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취향이지만, 돼지고기와 소고기 중 무엇을 더 선호하냐 묻는다면 내 선택은 돼지고기이다. 소고기도 물론 맛있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소고기라도 나는 소고기가 쉽게 물리더라. 지금은 혼자 살고 있어서 엄마 밥을 먹을 일이 거의 없지만, 어린 시절에 집에서 반찬으로 고기반찬이 정말 자주 나왔다. 엄마는 식재료에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이셨고, 좋은 고기들로 매번 반찬을 만들어주시곤 했는데 계속 먹으니 어느 순간 고기가 질리는 기분이었다. 그때 반찬이 소갈비찜이었다. 엄마가 소고기를 너무 자주 해주셔서 질려버렸던 것이다.
그냥 구워 먹는 소고기는 맛있게 먹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두 점까지는 맛있게 먹는다 그러나 그다음부터는 질리는 기분이다. 소고기의 기름은 더 쉽게 '느끼해'라고 느껴버리지만, 삼겹살의 기름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게다가 소고기는 맛있게 요리하기가 돼지고기보다 더 어렵다. 맛있게 잘 구워내기도 사실 돼지고기보다 쉽지 않다. 돼지고기는 그냥 다 익히면 그만이지만, 소고기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한국식 고깃집에서 소고기를 구워 먹을 때도 고기 질도 중요하지만 결국 굽는 사람의 테크닉이 맛을 결정하게 된다. 나는 쉽지 않은 소고기보다는 보다 단순한 돼지고기가 좋다. 요리하기도 돼지고기가 훨씬 편하다. 각종 양념으로 요리해 버리기에 돼지고기만큼 간편한 재료가 어디 있는가. 그런 면에서 소고기가 비싼 한국에서 내 취향은 가성비가 좋다..
최근 일 때문에 2년 조금 넘게 프랑스에서 살았다. 그곳에 가니 돼지고기가 한국처럼 흔한 재료가 아니었고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였다. 그나마 내가 있던 알자스 지역은 다른 프랑스 지역에 비해서는 독일 영향 때문인지 돼지고기 요리가 제법 있는 편이었지만, 전반적으로 돼지고기는 프랑스인들이 선호하는 고기가 아니었다. 프랑스에서 외국인 연구원 30여 명을 위해 한식을 준비할 일이 있었다. 그래도 나름 생각하여 비건들을 고려하여 비건잡채도 준비했다. 내가 준비한 메뉴는 찜닭, 비건잡채, 김치볶음밥, 제육볶음이었다. 당일 사람들에게 음식을 설명하며 나눠주는데, 찜닭 앞에서 한 사람이 할랄이냐 물었고, 아니라 하니 그냥 패스하더라. 문제는 돼지고기였다. 무슬림들이 종교 이유로 제육볶음을 먹지 못했다. 게다가 더 맛있게 만들겠다고 김치볶음밥에 베이컨을 넣어버려 그것까지 먹지 못하게 됐다. 종교적 이유만이 아니라, 돼지라 하니 돼지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먹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내가 만든 음식들은 다 맛있었고, 그 외 사람들이 바닥까지 음식을 모조리 비우긴 했다. 다만 끝나고,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었다. 이날 자기 반성보다 놀란 것이 바로, "난 돼지고기는 별로야"라던 사람이었다. 돼지고기가 싫어서 먹지 않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것이기에 더 놀랍게 다가온 것 같다
한국에서 보통 메뉴를 고를 때는 예산에 따라 돼지와 소 중에 고르게 된다. 회식할 때 돈을 써도 되면 소고기를 시키고, 그게 아니면 삼겹살을 시키 듯 말이다. "오늘은 소고기다!"라고 할 때 많은 이들이 환호하는 것을 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고기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소고기가 메뉴라고 했을 때 주변인들은 환호하고 나는 속으로 아쉬움을 삼킨다. 나는 정말 그렇게 많은 이들이 돼지보다 소를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그렇다고 내가 언제나 돼지고기를 더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돼지고기가 더 좋은 것은 "구이" 한정이다. 국물 내는 육수용으로는 돼지보다 소고기를 더 선호한다. 육수에서 돼지고기는 그 존재감이 너무 커서 자칫 "잡내"같은 거슬리는 맛을 내기 때문이다. 소고기는 그에 비해 육수 내기가 더 수월하다. 넣고 그냥 끓여도 기본 맛 좋은 육수가 된다. 내가 좋아하는 국중 하나가 엄마가 끓여주는 시래깃국인데, 조금 특이하게 엄마는 소고기 육수를 이용하신다. 소고기로 육수를 내고, 된장을 풀고 시래기를 넣어 끓여낸다. 여기서 마지막 맛의 정점을 내는 것이 파로 약간의 청양고추이다.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우리 집에서도 냉동실에 꾸준히 청양고추를 냉동시켜 보관하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시래깃국을 위해서였다. 하루는 엄마가 끓여주셨는데, 평소와 맛이 달랐다. 뭔가 부족했다. 그래서 "평소랑 맛이 좀 달라요"했더니 엄마가 바로 "아! 엄마가 청양고추를 깜박했네"라셨다. 그렇게 약간의 청양 고추를 넣어 평소의 맛 좋은 엄마표 시래깃국이 완성되었다.
생각해 보면 엄마표 돼지고기 요리는 거의 없었다. 엄마가 기름을 싫어하셔서 기름기 많은 돼지고기 요리가 집에서 많지 않았다. 엄마는 구이용도 삼겹살보다 목살을 선호하셨고, 집에서 수육을 하셔도 통삼겹이 기름기가 적은 다른 부위를 이용하시곤 했다. 엄마가 돼지고기를 이용하는 것은 아마 고추장불고기, 제육볶음일 때 정도였다. 그런 엄마표 집밥을 먹고 자랐음에도 자취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이제는 밥상도 독립을 한 듯하다. 내 식탁에는 소고기보단 돼지고기를 이용한 요리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단순히 가격 때문은 아니다.) 돼지고기를 이용해서 내가 만드는 요리들은 고추장을 넣은 제육볶음, 유튜브에서 중식 셰프의 레시피를 따라한 튀긴 마늘과 튀긴 양파를 넣은 돼지고기 조림, 통삼겹 수육, 돼지고기 김치찌개, 콩나물 불고기, 오삼불고기, 마파두부, 돼지고기 가지볶음 등 그 종류가 제법 다양하다. 반면에 소고기를 사는 경우, 국을 만들기 위해 국거리 소고기를 살 때 외에는 차돌박이 된장찌개, 소고기 구이, 소고기 야채볶음, 소불고기 정도가 끝이다. 소고기를 사는 경우 주로 한식이 아닌 양식을 위한 식재료로 더 많이 쓴 것 같다. 라구소스 라든가.
돼지고기냐, 소고기냐. 무엇이 더 좋은지를 묻는다면 돼지고기를 택할 것이다. 그러다 둘 중 하나만 평생 먹으라고 한다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힘들 것 같다. 각 재료의 쓸모가 다르니까 말이다. 그 맛이 다르니 어울리는 요리가 다른 법이다. 그런 점에도 외국에서 만난 종교나 그 외 자신만의 신념을 이유로 특정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새삼 대단했다. 나는 그들처럼 깊은 생각을 가지고 음식을 대하지는 않지만, 매 순간 맛있게 먹기 위해 애쓴 다는 점에서 나름의 신념을 지니고 있다 하겠다. 돼지고기와 소고기 중 더 선호하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좋아하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나는 둘 다 좋다. 그리고 둘 다 먹을 수 있는 나 자신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