주고 다른 이는 경찰을 부르러 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 코피를 보더니 내게 휴지를 건네주고 가기도 했다. 잠시 후 경찰이 왔다. 내게 범인의 인상착의에 대해 물었고, 일부는 수색을 위해 떠났고 일부는 나와 남아주었다. 내게 진술서는 다음에 써도 되니 의사를 만나겠냐고 했다. 순간 '외국에서 응급실 가거나 구급차 타면 돈 많이 낸다는데?'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일단 의사는 만나는 것이 안전하다 생각되어 의사를 만난다고 했다. 친구에게 폭행당해서 어디 앞에 앉아있다고 카톡을 보냈는데 시간이 지나도 친구가 나타나지 않았다. 소매치기에게 맞으면서 안경이 망가져서 눈이 잘 보이지 않았던 나는 폰을 꺼내 메신저를 다시 켜본다. 알고 보니, 친구가 아니라 최근 메시지를 보냈던 한국에 있는 친오빠에게 보냈던 거였다. 오빠는 놀라서 대체 무슨 일이냐고 했고, 얼떨결에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사고 소식을 전하게 됐다.


친구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응급실에서 응급구조원이 내 Carte vitale 카드 (프랑스 건강보험 카드)를 받아가서 응급실에 접수를 마쳤다. 내가 응급실 진료실로 들어가면서 그들은 떠났다. 친절했다. 세명 중 단 한 명만 영어를 할 줄 알았지만 그래도 한 명이라도 영어를 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응급실인가 싶은 곳은 굉장히 어두웠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전진료실 같은 곳이었다. 바이탈을 체크하고, 무슨 문제인지 간호사가 체크하는 곳이었다. 그런 후, 응급실 진짜 대기실이 있었다. 이미 진료실로 들어올 때부터 친구와는 떨어지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프랑스 응급실의 대기실은 환자와 보호자가 함께하지 않았다. 보호자 대기실은 따로 있었다. 뭔가 사정이 있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혼자 기다리게 하는 듯했다. 그렇게 응급실 대기실에서 대기하는데 점점 머리가 아파왔다. 코피는 멈췄지만 두통이 심하고 열이 나는지 힘들고 아팠다. 두 시간쯤 기다렸을 까, 응급실 문이 열린다.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가는 속도가 굉장히 더디다. 저 안은 언제쯤 들어갈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혹시 날 잊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간호사가 와서 혈압을 잰다. 날 잊은 건 아니다. 내가 응급순에서 밀리는 거다. 내가 응급실에 도착한 건 11시였는데,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응급실 문이 열리고 날 불렀다. 이제 드디어 의사를 만나는구나 하는 맘에 힘든 몸을 이끌고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응급실 안에는 방이 5개쯤 있었고, 각 방마다 침대가 하나씩 있었다. 한 방에 들어가 침대에 앉았다. 의사가 금방 올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30분이 지나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몸이 힘들어 침대에 누웠다. 누웠다가 일어나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또다시 나의 존재를 잊은 건 아닌가 싶어 방 밖으로 나가본다. 옆 방의 사람도 나와서 서성이고 있다. 그 사람을 보는 순간 원래 기다리는 건가 보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침대에 와서 누웠다. 오후 6시쯤이 되어서야 의사가 왔다. 나에게 사고에 대해 전해 듣고 여기저기 진찰을 한다. 그런 후, 큰 이상은 없는데 두통이 있다고 한 게 걸리니 CT를 찍어보자고 했다. 기다렸다가 CT를 찍는데 또 두 시간 가까이 걸렸다. CT를 찍고 결과가 나오고 다시 의사를 만나는데 또 시간이 걸렸다. 저녁 8시쯤이 되어서야 의사가 각종 서류들과 결과지를 가지고 내게 왔다. 코뼈가 부러졌다고 했다. 하지만 뼛조각 같은 것은 보이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내게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만나러 가라고 안내해 줬다. 그러면서 며칠간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을 듯하여, 일하는 곳에 제출하는 서류도 준비해 왔다며 전해줬다. 정해진 양식이 있는 모양이었다. 회사 담당자에게 제출하면 된다고 안내해 주었다. 그러면서 이제 가도 된다고 했다. 돈을 안 냈는데 가도 되냐고 하니 그냥 가면 된다고 안내해 주었다.

IMG_3811.JPG 응급실에서 회사에 제출하도록 준비해 준, 업무중단에 관한 서류

그렇게 응급실에서 나오면서 계속 나를 기다려 준 친구를 만났다. 우리가 사는 도시로 가는 기차는 이미 막차가 떠났고, 파리에 하루 머무는 수밖에 없었다. 친구는 나를 걱정하는 내 친언니의 연락을 받았었다며 언니가 울었다고 했다. 뒤늦게 언니에게 연락도 하며 괜찮다고 안심을 시켜주었다. 새벽임에도 잠을 자지 않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했다.


나의 이런 프랑스 응급실 경험을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지인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분이 그러더라. 미성년자 아니면 보호자랑 같이 대기하게 안 두는 것 같다고 말이다. 뿐만 아니라, 너무 아파서 응급차를 불러달라 했더니, 의식이 있으면 택시나 다른 것을 타고 응급실에 가라고 안내했다고 했다. 자신의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 다쳐서 피가 많이 나기에 응급차를 부르려 했더니 아이 의식이 있냐고 묻더니 의식이 있으면 직접 데리고 가면 된다고 했다 한다. 프랑스는 한국과는 응급차를 부를 수 있는 기준이 다른 모양이었다. 그런면에서 응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갈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


응급실에서의 힘들었던 점은 몸이 아픈 것도 있지만 너무 오랜 기다림이었다. 많이들 얘기하지 않나, 응급실이 응급순이란 건 아는데 아픈 우리들은 내가 응급이라 느껴진다고. 프랑스 응급실에서 의료베드에서 앉아 밖의 간호사들을 지켜볼 때, 그들은 이것이 일상이라 그런지 바빠 보이지도 않고 그저 느긋하게 일하는 모습으로 보여 보는 나는 답답한 기분이었다. '저럴 시간에 나 좀 봐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아마도 이기적인 내 생각인 거겠지. 그들은 전문가이고, 이런 응급실은 그들의 일상일 거다. 그들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고 조금함은 그저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거다. 하지만 오전 11시에 도착하여 오후 6시에 의사를 만나기까지 대기실에서 봤던 환자들은 오랜 기다림으로 도착했던 순간보다 다들 더 아파 보였다. 게다가 아파도 의지할 누군가 없이 오롯이 혼자 기다리다 보니 더 힘든 기분이었다. 아직까지도 대체 왜 보호자와 함께하지 못하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기실이 너무 복잡할까 봐 그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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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경찰서에 가서 작성한 사건 진술서

병원을 다녀온 다음날이 되어서야 경찰서에 가서 사건 진술서를 작성했다. 당일 범인은 잡지 못했다고 했다. 그날 기차역이 평소보다 많은 사람으로 굉장히 붐볐으며 사고들이 많았다고 했다. 2023년 7월 14일에 사고가 있었는데 그로부터 반년쯤 지나서, 편지를 하나 받았다. 범인을 특정하지 못해 형사고소를 할 수가 없기에 사건을 종결한다는 편지였다. 그럴 거라 예상했었다. 다행히도 사건 이후, 난 별다른 트라우마도 없었고 (한동안은 내 쪽으로 다가오는 특정 인종의 남성들에게 겁을 먹기는 했다만...) 코뼈 골절도 금세 나았다. CCTV가 없는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고, 범인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닐 거다. 이번에는 붙잡히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붙잡혀 합당한 벌을 받기를 기원했다.



누군가는 폭행까지 당했는데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난 그런 생각은 안 들었다. 나를 폭행한 이는 단 한 명이었다. 하지만 내게 친절히 휴지를 건네주고, 자기 일인 것처럼 경찰을 불러다 주고 상황을 설명해 주며 도와줬던 사람들이나, 내 사고 소식을 듣고 프랑스에서 이런 일을 당해서 자신들이 미안하다고 하던 프랑스 지인들은 그 수가 훨씬 많았다. 그러니 그 단 한 명의 악인 때문에 내가 이 나라를 미워하고, 내가 이곳을 떠나고 그럴 이유가 어디 있겠냐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의 판단이 맞았다. 그 이후에도 난 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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