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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같다는 건,

by someformoflove

예전엔 감정을 아껴 두는 사람이었다.

마음이 일렁여도, 그걸 말로 꺼내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다.

기뻐도 조용히, 슬퍼도 조용히.

마치 모든 감정이 물 아래 잠긴 듯 살았다.


그게 나라고 생각했다.

무던하고, 담담하고, 혼자인 게 익숙한 사람.

어쩌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편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왔는지도 모르겠다.


겨울이 끝나갈 즈음,

계절은 조용히 바뀌고 있었지만

거리엔 아직 겨울의 잔재들이 눌어붙어 있었다.


빛바랜 벽에 들러붙은 햇살,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던 차가움.


하지만 공기엔 분명 봄이 섞여 있었다.

차가운데 이상하게 부드럽고,

덜 춥지만 묘하게 조용한,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계절의 틈.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온종일 사소한 것들에 웃었고,

처음 가는 카페에서 여러 메뉴를 괜히 시켜봤고,

햇살이 따뜻하다는 이유만으로 괜히 오래 걸었다.


하루가 괜찮았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해가 기울 무렵,

이제 곧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길가에 나란히 서 있다가,

어느 순간 동시에 시선을 멈췄다.


정확히 무엇을 본 건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빛이 비스듬히 떨어지는 벽이었는지,

낮은 지붕 위에 잠시 머문 고양이였는지,

바람에 쓰러진 간판이었는지.


그저—

둘 다 멈췄고,

같은 순간에 동시에 말했다.


“여기… 멋있다.”


목소리가 겹쳤다.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고,

그 사람은 어깨를 으쓱했고,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웃었다.


그 웃음이,

그날 하루를 마무리하는 온도였다.


생각이 같다는 건,

같은 정답을 내놓는 게 아니라

멈칫하는 지점이 비슷하다는 뜻 아닐까.


우리는 같은 것에 발을 멈추고,

같은 것에 한 박자 늦게 웃고,

같은 질문을 품은 채 하루를 넘기곤 했다.


그게 꼭 특별하거나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불안하지 않았고,

조금 웃겼으며,

그리고… 자꾸 웃게 되었다.


“웃는 거 왜 그래?”

내가 물으면,

“너랑 있어서 그래.”

그 사람은 그렇게 대답했다.


익숙한 말인데,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 사람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나는 그 말에서 계절을 느꼈다.


다 지나가도 결국 다시 오는 계절,

그런 안심 같은 것.


이제는 안다.


누군가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건,

가장 단단한 사랑의 형태라는 걸.


어설프고 서툴러도

같은 걸 좋아하고,

같은 타이밍에 웃고,

같은 장면에서 오래 머물 수 있다면


그걸로 우리는 충분히 가까워지는 거라고.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점점 나를 많이 보여주게 되었다.


숨기지 않아도 괜찮았고,

기분이 좋으면 웃고,

헤어지기 싫으면 아쉬운 티도 냈다.


그날, 헤어지기 전 우리는 한참을 가만히 서 있다가

각자의 길로 천천히 걸어 나섰다.


그러다 몇 걸음 걷다 말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서로를 본 순간 또 웃음이 났다.


무언가가 겹쳐진 순간,

그 웃음마저 오래 기억할 것 같았다.


이제는 정말 안다.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마음을 가볍게 하는지.


그게 사랑이라면,

나는 지금, 참 좋은 사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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