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확위 Aug 27. 2024

배추김치의 쓸모에 대하여

한국 혼자 사는 사람의 냉장고에 가장 추천하는 식재료라면 나는 "배추김치"를 선택할 거다. 그냥 익은 김치만으로 먹을 때 배추김치가 좋냐, 무 김치가 좋냐고 묻는다면 거의 50:50으로 고민이 되긴 한다. 하지만 활용도를 생각한다면 배추김치의 쓸모가 월등하다.

일단 무김치인 섞박지, 깍두기, 총각김치 등에 대해 생각해 보자. 겉절이를 먹는가? 일반적으로 겉절이로 먹지 않는다. 무 김치는 숙성시켜 충분히 익은 후에 먹는 게 보통이다. 반면에 배추김치는 어떤가. 갓 담근 겉절이부터, 적당히 익은 김치, 묵은지 등 익은 정도에 상관없이 다 먹는 방법이 있다. 더 오랫동안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 거다. 혼자 사는 이는 빨리 먹어치워야 하는 식재료들은 부담이다. 이렇게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부담이 덜하다.


얼마 전 깍두기를 담가 맛 좋게 잘 익었지만 혼자 먹기에 너무 많은 양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먹는다 해도 한 끼에 먹는 김치 양이 기껏해야 반찬 그릇 하나 가득 정도였다. 그러니 계속 깍두기가 남아 냉장고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다르게 먹을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검색도 해보았는데 기껏 나오는 게 깍두기 볶음밥이었다. 다른 요리법이 마땅한 게 없었다. 무김치들은 기껏해야 이 정도이다. 어릴 적 총각무김치가 남으면 엄마는 멸치와 된장을 넣어 조림으로 만들어주시곤 했다. 딱히 좋아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처리하는 방법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엄마조차 이런 조림 외에 무김치 처리법은 알지 못하셨다. 그렇기에 무김치가 남으면 난감하다. 버리기는 아깝고 (김치는 만드는 정성도 있고 익는데 시간도 들여야 완성되는 음식이니 쉬이 버릴 수가 없다) 그렇다고 어딘가에 사용하자니 그 쓰임이 마땅치 않다.


반면에 배추김치는 어떤가. 김치볶음밥, 김치찌개는 기본이고 김치볶음으로 두부김치를 먹어도 좋고, 김치로 국을 끓일 수도 있고, 김치전을 부쳐먹기도 좋고, 라면을 끓일 때 넣어도 좋고, 잔치국수에 얹어도 좋고, 닭볶음탕에 넣어 묵은지 닭볶음탕도 할 수 있고, 돼지고기가와 볶아 김치제육볶음을 해도 좋다. 맛있는 배추김치만 있으면 맛이 보장되는 다른 요리들이 다양하다. 그러기에 맛있는 배추김치가 냉장고에 있다면 그것만큼 든든한 것이 없다. 물론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 그런 사람들에게는 다른 얘기겠지만, 지금은 나의 얘기를 하는 중이니- 나처럼 김치를 좋아한다면, 냉장고에는 배추김치를 저장해 두자.

내가 가장 많이 해 먹는 배추김치 요리는 김치찌개이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세 종류의 김치찌개가 있었다. 돼지고기, 참치, 그리고... 멸치 김치찌개였다. 나는 돼지고기>>참치>>>>>멸치 순으로 좋아했다. 하지만 무엇을 넣고 만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 부재료들보다 푸익은 김치자체였다. 나는 김치찌개의 김치가 완전히 푸익은 식감을 좋아한다. 설겅한 느낌의 덜 끓인 김치찌개보다 오랫동안 푹 끓여낸 김치찌개나, 한 번 식힌 후 데워먹는 김치찌개의 그 진한 맛을 좋아한다. 최근 한국에 다시 돌아와 혼자 살게 되면서, 배추김치를 사 먹고 있다. 오히려 해외에 있을 때 배추를 사다가 배추김치를 담가먹곤 했다. 한국에 들어온 후 지금 사는 집 바로 근처에 마땅한 마트가 없어서 (걸어가기엔 멀다) 쿠팡과 같은 곳에 배달을 시키려니, 알배추만 팔더라. 김치용 배추는 한 두 포기를 팔지 않더라. 절임 배추도 그 수가 너무 많았다. 마땅한 배추를 구하지 못해 배추김치를 사 먹고 있다. 아직까지 맛있는 배추김치를 찾지 못해 정착하질 못했다. 최근에 산 배추김치는 대실패였다. 도착한 날 찌개를 끓이려 했지만 익지 않아 요리할 수 없었고, 덜 익은 김치의 맛을 보니 익어도 맛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다시는 배추김치를 저렴한 가격만 보고 사진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던 순간이었다.


외국에 있을 때 현지인들에게 한식 쿠킹클래스를 한동안 진행했었다. (일 년간 월 1회) 그중 한 번은 "김치요리"라는 제목으로 진행했었다. 사람들이 김치는 잘 아는데, 생김치를 먹는 것 외에 다양한 김치의 활용을 모르는 듯하여 그걸 알려주기 위한 수업이었다. 물론 그 김치는 "배추"김치를 말한다. 두 시간 동안 김치전, 김치비빔국수, 김치볶음밥, 김치찌개를 알려주었다. 내 기준에서 김치만 맛있으면 무조건 성공하는 요리들이었는데, 이날 유난히도 모든 요리가 잘 되었었다. 사람들이 시식하며 모두 너무 맛있다고 엄지를 계속 치켜들곤 했다. 이렇게 외국인도 2시간 만에 배울 수 있는 김치요리가 네 가지다. 이 정도 활용도를 지닌 다른 재료가 있나 싶을 정도로 배추김치는 그 쓰임이 다양하다. 그러니 냉장고에는 배추김치가 있다면, 당신의 밥상은 보다 풍요로워질 수 있을 거다. 메뉴 고민이 많다면 더더욱 배추김치를 쟁여두자. 요리를 잘 못한다면 "맛있는" 배추김치를 꼭 구하자. 배추김치가 당신을 구해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