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MU(악뮤)
가을바람이 차갑게 불어왔다. 나뭇잎들은 힘없이 바닥에 내려앉고, 우리는 그 사이를 나란히 걷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벽은 투명했지만, 견고했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도 서로 외면하는 것처럼.
“우리… 이제 그만하자.”
너의 목소리가 갑작스럽게 침묵을 찢었다. 단 한마디였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주는 무게는 결코 가벼울 수 없었다. 이별이라는 단어가 공기 속에 맴돌며 나를 덮쳐왔다. 차갑고 단단한 그 말이, 내 가슴속에 천천히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차가움이었다.
“뭐라고?”
나는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사실 너의 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이별이 너의 결심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결심을 내 귀로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우린… 더 이상 함께 있을 수 없을 것 같아.”
네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너는 이미 이 결정을 마음속에서 수없이 반복했을 것이다. 그 반복의 끝에서 나온 확고한 목소리.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왜?” 내가 물었다. 아주 짧은 단어로, 그러나 그 속에는 무수히 많은 질문들이 담겨 있었다. 왜? 왜 이렇게까지 된 걸까? 왜 우린 이 길을 선택해야만 하는 걸까?
너는 차갑게 바람을 마주하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우린 너무 많이 다쳤어. 너무 지쳤어. 사랑만으로는 더 이상 우리를 구할 수 없잖아.”
사랑만으로는 안 된다고? 그 말은 마치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것 같았다. 나는 네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생각했다. 우리가 함께 싸워온 시간들, 그 모든 상처와 아픔이 너를 지치게 만든 건 사실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게 이별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난…” 말이 목에 걸렸다. 마음속의 감정들이 한꺼번에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사랑은 분명히 존재했다. 너를 향한 내 마음은 언제나 그랬다. 하지만 그 사랑이 어떻게 이 순간에 다다랐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난 네 모든 걸 사랑해.” 나는 조용히, 하지만 확고하게 말했다. “너의 미소, 네가 힘들 때도, 기쁠 때도. 네가 웃을 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네가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
너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 눈빛에서 무언가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너는 여전히 단단했다. 네가 결심한 이별은, 사랑 속에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는 듯.
“하지만,” 나는 그 결심을 꿰뚫어 보려는 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별만큼은 사랑할 수 없어.”
너는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침묵이 길어졌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나와 너 사이에 있던 그 벽이 점점 더 커져갔다.
“이별도 사랑의 일부가 될 수는 없어.” 내가 말했다. “우리가 겪은 모든 아픔, 그것도 사랑의 일부야. 우리는 그것을 견딜 수 있었잖아. 그런데… 이별이라는 건 달라. 그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만이 우리 사이를 지나갔다. 나는 네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손을 잡았던 그 손이 이제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미안해.” 너는 마침내 작게 속삭였다.
“나도 미안해,”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 미안함은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았다. 서로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미안함이 전부가 되어버린 우리 사이, 그곳에 더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나는 뒤돌아보지 못한 채, 너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네가 내게 준 모든 사랑을 나는 여전히 소중히 간직할 수 있을지라도, 너의 이별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네가 내게 말한 그 이별은, 결국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