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 Nov 28. 2023

나의 공간에서 쓴 오늘.

의문과 허점 투성이, 꿈쟁이인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있을까?

퇴근 후 집에 와서 씻고 책상에 앉으면 그 고요한 정적이 나만의 공간임을 알려주듯,

나의 방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나의 방이 확장되어 나의 집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이 글도 그 바램으로 시작되었다.


오늘 퇴근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잘하고 있는 것이 맞나?' '지금, 여기, 나 갈 곳을 잃은 이 느낌은 무엇일까.'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 일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내가 이러려고 이렇게 살려고 내 꿈을 품어온 것이 아닌데. 내 꿈은 이게 아닌데. 난 왜 이러고 살고 있지.'


병때문에 한꺼번에 살이 찐것을 8년간 못빼고 굽은 어깨에 자신감마저 상실해버린 내가 너무나 한심스러워 보였다.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니었는데. 나도 내 꿈을 마음껏 펼치고 싶다.'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 것은 다름아닌 세바시 강연에 EXID의 하니가 나와서 강연을 한다는 인스타그램의 피드를 보고 난 후였다. 남들이 인기의 절정이라고 했을 때 하니는 불행을 느꼈고 행복을 찾기 위해 배낭을 메고 무작정 떠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곤 위의 감정들이 하나 둘 북받쳐 올라왔다.  


'여기서 버텨보자~ 나이도 30줄에 들었는데 하던거 해야지~ 어떻게 얻은 직장인데 ~ 사장님도 좋고 같이 일하는 분들도 좋은데~ 이만한 곳이 어디있다고 어딜 나가려고해~?' 반대로 나를 닥달하기도 했다.

'만약 좋은 사람 만나면 결혼도 해야지~ 명목도 있어야 하잖아 ~ 경제적으로 독립도 해야하지 않겠어~? 지금도 여기서 일하면서 글도 쓰고 노래도 배우고 있잖아~ 꿈을 저버리진 않았잖아' 라며 자위하기도 했다.


다 틀린말은 아니다. 다 맞는 말이고 나를 위하는 위로의 말이지만 절대 위로가 되지 않는 현실과 타협하는 생각들이었다. '그래 1년째라서 그럴거야. 1년 즈음의 이 고비만 넘기면 되. 월급도 올랐잖아.'


다 쓰잘데기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당장 올인하고 싶지도 올인하고 싶기도 했다. 이럴 땐 정말 그 어중간한 그 중간에서 다리를 걸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일을 때려치우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자니 돈을 벌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아슬아슬 외줄타기였다. '그래, 자신이 없는거야. 체력이 약해서 그런 걸까?'


나를 바꾸기 위해선 계획부터 짜야 겠다. 그런 습관을 들여야 겠다.


'네 일은 아무에게도 물어보지 말아라. 그냥 아주 네 멋대로 살아라' 라는 드라마의 대사처럼 나도 그러길 원한다.


찬란하게 살라는 말, 눈부시게 살라는 말. '그래, 다 드라마 대사일 뿐이야.' '그래도 , 내 한번뿐인 인생이잖아. 원하는 맘껏 살아.'


항상 꿈이 문제다. 전공관련 일도 다시 해보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도 정말 잘 해내고 싶다. 하나에만 집중이 안된다. 꿈이 너무 많다. 하나만 고르라면 글을 선택할 것이다.


나만의 고요한 공간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말로 글을 시작했고, 나의 방에서 혼자 글을 씀으로 해서 필을 받아 좋은 글을 써보려고 했으나, 오늘의 스트레스와 내 안의 소리를 정리해 보는 나의 하루를 적는 일기장이 되어버린 글이다.


내 못 펼친 꿈과 내가 하는 일이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을 때, 같은 방향을 보게 할 순 없을까?

없네, 심히 없네. 하지만 내 꿈에는 로또 성이 짙은 점이 있어 경각할만 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도 꿈이다. 좋은 글을 쓰건 나쁜 글을 쓰건 그것은 나만의 창작이다.


나도 모르게 손이 가는 것들. 나도 모르게 하고  있는 것들을 잘 살펴보자.


잘 하고 있어. 잘 할 거야. 지금껏 살아온 것만으로도 장해.


매거진의 이전글 잘 살고 있습니다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