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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별에도 면역이 있을까?

by 이확위

종종 가슴 아픈 헤어짐을 경험하고 나면, 그 아픔이 두려워 새로운 사랑까지 두려워지곤 한다. 징글징글할 정도로 지저분한 헤어짐이었다면 다른 의미로, 만남 자체도 지긋지긋해져 버리기도 한다. 문득, 사랑의 이별에도 면역이 있을까 싶었다. 많이 만나보고, 많이 헤어진다면- 헤어짐에도 보다 능숙해질까 하고 말이다. 연애와 만남의 과정만큼은 많이 만나보고 많이 싸워보고, 화해해 본 경험이 분명 도움이 되는 듯하다. 이별도 그럴까?


나의 첫 이별은 조금은 이상했다. 가족들은 내가 이성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고, 솔로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나름 비밀 연애 중이었으니까.) 그 당시 남자친구와의 사이가 처음처럼 설레지도, 딱히 함께하는 게 즐겁지도 않지만 다른 큰 문제라 할 건 없어서 그냥 지내고 있었다. 어차피 그는 곧 해외로 떠날 예정이었기에,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아마도 이별할 것 같았다.


그날은 가족 모임이었다. 어째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셨다.

“나는 얘가 남자하나 안 사귀어보고 어느 날 누구 하나 만나서는 헤어지지도 못하고 그냥 바로 결혼한다 할까 무섭다니까.”

내가 무언가를 맘먹으면 혼자 결정을 내려버리고는 밀어붙이곤 해서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어린 (20대 초반) 내 마음속에서 ‘나도 헤어질 줄 아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우리가 장거리 연애를 한다거나 하면서 서로를 애틋해할 마음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헤어지자 말했다. 그는 별다른 말 없이 알았다고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그에게 연락이 왔다.

“어차피 나 이제 곧 떠나는데, 그전까지는 그냥 함께하면 안 될까?”

헤어짐의 경험이 없던 나는 그 자리에서 그러겠다 말하고, 그가 한국을 떠나는 그전 날까지 그와 만났고, 그가 떠나는 날 전화로 인사를 하였다. 이상한 헤어짐이었다. 이상하지만, 그게 바로 나의 첫 이별이었다.


이 때는 딱히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그저 함께하던 이가 사라지니 허전함이 낯설었을 뿐이다. 그러다 다음 연애에서 차이고는 마음의 정리를 못해 지저분한 관계가 되어버렸다. 그런 후 또 다른 연애에서는 식어버린 마음으로 서서히 정리했을 뿐이다.


사랑의 이별에 면역이 된다면, 가슴 아픈 이별이 왔을 때- 그 아픔을 전보다 빨리 잊어나갈 수 있을 거란 말인데, 나는 똑같은 크기의 이별들을 해보지 못해 나의 경험은 답을 하지 못 한다. 하지만, 나의 경험으로 생각하 건데, 이별을 경험하고 또 다른 사랑을 만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또 다른 이별이 닥쳤어도 우리는 그것이 모든 인연의 끝이 아님을 배우게 된다. 그러니, 아픔의 크기는 언제나 크더라도, 어쩌면 조금은 더 빠르게 그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아마 이별의 아픔에 결코 익숙해지진 못할 거다. 그런 아픔이 있기에, 우리가 지난 사랑의 감정을 크기를 느낄 수 있는 거니까. 아픔이 없는 이별이라는 건, 면역조차 필요 없는 가벼운 감기 같이 스쳐간 가벼운 인연일 뿐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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