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남기고 간 향기, 말의 끝에 걸려 있던 체온, 자리를 비운 자리에서조차 맴도는 호흡들.
그런 것들이 조금씩 쌓여서, 어느 날 문득 마음을 짓누른다.
그리움은 흘러가질 않는다. 쌓인다. 겹겹이. 조용히. 깊숙이.
만남과 이별이 함께 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때론 너무 빠르게, 때론 너무 조용하게,
사람은 떠나고, 남겨진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문다.
헤어진다는 건 물리적인 일 같지만 실은 아주 오래,
지워지지 않는 감정의 파편을 남기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이별이 같은 모양은 아니다.
시간대가 다르고, 마음의 무게가 다르다.
어떤 이별은 예상할 수 있다.
서로가 조금씩 멀어지는 기미 속에서 준비할 시간이 주어진다.
그러나 어떤 이별은 일방적이다.
경고도 없이 스쳐가고, 뒤돌아보면 사라져 있다.
그럴 때면 말이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그 사람의 자리를 혼자 다시 정리해야 한다.
이별은 떠나는 건데, 왜 이렇게 많은 걸 남겨두고 가는 걸까.
물건도, 말도, 냄새도, 사진 속에 담긴 눈빛도.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너무 많은 것들이 남아 있다.
때로는 웃음이, 때로는 원망이,
그리고 결국에는 그리움만이 오래 살아남는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리움을 하나의 감정이라기보다
시간이 흘러도 낡지 않는 구조물처럼 느끼게 되었다.
무너지지도 않고, 치워지지도 않고,
그저 그 자리에 계속해서 쌓여가는 것.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건
결국 ‘남겨진 나’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더는 이어질 수 없는 관계,
답장이 오지 않는 메시지,
다시는 닿지 않을 곳으로 가버린 사람.
그 앞에서 나는 늘 조용해졌다.
이야기를 해도 돌아오지 않을 사람에게 말을 아끼게 되고,
떠난 사람을 향해 미련을 갖기엔 남아 있는 하루가 너무 조용하다.
그래서 그리움은, 말보다는 숨 같은 형태로 남는다.
가끔 상상한다.
내가 떠난 뒤,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기억될까.
무엇이 남고, 무엇이 잊힐까.
그리움은 시간과 기억 사이 어딘가에 머문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 역시 누군가의 마음속에
쌓여 있는 감정이 될 것이다.
그럴 때 나는 바란다.
내가 남긴 그리움이 너무 무겁지 않기를.
누군가를 눌러 앉히는 돌덩이 같은 것이 아니라,
가볍게 어깨에 내려앉는 바람 같은 것이기를.
지나가는 계절처럼,
슬픔보다는 다정함에 가까운 것으로 남기를.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그리움을 품고 산다.
그 안에는 타인의 그리움이 얽혀 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이 무거운 감정은
아마도 수많은 이별의 잔해들,
그들이 나에게 남기고 간 것들의 총합일 것이다.
손에 닿지 않는 무게.
형체가 없는데 무겁다.
언제부터인지 어깨를 숙이고 걷게 된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다만 하나의 소망이 있다면,
내가 누군가의 마음에 남는다면
그건 아주 가볍고 투명한 것이었으면 한다.
하루의 끝에 무심코 떠오르는 생각,
익숙한 노래의 한 소절처럼 스쳐가는 존재.
그리움이더라도 부드러운 것이기를.
기억해도 아프지 않은 것이기를.
나처럼 무겁지 않기를.
나는 참 많이 무거웠다.
그리움이라는 말보다
침묵이 더 어울리는 시간을 지났다.
남기지 않으려 애썼지만
결국 모든 것은 남게 된다.
살아가는 일은 그렇게
계속해서 쌓아가는 일이다.
마음의 모양으로, 시간의 층위로,
그리고 아주 천천히, 아주 고요히—
그리움을 만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