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는 한국인(한국인뿐만 아니라 한중일 세 나라 모두에 해당될 듯 하지만)이라면 어릴 적부터 접해온 기본적인 식재료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 두부에 대해 딱히 호/불호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두부는… 그냥 두부인 거다. 최근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두부에 대하여”에서 하루키는 “기껏해야 두부, … 나는 두부의 그런 존재방식을 좋아한다”라고 말하더라. 공감이 갔다. 내가 표현하고 싶던 느낌 그대로였다. 기껏해야 두부. 우리네 밥상에서 두부의 위상을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기껏해야 두부라 별 볼 일 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두부가 없다고 생각하면 허전해지는 밥상이 여럿이다. 두부는 매번 커다란 존재감은 없을지언정, 몇몇 요리에서는 정말이지 주인공 못지않은 존재감이 있기 때문일 거다.
두부가 주인공인 식당이 얼마나 있을까? 내 기억 속 첫 두부 요리점은 고향집 근처의 식당이었다. 어릴 적 시골에 살았는데, 우리 동네에 한 맛집으로 인기 많은 식당이 있었다. “순두부”식당이었는데, 그곳에 가면 먼저 하얀 순두부와 간장 양념을 준다. 그런 물에 뽀얗게 잠겨있는 순두부를 국자로 그릇에 떠서는 간장 양념을 살짝 끼얹어 먹는 것이었다. 어릴 때만 해도 그런 심심한 맛에 별로 감동을 하지 못했었기에 이 두부가 맛있는 두부라는 생각을 못 했었다. 나중에 커서 다시 식당을 찾아 순두부 맛을 보고 “아, 여기 진짜 두부 맛집이구나”라고 깨달았는데, 내 어린 시절 나를 데리고 가던 부모님이나 식당을 채우고 있던 어른들은 일찍이 그 맛을 알아왔던 것이라 생각된다.
성인이 된 후 기억에 남는 두부요리라면, 대전 사는 내 베프를 만나러 갔다가 함께 갔던 두부 두루치기 식당이었다. 돼지 두루치기는 알아도 두부 두루치기는 생소했는데, 요리가 나오고 보니, 두부조림인 듯했다. 다만, 두부 두루치기와 오징어 두루치기를 섞어서 만들기도 했고, 뭐랄까 두부조림이라고 하기에는 존재감이 약해서 두부 두루치기라 부른 게 아닌가 싶었다. 결국 고기나 오징어나 그런 주인공 같은 녀석들을 양념해서 버무리듯 두부를 요리해 낸 것이니 두루치기라 불러도 납득이 가기는 한다. 다만 두부+두루치기라는 이름의 조합이 그저 낯설었기 때문일 것이다. 난 사실 그전까지 두부조림을 먹어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집에서 어머니는 두부를 구워내고 위에 양념을 얹는 형태의 요리를 해주셨었기 때문에, 두부를 조려낸 요리자체가 처음이기는 했다. 대전에서 친구와 함께 맛본 두부 두루치기의 맛이 좋아, 그 후 외국에 나가 살면서도 종종 두부조림 (두부 두루치기)를 해 먹곤 했다. 이렇게 두부가 주인공인 요리도 제법 있다.
한국에 있으면서 누군가가 “난 두부가 싫어”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두부는 그 정도로 호/볼호가 나뉠 만큼 뚜렷한 재료가 아니기도 하고 우리 밥상에서는 너무 당연한 재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두부에 관해, 프랑스에서 만난 내 루마니아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난 두부가 싫어. 기껏 가공했는데 아무 맛도 안나잖아. 그럴 거면 왜 두부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어.”라고 했다. 두부가 싫다고? 그의 말을 듣고는 정신 차려보니 나는 두부 대변인이 되어 있었다. 내가 주장하는 두부의 장점은 다음과 같았다.
-두부는 흰 도화지, 캔버스 같은 존재이다. 그러니 두부가 특별하게 진한 맛이 있을 필요는 없다.
-두부는 식물성 단백질을 요리해 먹기 위한 좋은 수단이 된다.
-그리고, 두부도 맛있는 두부는 맛있다…
그는 그래도 납득하지 못했다. 굳이 두부로 만들어서 먹을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그냥 콩 자체로 스튜를 해서 먹을 수도 있고, 식물성 단백질로 섭취하는 방법은 많다고 했다. 그와의 약간의 논쟁을 벌이다가 서로 두부 요리를 해주기로 했다. 그는 콩 스튜를 내게 만들어 준다고 했고, 나는 한국식 두부요리로 두부가 맛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한국에는 사실 콩요리법 자체가 많지 않다. 내가 아는 콩 요리는, 콩밥, 콩국수, 콩자반이 전부이다. 그러나 콩이 두부로 변신하면 그 쓰임이 다양해진다. 각종 찌개와 국에도 들어가서 단백질을 보충해 주고, 두부조림과 같이 종종 메인 재료가 되기도 한다. 콩으로 바로 만드는 요리법이 많지 않았기에, 가공된 두부를 이용한 요리들이 많아진 게 아닌가 싶다.
해외의 마켓에 가면 종종 경악하고 마는 것이, 맛이 가미된 두부들이다.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초코맛과 딸기맛도 본 적이 있다. ‘두부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라는 게 내 심정이었지만, 두부가 아무 맛도 안 나서 싫다고 했던 외국인 친구의 말을 생각해 보면, 이들에게는 두부에 관한 요리법이 익숙지 않을 테니 아마도 두부 그 자체에 맛을 넣어 판매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한국을 떠나기 전 두부에 관해 좋고, 싫음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해외에 나가보니 난 두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더라. 두부가 없다고 생각해 보면, 된장찌개에 두부 없는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럴 순 없어’라는 마음이 된다. 그러니 난 두부를 좋아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