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핵추남 Jun 10. 2024

나는 F형 회사원입니다 (29)

사람과의 인연은 소중하다

이번달의 큰 과제 완료.


오늘 나의 퇴사 소식을 알리기 위해 2차 상사를 만났다.

약속 시간 전 백화점에 들러 프랑스 오크통에 숙성된 미국 화이트와인과

한참을 서성거리다 분홍색 파스타 거베라 한 송이를 샀다.

왠지 아름답게 관계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식당에 먼저 도착해 빛 잘 드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퇴사를 얘기하면 무슨 이야길 하실까?

오랜만에 만남이 어색하진 않을까?

뭐라고 하면서 선물을 드려야 할까?

또 상처 주는 말을 하진 않을까?

며칠 전부터 여러 생각에 마음이 심란했었다.


오랜만에 만난 2차 상사님은 생각했던 것 보다 밝게 나를 맞아 주셨다.

둘이 식사는 처음이기에 조금 어색했지만, 쉬기 시작할 무렵과 많이 나아진 지금 나의 상태 그리고 그의 소소한 근황 토크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고민은 해봤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나온 주제에 조금 당황했지만,

조심스럽게 대답을 이어갔다.


"퇴사한다는 이야길 하려고 했구나"

그녀는 역시 그에게 나의 퇴사 의향을 이야기하지 않았나 보다.


식사가 나오고 조금씩 어색했던 분위기가 풀리고, 점심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다.

팀이 옮겨지고 여유가 없었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마치 추억처럼 머릿 속에 지나갔다.   

'이렇게 내 얘길 경청해 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는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덕분에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진작에.. 지금처럼 편하게 이야기 나눌 시간이 있었다면 지금과 조금 달랐을까?


후식이나오고, 자연스럽게 준비한 선물을 꺼내 올려놓았다.

와인 정보, 한 송이 꽃과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힘들긴 했지만 '일하는 법'에 대해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니까.


"오늘 저녁자리에 가져가서 아끼는 후배가 선물해 줬다고 얘기할께요"

그 말 한마디에 울컥 눈물이 나올 뻔 한 것을 양손을 꽉 맞잡으며 참아냈다.

그 말 한마디에 그동안에 미웠던 마음이 눈녹 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혹자는 그렇게 이야기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말 한마디에 의미를 부여하고 부정적 감정이 쉽게 사라질 수 있냐고.


그럼 어떤가.

결국 진심이든 아니든 입에 발린 소리든 아니든 간에 사소한 말한마디에 분노하고, 감사하고, 보람을 느끼는 것이 '나' 인것을.

오히려 소소한 말 한마디에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더 불행한 사람이 아닐까?


며칠간 머릿 속에서 수없이 시뮬레션했던 상황보다. 너무 편하게,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용기 내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어 고맙다'는 그의 카톡에 왠지 마음이 뭉클해졌다.  


사람과의 인연은 소중하다.

비록 힘들어서 퇴사를 결심했고 그는 나를 힘들게 했던 조직의 상사였지만, 무슨 상관인가.


앞으로 간간히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인생 선배가 또 한명 생겼다.

오늘 나, 또 멋있게 해냈다.


처음 가지는 나의 공백기,

이렇게 차근차근 나를 찾아가야겠다.




오늘 허양을 바라본 남편의 느낌 : Two Thumbs Up!!

잘했고 멋져요.


이전 29화 나는 F형 회사원입니다 (28)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