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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본 Oct 23. 2021

클로드 모네 <에트르타 절벽의 일몰>

with 하루 / 고은

저물어 가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하루가 저물어 

떠나간 사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오 하잘것없는 이별이 구원일 줄이야 


저녁 어둑발 자옥한데 

떠나갔던 사람 

이미 왔고 

이제부터 신이 오리라 

저벅저벅 발소리 없이 


신이란 그 모습도 소리도 없어서 얼마나 다행이냐 


- 하루 / 고은 -





터벅터벅 지칠 하루를 끝내고 뉘엿뉘엿 떨어져가는 붉은 해를 바라본 적이 얼마나 있을까. 해가 뜨고 지는 것도 모른 채 24시간을 쉼 없이 돌고 돌다 보면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어제하던 고민은 해결되지 않은 채 그렇게 내일로 떠밀려 왔고, 또 그렇게 내일로 떠밀려 가겠지. 그러다보면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잊혀지고 만다. 롤러코스터 인생이라지만 어찌나 모래처럼 텁텁하고, 건조한지. 퉤 하고 뱉어버리고 싶은 하루가 있다. 


목적지를 모른채 걸어간다. 왜 걷는지도 모르지만 모두들 걷고 있으니 나도 걷는다. 걷다 보면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자기 위안을 하면서 정처없이 걷다가 지고 있는 붉은 해를 바라보면, 문득 선물같은 24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앞으로도 계속 될 선물같은 하루를 이렇게 흘러보내면 안될것 같다고 자기 반성도 해 본다. 내일은 다르게 살아야지 하고 다짐도 해 본다.

 

클로드 모네 <에트르타 절벽의 일몰> (c1883) 캔버스에 유화, 노스캐롤라이나 미술관


어느 인상파 화가들보다도 클로드 모네의 야외사랑을 각별했다. 모네의 실내 작품이 순간 떠오르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는 빛이 물체에 비치는 순간을 화폭에 담기위해 실내의 인공조명보다 야외의 자연광을 선호했다. 때문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렇게도 밖으로 나가 그림을 그렸나보다. 에트르타 절벽이 있는 노르망디 해변도 모네가 사랑한 곳이다. 본래 휴양지로 각광받는 곳이지만, 모네는 사람들이 붐비는 해변가가 아니라 조용하고 한적한 에트르타를 선호했다. 아무래도 빛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자연이기에 인물보다 자연의 물체나 풍경에 집중할 수 있는 에트르타가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모네는 1883년 2월 중 3주간 이곳에 머물며 작업을 했지만, 기록을 남기지 않아 구체적인 시점이나 날짜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2014년 미 텍사스 천문학 연구팀이 매우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림 속 태양의 고도와 바닷물의 높이, 그림을 그린 지점 등을 분석해 그림의 배경이 되는 날짜와 시간을 역산한 것이다. 19세기 태양의 경로와 당시 달의 움직임까지 연구한 끝에 밝혀낸 검증 결과 작품이 제작된 혹 작품이 배경이 되는 추정시간은 1883년 2월 5일 오후 4시 53분. 이는 모네가 남긴 편지 등의 기록과도 거의 일치한다. 기록에 따르면 모네는 2월 3일에 다른 해변에서 그림을 그렸고, 4일에는 동생과 함께 휴가를 보냈다. 또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6일의 일몰 시점과 조수가 작품과 다르고, 7일에는 폭우가 내렸다고 한다. 그러니 에트르타 절벽에서 일몰을 감상한 그 시각은 2월 5일이 된다. 


이제, 그 날을 잠시 상상해 보자. 바닷바람이 쌀쌀한 늦 겨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데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잔잔한 바다 물결에 거대한 코끼리 바위만이 말동무가 되어준다. 곧 수평선 넘어로 사라질 해 주위로 모든 공기, 바람, 구름이 모여들어 붉은 빛, 보랏빛 색체가 강렬히 타오르고, 일몰의 빛이 바다를 가득 감싼다. 하루를 마감하며 보람과 아쉬움, 후회와 만족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을 모네도 겪었을까? 아스라이 잠기는 하루의 기억을 간신히 붙잡는 일몰의 황홀에 모네도 흠뻑 취했을까? 1833년 2월 5일, 에트르타 절벽의 일몰을 감상하던 모네의 바로 옆에 서 있는 상상을 해 보았다. 의미없이 지나가는 하루가 의미있는 결과물로 재탄생한 그 날, 그 곳의 차가운 바닷 바람이 지금, 내 마음을 녹인다.  




지는 해와 아쉬움으로 작별하기 않도록 하루를 의미없이 흘려보내지 않는 것에는 많은 힘이 필요하다.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 또한 용기가 필요하다. 후회와 아쉬움이 가득할 때는 더욱, 지는 해와 마주하는 것이 고통스럽다. 땅끝에 닿은 지친 어깨, 푹 숙인 고개를 들어올려, 누군가를 떠올리고 일몰을 본다는 것은 어찌간한 힘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누구도 아닌 나만의 '1883년 2월 5일'을 만든 모네처럼, 나만의 시간을 남기려면 추진력이 필요하다. 그 날, 그 곳, 그 시간이 특별해서 특별해지는것이 아니다. 그 날, 그 곳, 그 시간에 '무언가'를 했기에 특별해 지는 것이다. 


수 많은 하루 중 오늘이, 누구도 아닌 나만의 오늘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오직 나의 손에 달려있다.  



나는 평생, 매년 매일 매시간 파리로부터 ... 아르장퇴유와 프와시와, 베테이유, 지베르니, 루앙, 르아브르를 거쳐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센 강을 그렸다.
- 클로드 모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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