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날개 / 이상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 날개 中 / 이상 -
나는 나. 너는 너.
아주 간단하고 당연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나 그 자체로 사는 건 정말 어렵다. 인간이란 게 사회적 동물인 관계로, 수많은 타인과 부딪히고 어울리며 살아야 하고, 그 관계 속에서 자의든 타의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 방식대로, 내 기분대로 살고자 하며 무리에서 스스로 나오거나 또는 버려져야 한다. 따라서 오직 100% 나로 살아가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타인의 관심과 오지랖이 일상인 우리나라에서 타인과 구별되는 나, 오직 나를 지키며 살기란 정말 어렵다. 깜빡이도 켜지 않고 내 차선으로 달려드는 성난 차량들 마냥 가족, 친지, 친구, 동료 등 다양한 이름의 주변 사람들이 내 삶을 규정하고 인도하려 든다. 저마다의 방식을 내세워 나를 변화시키려 한다. 이런 환경에서 나를 지켜내려면 실로 큰 용기와 담력이 필요하다.
사실, 어떤 것에도 정답은 없다. 타인의 지도가 긍정적인 삶의 지표가 될 수도 있고, 내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내 삶을 윤택하게 할 수도 있다. 타인을 배제하거나 타인에 내가 맞춰야 하는 그런 이분법적 논리는 올바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의 방식을 타인에게서 찾지 않는 것, 나를 둘러싼 환경 속에서 나의 철학과 소신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맞서기도 혹은 함께 나아가기도 하는 것, 그것이다.
틀에 맞춰 진 듯 프랑스 미술을 규격화시킨 아카데미 미술이 유효했던 19세기 초, 에두아르 마네는 환경에 맞서기도 하고 함께 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지켜냈는데, 그 대표작이 <풀밭 위의 식사>다.
이 작품은 본래 이름이 <목욕>이었다. 아르장퇴유의 센 강에서 목욕하는 여인들을 본 후, 르네상스 미술가 티치아노의 <전원음악회>에서 기본 개념을 떠올려 탄생한 작품이다. 인물의 구도나 구성은 티치아노의 것과 유사하지만, 마네의 작품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림의 주요 인물로 나체의 여성이 등장하는 것은 같지만, 티치아노의 여성이 신화 속 뮤즈나 요정처럼 목가적이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반면, 마네의 여성은 부도덕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처럼 선정적이다. 바로 이것이 마네가 당대 미술 관습에 맞선 중요한 지점이다.
마네가 활동하던 당시, 프랑스 미술은 엄격한 규정을 자랑하는 아카데미 미술의 시대였다. 고상하고 우아한 고전 미술을 지향하는 아카데미 미술 관습상 선정적인 <풀밭 위의 식사> 옳지 않은 것이었다. 때문에 1863년 마네가 이 작품을 살롱에 출품했을 당시 낙선은 예상된 결과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작품은 <목욕> 이라는 원제로 같은 해 <낙선전>에 뽑혀 발표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폭풍은 강렬했다. 비례, 조화, 구도 등 모든 것이 안정적이고 이상적이어야 했던 아카데미 미술 방식과 달리 극단적인 명암, 조화롭지 못한 인물간의 구도, 무엇보다 성적으로 자극적인 분위기의 이 작품은 아카데미 미술에 익숙한 평론가는 물론 관람객들에게도 불편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풀밭 위의 식사>는 전통에 맞선 혁명이기도 하다. 마네가 아카데미 미술 방식과 반대되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고수하지 않았다면, 미래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날개를 펼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니, 그 전에 에두아르 마네라는 이름이 미술사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네가 주변 환경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낸 것이 신의 한수다.
그럼에도, 마네는 결코 인상주의자들과 함께 전시를 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마네가 당시 환경에 100% 맞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마네의 정신을 본 받아 클로드 모네, 카미유 피사로 등 명성 있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등장했고, 철옹성같이 높았던 아카데미 미술이 점차 구시대적인 미술로 퇴색되어갔지만, 마네는 꾸준하게도 아카데미 미술의 장이라 할 수 있는 살롱에서 전시하는 것만이 진정한 성공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작품을 비판했던 아카데미 미술에게서 아카데미 미술과 반대되는 작품으로 인정받으려 한 것이다.
모네는 한 방울의 물감이 물의 색을 변화시키듯, 아카데미 미술의 일부가 되어 그 전체를 변화시키려 한 것 같다. 끝까지 전통의 방식에 맞서 모더니티를 추구했음에도 살롱을 통해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던 마네의 고집은 자의든 타의든 근대 미술사에 큰 변화를 이끌어 냈다. 그리고 마네의 작품은 그렇게 '마네 그 자체'를 나타내는 시그니쳐가 되어 독창성과 시장성을 모두 잡은 위대한 근대 화가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구태의연한 과거의 답습을 끊어내고, 나의 소신을 이어가려면 많은 용기와 힘이 필요하다. 때로는 고통도 감수해야 한다. 사회 뿐 아니라 개인도 그러하다. 내가 속한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생각이나 사고방식을 이어가려면 충분한 절체력과 결단력이 필요하다. 없던 날개를 겨드랑이에서 꺼내어 날아오르기 위한 추진력이 절실하다. 주변에 전복되지 않으려면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마네가 자기 그림의 주인이 되었듯이. 천재와 광인 그 사이 어디쯤에서 혁신적이고 전위적인 글쓰기로 우리나라 현대 문학을 개척한 작가 이상처럼 - 아니, 그와 같이 될 수 없더라도 - 결심 없이는 변화도 없다. 추진 없이는 변혁도 없다. 나 자신이 중심이 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자연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화가는 자기그림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 에두아르 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