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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Aug 25. 2024

흰쌀밥과 잡곡밥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살아왔기에 밥은 일상이다. 그렇게 어릴때부터 거의 매일을 먹으며 지냈으니 밥에 대한 취향정도는 제법 확고하다. 우선 잡곡밥에서는 흰쌀밥보다 정성이 느껴진다. 건강을 생각하며 직접 요리하는 것이기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집에서 잡곡밥을 먹고 자랐기에 잡곡밥에는 정성과 사랑의 감성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잡곡밥보다는 흰쌀밥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내가 차리는 내 밥상은 대부분 흰쌀밥이다.


쌀밥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흰쌀밥이었다. 흰쌀밥만 있을 때는 진밥/된밥에  대한 선호 정도로만 취향을 드러낼 수 있었다. (나는 진밥보다는 된밥을 선호한다.) 그러다가 내가 초등학생 때 쯤이었나, 갑자기 "오곡"이라면서 여러 잡곡을 섞어서 파는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가 그걸 사와서는 잡곡밥을 해주시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12곡"과 같은 제품들도 나오기 시작해서 온갖 잡다한 것이 다 들어간 잡곡밥을 먹게 되었다. 잡곡밥은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은 그저 집에서 주니까 먹는 거였다. 학교 급식은 주로 흰쌀밥이었고 어쩌다 검은 콩밥이 나오곤 했는데 콩밥이 나오는 날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싫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검은 콩을 싫어했었기 때문에 집에서 콩밥이 아닌거에 그저 감사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나 "흑미"가 나왔다. 쌀인데 검은색이었다. 잡곡밥보다는 흑미밥이 좋았다. 색이 조금 보라빛인 것 외에는 거의 흰쌀밥에 가까운 맛이기 때문이다. 잡곡은 밥으로 먹기에는 식감이나 기본 맛이 너무 다채로운 느낌이기에 나는 흰쌀밥을 선호했다.


잡곡밥으로 먹을 때 정말 별로라 느끼는 것은 누룽지까지 먹게 되는 경우이다. 종종 집에서 엄마가 돌솥밥을 해주시곤 했는데, 다섯 식구가 사는데, 후식으로 누룽지를 모두 나눠먹기에 양이 많지는 않아 엄마는 항상 아버지께 먼저 주고 우리들에게 나눠주곤 하셨다. 흰쌀밥 누룽지는 언제나 내 몫이 있기를 바라며 기다렸지만 잡곡밥인 경우는 그다지 원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식당에서 돌솥에 만든 영양밥이란 것들에 물을 부어 마지막에 먹는 누룽지는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잡곡밥 중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바로 찹쌀이 들어간 경우이다. 보통 식당이나 밖에서 찹쌀을 넣지 않는데, 많은 잡곡들을 거치고 우리 엄마가 정착한 잡곡 조합 중 한 가지가 바로 찹쌀이다. 진밥을 좋아하셔서인지 엄마는 찹쌀을 섞은 밥이 좋으신 모양이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엄마가 요리하는 거니 결정권은 엄마에게 있는 거다. 나는 내 집에가서 된밥을 해 먹으면 되는 거다.


흰쌀밥을 좋아하는 나지만, 최근에는 내 스스로 잡곡밥을 만들어 먹곤 한다. 일반 잡곡밥이 아니라, 렌틸콩을 듬뿍 넣어 단백질이 가득한 일명 "저속노화밥"이라 불리는 밥이다. 노년내과 전문의가 각종 미디어에서 추천하는 식단으로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하루 3끼를 반찬에 이 저속노화밥만 챙겨먹어도 하루 필수 단백질을 챙길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하여 바로 재료들을 주문했다. 재료는 간단했다. 렌틸콩:흰쌀밥:현미:귀리=2:1:1:1 비율로 섞어 불렸다가 밥을 하는 거였다. 처음 맛보니 렌틸콩에서 오는 고소함이 가득해서 사실 밥이라기보단, 으깬 콩을 먹는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하지만 여기에 귀리의 식감이 탱글하게 씹히는게 그나마 밥이라는 느낌을 조금 주더라.


식이요법을 할 겸, 한동안 저속노화밥을 먹었다. 그렇지만 양보할 수 없이 흰쌀밥을 해서 먹는 날도 여전히 있다. 바로 미역국을 먹는 날이다. 미역국은 무조건 흰쌀밥이다. 다른 밥에 양보할 수가 없다. 잡곡이나 다른 것과는 그 맛이 어울리지 않는다. 잡곡은 미역국의 진정한 맛을 방해한다. 다른 요리에 곁들여 먹기에는 역시 가장 단순한 맛의 흰쌀밥이 최고인 거다.

요즘 일반 식당에서 잡곡은 기껏해야 흑미정도인 것 같다. 아무래도 백미에 비해 그 가격들이 부담되기 때문일 것이다. 영양돌솥밥이라 해두고는 흑미만 조금 넣고 위에 은행 조금 얹어낸 집들도 보인다. 그렇기에 가끔 집에가 엄마가 차려준 밥을 보면, 지금껏 여러 후보들을 거쳐 엄마가 정착한 엄마표 잡곡밥을 만나게 된다. 그 안에는 가족을 위한 엄마의 정성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흰쌀밥을 좋아하지만 어디서든 잡곡밥을 주는 곳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님에도 그걸 외면하기 어렵다. 그 안에 담긴 정성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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