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릴 때부터 물에 빠진 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미역국은 소고기 미역국만 좋아하는데, 어릴 적 엄마가 소고기 미역국을 한가득 떠주시면 미역을 먼저 골라 먹고 국물을 모두 먹고는 고기만 그릇에 남겼다. 고기를 매번 남겨서 엄마가 고기도 먹으라며 잔소리를 하시곤 했다. 그래서 집에서 저녁 메뉴가 미역국 일 때는 내가 나서서 국을 뜨겠다고 했다. 내 국그릇에 고기를 최대한 담지 않고 좋아하는 미역만 듬뿍 담기 위해서였다. 점점 크면서 고기만 덩그러니 남기는 게 너무 편식쟁이처럼 보이는 듯하여 억지로라도 먹기 시작해서 지금은 무리 없이 먹곤 한다. 하지만 여전히 물에 빠져있는 고기는 그다지 먹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어떤 고기든 국물에 잠겨있는 게 싫은 거냐고 묻는다면 또 그런 것은 아니다. 뼈에 붇어있는 채로 국물에 잠겨있는 것들은 별 탈 없이 잘 먹는다. 갈비탕이나 뼈해장국, 감자탕처럼 말이다. 그러나 살코기로 육수를 내고 남겨져 있는 고기가 별로인 것이다. 무엇보다 얇게 저며진 고기는 고기 살결이 보이는 게 언제나 내게는 먹음직스럽게 보이지가 않는다. 육수를 내기 위해 희생하고 남은 것을 먹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정확히 왜 별로인지 모르겠다. 막상 먹으면, 맛있다. 그런데도 먹기 전 물에 빠진 고기는 먹고 싶은 기분이 들지가 않는다.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끓였을 때도, 그 안의 고기보다 푹 익은 배추김치가 더 좋다. 김치만 서너 번 먹다가 돼지고기 한 번 먹는 정도다. 그나마 김치찌개 같은 찌개는 덜한 편이고, 고깃국에서 고기는 영 아니다. 특히 고명으로 얇게 저민 고기는 가능하면 주변인에게 양보하는 편이다.
예전에 한 아역배우와 할머니가 나오는 영화가 있었다. 도시에 살던 아이를 아이 엄마는 귀가 들리지 않는 산골짜기에 사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맡겨두면서 아이와 할머니가 함께 사는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손자가 할머니에게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하니 치킨을 모르는 할머니는 닭이란 걸 알고는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백숙을 만들어주었다. 기대에 들떠있던 손자는 치킨이 아닌 백숙을 보고는 누가 물에 빠진 닭이랬냐며 서럽게 운다. 백숙. 물에 빠진 닭, 물에 빠진 고기다. 역시나 나는 백숙이나 삼계탕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어릴 적에 엄마는 여름철 보양식이라며 백숙을 자주 해주시곤 했다. 난 백숙보다는 마지막에 먹는 닭죽을 더 좋아했다. 백숙의 닭고기 자체에 간이 되지 않아 싱거워 이것을 소금에 찍어먹어야 하는데 소금에 찍으면 소금이 닿은 부위는 짜고 다른 부위는 싱겁다. 백숙은 뭔가 요리가 덜 된 느낌이다.
음식에 대해 호불호를 말할 때는 대부분 남들을 납득시킬만한 이유를 가진 편이다. 하지만 물에 빠진 고기에 대해서는 나도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가 없다. "그냥"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데, 물에 빠진 고기는 "그냥 별로다"란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먹고 싶게 보이지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안 먹는 것은 아니다. 미역국의 소고기도 내 국그릇에 담긴 이상 남기지 않고 먹는다. 하지만 종종 먹기를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막쯤 고기가 너무 많아 억지로 먹곤 하는 편이다. 혼자 먹을 때는 마지막에는 고기를 버리기도 한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마지막에 남겨진 고기를 억지로 좀 먹다 보면, 맛이 없는 게 아님에도 그냥 힘든 기분이 든다. 누가 내가 왜 이런지 좀 알려주면 좋겠다.
혹시 당신도 물에 빠진 고기가 별로인가요? 그렇다면, 이유가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