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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핵추남 Oct 25. 2024

뚱뚱이 못난이 어린 시절

어린 시절 나는 뚱뚱했다. 

부모님은 통통한 거라며 귀엽다고 했지만 아이라고 자신을 모를까?

학교에 가면 자신이 얼마나 인기가 없고 못 생겼다고 취급 받는지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는 걸.  내 마이너 감성은 어린시절의 경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 초등학교가 아직 국민학교 였던 시절, 앙케이트장이 유행한 시절이 있다. 일종의 롤링페이퍼 같은 건데, 노트에 질문을 여럿 적고 친구들에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받아 모으는 것이다. 인기가 많은 친구일수록 앙케이트장에 답변을 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는다. 인기의 척도이고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유행이었다. 앙케이트장을 만드는 친구들도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답을 받아야 노트가 차기 때문에 같은 학교에서 모자라면 학원에 가서 다른 학교 친구들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이런 부탁이 내게도 왔겠는 가 안 왔겠는 가?

뚱뚱하고 못생긴 인기 없는 아이에게 앙케이트장 작성을 부탁 받는 일은 매우 드물어서 다른 친구들이 서로 주고 받으며 자신의 답을 적어 내려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내게도 어느 날 기적 같은 일이 찾아왔다.

노트가 남아서 였을까? 앞에 앉아 있던 여자아이가 내게

‘너도 내 앙케이트장에 답 써줄래?’

라고 물었고, 내 가슴은 쿵쿵 뛰기 시작했다. 볼이 빨개지고 수줍어하며 펜을 꺼내고 있는 순간, 그 옆에 다른 여자아이가 말했다.


‘ 야! 너 얘한테도 받으려고? ‘


그러자 부탁했던 여자아이는 창피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건네어주던 앙케이트장을 거둬갔다. 12살 어린아이가 느꼈을 수치심이란 어땠을까?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먼저 쓰겠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줬다가 뺏다니.

왜? 내가 뚱뚱해서? 인기가 없는 사람이라? 이런 사람의 답변이 노트에 들어가는 게 부끄러워서?

주류가 되지 못하고 변방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

나도 가운데로, 이너서클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은 가득한데 그런 나를 바라보는 무시하는 듯한 눈빛들. 그 눈빛을 무시하거나 이겨내지 못하고 구석 한 켠에 웅크려 있을 수 밖에 없는 약자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랬던 어린아이는 나이가 들면서 살을 뺐고, 그 살 속에 숨겨져 있던 미모를 드러내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초등학교 친구들은 처음에는 누구인지 알아보지도 못 했고 서로 연락처를 달라고 부탁한다. 

나란 사람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 

그 시선이 싫지만은 않다. 하지만 언제라도 내가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면 사라질 시선이란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나의 감성은 마이너라고 생각한다. 

강자보다는 약자에 마음이 쓰이고, 다수보다는 소수의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서른 살 즈음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는 우리 아빠가 내게 바란 모습대로 살고 있어. 너무 부럽다 너가.’


대기업 임원출신의 친구의 아버지는 친구가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나와 본인과 같은 유명한 기업에서 일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바란다고 모두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보다 공부를 잘 했던 친구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뒤쳐졌다. 재수를 했지만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성적이 올랐고 전교1등도 해보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와 다른 대우를 온 몸으로 느꼈다. 신수가 훤칠하고 공부를 잘 하면 이런 대우를 받는구나. 숙제를 해오지 않아도 옆에 친구는 혼나는데 나는 혼나지 않는구나. 

그런 특혜가 싫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옆에 혼났던 친구에게 미안함이 생겼던 거 같다.

남들이 바라던 대학에 가게 되었고 졸업을 한 후에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이 바라는 모습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린시절 비주류에 속했었던 경험은 내게 마이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한다. 지금 설사 주류에 속해 있더라도 평범하지 않았던 기억을 잃지 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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