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 아름다운재단 커뮤니케이션팀 듀이 인터뷰 (2024년 1월)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건 나의 발이 바늘이 되어 보이지 않는 실을 달고 쉼없이 걷는 것과 같다. 한 줌의 희망이 수백의 절망보다 낫다는 믿음 아래 멈추지 않는 마음으로 다시
-드라마 <비밀의 숲 시즌2> 도입부
비영리단체에서 뉴스레터를 기획하던 당시 듀이의 마음에 꽂힌 말이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한탄을 하는 새에도 누군가는 질퍽한 세상을 조금이나마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상이 한 발짝, 아니 실 달린 바늘처럼 한 땀씩이라도 나아가고 있다는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면, 절망보다는 희망이, 비관보다는 낙관이 더 퍼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변화의 소식을 담은 뉴스레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창간 이후 매월 기획과 취재, 제작과 발행까지 도맡아 해야 하다 보니 쉽지 않았다. 당시 팀장은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면서도, 되려 ‘너무 길게,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릴 정도였다. 열정 넘치게 시작한 뉴스레터 작업은 올해로 4년차에 접어들었다.
듀이는 비영리단체에서 온라인 콘텐츠를 기획하고 관리하고 있다. 정부 지원 없이 100% 기부로 운영되는 단체이며, 공익 캠페인과 사업을 진행해 사회변화를 만들어간다. 사회의 주요한 의제들을 다루다보니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듀이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온라인 콘텐츠를 직접 검수하고, 기획하고 제작하고 있다. 외부로 나가는 콘텐츠도 관리한다.
변화를 더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대중이 참여하는 홍보 프로모션을 기획하여 실행하기도 하며, 재단과 협업하는 작가들과 컨택하고 결과물을 터치하는 작업을 한다. 필요에 따라 조직 구성원에게 필요한 강의를 기획하여 외부 강사를 섭외하는 등 진행 업무까지도 맡아서 하고 있다. 올해는 2023년 한 해 동안 단체가 만든 변화를 종합해서 펴내는 연차 보고서도 담당하게 되었다… (이하 생략)
고구마 뿌리처럼 줄줄이 이어지는 업무 소개를 듣고 있자니, (아마도 작가 관리 업무쯤부터) 내 눈에 초점이 흐려졌다. 눈치 빠른 듀이가 곧 말을 잇는다.
“모든 비영리단체 얘기긴 한데 숙명적으로 1인 1업무를 합니다. 아니 사실 1이면 다행이에요.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해야 돼요. 미디어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확확 바뀌니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입사했을 때까지만 해도 숏폼이 이렇게 대세가 될 줄 몰랐거든요? 근데 작년부터 제가 기획을 하고 있더라고요?” 일당백으로 일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같은 일을 두 명 이상이 함께하지 않고, 담당자마다 업무 스콥이 넓다는 거다.
▲사진은 듀이가 뉴스레터를 위해 만든 캐릭터 '후후'가 홍보를 위해 열일하는 모습들.
(에어수트도 직접 제작한 건 안비밀)
나 홀로 하는 업무가 많다 보면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부담이 커서 잠이 안 와요. 팀장과도 얘기했지만 아무도 압박하지 않는데 혼자 완벽하게 하고 싶은 거예요. 일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엄두가 안 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인정하기로 했어요(웃음). 무엇보다 노잼인 건 하기 싫어요. 누가 봐도 재밌고, 잘했다고 할 만한 걸 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사회의제라는게 드라마나 예능처럼 마냥 몰입해서 보거나 친숙하게 느껴지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든 재미와 의미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듀이의 ‘완벽주의’ 기준에는 ‘재미’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내가 만든 결과물이 재미없으면 안 된다” 라며 이 재미란 것이 단순히 ‘funny’함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꼭 웃기지 않더라도, 새롭거나 흥미를 끄는 것, 의미가 있는 것들이 주는 재미도 있으니까. 어쩌면 듀이에게 ‘재미’란 사람의 마음을 ‘선한 방향으로’ 움직일 만한 모든 것들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앞서 ‘노잼인 건 하기 싫다‘는 표현이 과격하게 들릴 수 있으나, “의미없고 지루하면 끝이다”라는 강력한 의지가 담긴 워딩이 아닐까.
그래서 듀이는 평소에도 ‘재미’를 탐닉한다. 일과 일 사이를 ‘재미’있는 콘텐츠로 채워나간다. SNS 담당자로서 인스타그램, 유튜브, X(옛 트위터) 등에서 쏟아지는 트렌디한 콘텐츠를 섭렵하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인기 드라마는 과연 안 본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애청한다. 깊이를 더하는 독서도 놓치지 않는다(수년 동안 사회인 북클럽을 직접 운영할 정도로 애독가이다). 물론 뉴스, 특히 사회면에 실리는 이슈에 관해서는 늘 관심있게 찾아본다.
이렇게 그러모은 ‘재미’를 흡수하여 주변에 퍼뜨린다. 일하며 만드는 콘텐츠에도 묻어날 수밖에 없다. (인터뷰 도중에도 몇 번이나 웃음이 터져 흐름이 끊기곤 했다.)
완벽주의 성향을 강화하는 데에 나이도 한몫했다. 스스로 이것이 ‘30대 여자의 고충’이라며, “30대 여자라면 잘해야 되잖아요. 20대면 조금 못해도 되죠. 배우고 성장하는 시기인데 누가 뭐라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나이도 있고 연차도 찼는데 ‘이 정도는 돼야지’하는 저의 기대가 있고”라고 했다. ‘연차 좀 쌓인 30대’들의 공통적인 고민 지점이기도 하여, 20대에는 부담이 덜 했냐고 묻자 이어지는 대답.
“20대엔 일을 안 했어요(웃음).”
20대의 듀이는 언론사 입사를 꿈꾸는 기자 지망생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몇 년간 언론고시라 불리는 악명높은 시험에 도전했다. 내로라하는 방송국의 최종 관문에서 고배를 마시며, 서른이 되던 해. 기자라는 꿈과 이별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무엇’이 되기를 바란다. 어떤 사람들은 덜컥 ‘무엇’이 된 후에야 그 ‘무엇’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깨닫기도 한다. 듀이는 후자였다. 기자가 되고 싶어 시험을 봤건만, 면접관들은 번번이 “(비영리)단체에서 일해야 할 것 같은데 왜 기자가 되려 하냐”고 물었다.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세월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찾았다.
“고등학교때 <아시아! 아시아! (MBC 프로그램 <!느낌표> 中)>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양심냉장고도 그렇고 공익적인 프로그램을 되게 좋아했어요. 대학교 들어갈 때 자소서에도 합격하게 되면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 얘기를 꼭 써보고 싶다고 썼거든요(듀이는 언론 전공자다).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그거를 말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다. 그건 내가 하면 좋겠다.”
누군가 해야 하는데,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는 일들을 하겠다는 사명감. 그 어려운 것을 고등학생 때 덜컥 갖게 되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떠올렸다.
“저는 이야기하기를 좋아했어요. 저는 남들이 다 재미없다는 영화도 보게 할 수 있었어요. 진짜로 강력하죠? (웃음)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이 있었어요. 근데 그걸 이상한 데다 쓰면 안 되잖아요. 저는 나쁜 데는 쓸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건 재미없잖아요!”
듀이는 눈을 동그랗게 떠보이며 믿어달라는 듯이, 동시에 자신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평범한 사람들의 힘이 좋아요. 대단한 사람 그런 거 말고, 평범한 사람들이 뭔가 힘을 발휘했을 때 너무 짜릿해요. 사람들의 선의를 모아서 세상을 바꾸고 싶었어요. 근데 그게 콘텐츠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기자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기사를 써서 내가 뭘 대단한 걸 하는 게 아니고 이걸 본 사람들이 움직일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콘텐츠는 결국 이야기잖아요.(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이 아니냐며 우리는 입을 모았다. 그래서일까. 처음 비영리단체에서 발을 들였을 때,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결국 하는구나!” 였다고 한다. 듀이는 사회생활을 소셜섹터에서 시작했고 여전히 그 안에 있다.
자신의 장기를 통해 선의를 발휘하는 일을 하다니, 그 자체로도 좋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었다.
“(제 일은) 인간의 선의를 볼 수 있어요. 항상 (선의에) 가까이 있어요. 그게 되게 좋아요. 코로나19가 퍼졌을 때 장애인들은 마스크를 사러 약국에도 갈 수 없었어요. 당장 낄 마스크가 없으니까요. 그때 기부자가 먼저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전화를 주셨어요. 다들 의기투합해서 모금함을 열고 사업을 했죠. 저를 포함한 누군가의 인생이 바뀌는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는 거죠. 뭔가를 해보려는, 선의로 뭉친 사람들과 가까이에서 일하며 변화하는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 손이 닿았던 일이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속사포처럼 늘어놓는 듀이의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구독자들의 반응, 기부자의 한마디에도 업에 대한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레터 구독자인 나는 괜스레 뜨끔했다. 앞으로는 피드백을 정성껏 써보겠노라 다짐했다.)
30대 근로자로서 느끼는 노동의 무게는 대다수의 직장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업무의 완결성’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욕심있는 일꾼이라면 일이 더욱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까.
“매번 그건 성공하지 않아요. 저도 실패할 때가 너무 많고, 사실 대부분 실패합니다(웃음).”
자신을 지키기 위해 드라마 덕질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정 안되면 일을 쉬기도 한다. “휴가를 절대 남기지 않아요. … 중요한 건 꺾여도 하는 마음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꺾인 마음이 잘 일어나지 않아요. 노력이 필요해요. 위로가 필요해요. 자연의 품 안에서 위로를 받아야 해요.” 라며 느닷없이 고백을 했다.
“제주를 사랑합니다.”
3년 근속으로 주어진 안식월에 ‘제주도 한달 살기’를 했을 정도로 제주에 대한 애정이 깊다. 2월에는 한라산 설경을 보러 겨울 제주를 방문할 계획이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객관성을 지키기 위해 듀이가 변함없이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
“'물속에 들어가 있는 상태로 여기가 깊다고 말하는 것’과 ‘물 밖에서 안 보인다는 것을 인지하고 여기가 얼마나 깊은지 얘기해 주는 것’은 다르대요. 어떤 상황이나 감정에 깊이 몸 담고 있으면 너무 당연하게 느껴져서 오히려 설명하기가 어렵거든요. 밖으로 나와서 제가 느낀 깊이를 객관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게 좋죠. 그게 저의 노력이에요. 우리 일이라고 해서 둥가둥가하지 않는 거죠. 웹페이지나 보고서 내용을 검수할 때도 내부에 내용이 너무 길다, 어렵다고 어떻게든 말하려 노력해요. 그래야 성공하니까요. 제가 기획하고 만든 프로모션도 애정을 싹 빼려고 노력해요.”
5년 정도 일하다 보면 ‘적당히’에 안주하거나, ‘좋게 좋게’에 갇힐 법도 했다.
“좋게 좋게 넘어가면 좋겠지만 결국 어떤 지점에서 목이 턱 막히고 한마디 얹게 돼요. 제 전매특허 ‘하아암-0-(듀이가 하품하는 시늉을 하며 손을 입에 갖다 댄다)’이 있어요. 저는 하아암 전문가예요.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지루하면 지루하다고 해요. 대신 제 글을 그렇게 봐도 뭐라고 안 해요. (솔직하게 말해주면) 저는 고마워요. (다른 분들께도) ‘지루한가요?’하고 자꾸 물어봐요.”
‘하아암 전문가’라는 재치있는 워딩에 순간적으로 빵 터져 웃어버렸으나, 내심 부담감이 몰려왔다. ‘겁도 없이 내가 ‘하아암 전문가’ 인터뷰 글을 쓰겠다고 나서다니’. 벌써부터 ‘하아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비영리’단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영리단체와는 보상체계나 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을 텐데. 듀이의 돈에 대한 가치관은 어떨지도 궁금해졌다.
“좋아요. 돈 좋아요. 빨리 로또 됐으면 좋겠어요. 너무 간절하고.” 듀이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단서가 붙었다.
“근데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쌓는 것에 굉장한 문제의식을 느끼죠. 예를 들어 제가 소비하거나 투자한 회사가 산재를 내고도 반성이 없는 곳이면 안 되겠죠. 돈은 제가 먹고 살 만큼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자기 안에 세속적 욕망이 많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영리로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단다.
“제가 여기 다니는 이유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해줘요. (뭔가 하겠다고 하면 내부에서) ‘그냥 해’ 이래요.” 라면서도 여전히 일이 많아 힘들다고 토로했다. 듣고 있자니 ‘하고 싶은 걸 하게 둔 덕분에’ 듀이가 이렇게 열심히, 많이 하는 것 같았다.
“그렇네요. 하고 싶은 걸 하니까 열심히 하나 봐요. 판을 깔아줬으니 열심히 안 할 수가 없네. (둘 다 웃음)”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던 고등학생은 어른이 되어 이주여성 인권을 위한 모금을 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고, 선의의 곁에 머물러 있는 듀이. ‘보이지 않는 실’을 발에 메고 한 줌의 희망을 향해 다시, 또 다시 아주 멀리 걸어나가는 듀이를 마음에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