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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걸 배울 땐 내가 바보 같지

by someformoflove



예전엔 뭔가를 알아간다는 것 자체가 희열이었다.

새로운 분야, 낯선 단어, 듣도 보도 못한 개념들을 접할 때면, 뇌 안에 미세한 전류가 흘러가는 느낌이 들곤 했다. 마치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처럼 들뜨고, 더 깊이 파고들고 싶었다. 호기심이 나를 이끌었다. ‘이걸 알게 되면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겠지’라는 근거 없는 기대도 그 안엔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많은 걸 알고 난 뒤부터 나는 왜 점점 더 바보 같아지는 걸까.

더 많이 알수록, 더 조심스러워지고, 더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한때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 가족들이 말하는 세상, 뉴스에서 보여주는 정도의 범위가 세상의 전부라 믿었기에, 그 안에서 나는 제법 잘 살아가는 편이었다. 그런데 안다 싶었던 모든 것들이 점차 넓어지기 시작했다. 구리시가 서울이 되고, 서울이 세계가 되더니, 지금은 전혀 모르는 영역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자꾸만 작아진다.


한참을 공부하다 멍하니 창밖을 볼 때가 있다.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누군가는 전화를 하며 길을 걷는다. 그 순간 나는 생각한다. ‘저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만큼만 알고 살 수 있어서 행복할까.’ 나처럼 이렇게 불필요한 정보로 삶을 무겁게 하지 않고, 자기 반경 안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삶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때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넌 꽤 많이 알고 있고, 그만큼 생각도 깊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대답하지 못했다.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실은 아는 게 너무 많아져서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아.’


머리가 커진 만큼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아닌 것들로 인해 고민하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휘둘리며, 계속해서 나의 능력과 가능성을 의심했다. 이제는 무언가를 알게 되는 것이 설레기보단 두렵다. 또 얼마나 모르는 세상이 펼쳐질까. 나는 그 낯선 감각에 익숙해지는 데 얼마나 걸릴까. 그런 생각부터 든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적정 온도와 깊이가 있을 거다.

그 안에서 자신을 다듬고 지켜내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그 경계를 넘나들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였다. 조금 더 알고 싶고, 조금 더 성장하고 싶은 욕심에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점점 더 멀어진다. 나라는 중심으로부터.


하지만, 이상하게도 후회는 없다.

모든 걸 알고 나서 되돌아보면, 그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절대 지금의 생각에 도달하지 못했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혼란과 무력함도 결국은 나의 일부였다.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오히려 나는 조금 자유로워졌다.


더 이상 모든 걸 다 알아야 한다는 강박은 없다.

지금은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를 아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모든 세상을 품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나만의 세계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것을 마주하면 설렌다.

하지만 그 설렘 뒤에 오는 무게감도 함께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게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니까.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하나씩 알아간다.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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