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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핵추남 Jun 08. 2024

나는 F형 회사원입니다 (28)

울리지 않는 핸드폰

아무도 날 찾지 않는다는 헛헛함 그리고 불안함


핸드폰이 조용하다.

회사를 가지 않는 지금(곧 소속도 없어진다),

너무나 평화롭지만 너무나 공허하다.

평화로워지고 싶어서 전화번호도 바꿨는데

소통이 그리워 애꿎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린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그런지 어쩌면 혼자 있을 땐

외로운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한다.

멋지고 사려 깊은 남편도 있고,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도 많고,

부모님도 별 탈 없이 계시는데

무엇이 부족해서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외롭고 우울해하냐고.


그렇지만 그 가족들이  항상 옆에서 나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있다.

다 가졌기에, 부족하다고 솔직하게 말하기도 힘들다.

사람들이  보는 나는 많이 가졌다 하니까.


그래서 혼자 외로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독립적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매일 할 일을 고민하고,

그러다 보면 '나중엔 뭘 해야 하지?' 계속 생각하다 보면

다시 마음이 헛헛하고 허전하다.

그러고 나면 다시 우울해진다.


나는 아직 환자다.

혼자서는 생각의 꼬리를 끊기가 힘들다.

감정에 아직 휘둘린다.

평화로움을 즐기기 위에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다잡는다.

끝없이 중심을 찾기 위해 버둥거린다.


나는 아직 관심과 케어가 필요하다.

'잘하고 있다.' '힘들고 외롭겠구나'

다독임과 공감이 필요하다.


나도 내가 답답하다.

나도 빨리 정상인이 되고 싶다.

나도 충만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단지, 아직 내 마음대로 마인드컨트롤이 잘 안 된다.

그래서 아직은 외롭고 불안하다.




오늘은 공휴일, 허양과 그녀의 남편은 별 약속이 없이

비도 오고 하여 집에서 쉬고 있다.

지난 며칠간 환우인 남편의 사촌동생이 머물고 간 직후라서일까? 한 사람이 적어진 것만으로도 더 고요하다.

허양은 일찍 잠에서 깼고 남편은 어제 술자리 때문에 늦잠을 잤다. 별 일이 없는 휴일이기에 같이 점심을 먹고 남편은 잠시 운동을 다녀왔다. 그리고 티비를 보는데 남편은 그다지 재미가 없어서 혼자 헤드폰을 끼고 다른 책을 보았다.

허양이 소파에서 자리를 떠서 다른 방으로 간다.

남편은 그녀가 외로워하는 것 같다 느꼈다.

아마 같은 공간에서 다른 것을 하는 것에 혼자인 것 처럼 느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속이 답답했고 한숨이 나온다. 요새 집에서 한숨이 많아졌다.

제일 힘든 건 허양이란 걸 알고 모든 것을 다해 응원하고 싶지만 속이 계속 답답해지고 불편한 것을 숨기기가 쉽지가 않다.


허양과 남편의 지인들끼리 환우회도 했는데

혹시 환우의 가족들끼리 모임은 없을까?

있다면 그들끼리도 서로 이야기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에 허양의 남편은 인터넷 카페들을 찾아본다.

검색어는 ‘우울, 공황, 환우, 가족’

환우의 가족들끼리의 모임은 보이지 않는다.

하긴 각자가 옆에 사람 챙기느라 정신없겠지.

그런데 환우들끼리의 모임을 위한 카페는 있더라.

가입을 해보고 슬쩍 최신 글들을 본다.

잠이 안 와요, 슬퍼요, 약 먹었어요, 외로워요...

물론 힘나요, 쉬어요 같이 긍정적인 글들도 있다.

혹시 누군가 따로 모임을 제안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에

‘가족’이라고 검색하니 두 가지 종류로 글들이 나뉜다.

가족이 밉다, 아빠가 싫다, 가족들 보기 싫다...

반대로 미안하다, 내가 그들의 가족인 게 미안하다..

더 보기가 힘들어 핸드폰을 닫으니 허양이 부른다.

눈시울이 빨간 것이 울고 있었나 보다.

‘많이 외로워?’

라고 물으니

허양의 눈에서 수도꼭지가 터진 듯 눈물이 흐른다.

‘혼자 두지 마. 나 아직 혼자서 아무것도 못해.’


미안했다. 뻔히 같이 하고 싶어 하는 걸 알면서도 이젠 혼자서도 잘하는 거 아닌가라고 억지로 생각하며 방치한 것 같아서.

허양은 남편이 위성 같다고 했다. 계속 주위에는 있는데 다가오지는 않는다고. 그리고 이런 상황을 자기가 만든 것 같아 미안하고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이 한심스럽다고.  남편이 방금 인터넷 카페에서 본 글 중 후자의 부류다.

허양을 꼭 안아주고 나서 남편은 허양에게 말했다.

미안하다고. 그렇지만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거나 내게 미안해하고 눈치 볼 필요 없다고. 오히려 지금 그렇게 자각하고 고민하는 것조차도 나아가는 과정 같다고.  왜냐면

불과 세 달 전의 허양은 눈치 보고 자책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걸 고민하고 바꾸려 하고 있지 않냐고. 그렇지만 ‘정상인’이 되고 싶단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는 것이, 우리 모두는 정상과 비정상 경계 어딘가에 있는 거라고.

그리고 앞으로는 집에서 헤드폰 끼지 않겠다고.


비가 오는 공휴일인 오늘.

허양과 남편은 서로의 오해를 풀었고

서로가 원하는 바를 이해했고

한 단계 더 성숙하고 밀착된 관계가 되었다.


그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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