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는 아이스크림에 마음 두지 않기

Item 09.

by 이루나

놓아주어라!

지금 느껴지는 감각은 신체적인 반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냥 지나가게 놔두자.

이런 감각들은 곧 사라질 거야.

이 순간적인 감각이 곧 내 자신인 건 아니야.

기분은 일시적일 뿐이야.


<바나나 산책시키기> 벤 알드리지




녹아 없어질 순간 감정


솜사탕처럼 순식간에 녹아 없어질 순간의 기분 따위에 나를 맡기지 말자.


우리는 일상에서의 대수롭지 않은 작은 말 하나에도 마음이 요동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나도 그냥 흘려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몸은 늘 먼저 반응했다.


벼르고 별러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사러 갔다가 퉁명스러운 매장 점원 한 마디에 돌아 나오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화한 동료의 말에 상심하여 남은 일과가 손에 잡히지 않기도 한다. 또 어쩔 땐, 친구의 위로가 오히려 독이 될 때가 있기도 한다. 일면식도 없는 지나가는 사람이 무심코 내뱉은 욕설에, 내 마음이 피로한 적도 많다.


아기를 대할 때,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알고 보면 개개인의 마음속에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노력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창문 앞을 가리는 현수막을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고 관리실에 말한 적이 있었다. 몇 해 동안이나, 우리 집 앞에 걸리던 현수막이 이제야 신경 쓰였다. 회사 다닐 땐, 그저 언젠간 안 달겠지, 그냥 그러려니 하던 것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거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햇빛도 가리는 것 같아 안 되겠다 생각해 요청한 것이었다. 조심스럽게 건넨 말에 돌아온 직원의 대답은 "보고하겠지만, 확신할 순 없어요."였다.


근데, 그 말 한마디에, 그게 뭐라고.

집에 돌아오면서 마음이 요동쳤다.

당연하게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이 이마저도 권리를 누릴 수 없다는 것처럼 들렸다.

다시 따져 물어야 하나 고민했다. 집 없는 서러움과 퇴사 이후 부쩍 예민해진 자존감까지 뒤엉켰다.

무엇보다, 이런 말 한마디에도 흔들리는 내 마음이 싫었다.


그냥, 현수막 위치 옮기는 문제였을 뿐인데,

내 안에서는 지나간 온갖 감정들이 가지치기하며 뻗어나갔다. 묵혀두었던 감정들이 스멀스멀 보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순간감정이 요동쳤던 사건이 수없이 많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 그 감정이 어땠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 그 일이 기억으로 남아있긴 해도, 지금의 내 감정을 좌지우지할 만큼 크진 않다. 순간적인 기분은 그만큼 흘러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순간의 기분이란 녹는 아이스크림과 같다.

달콤하기도 하지만, 끈적거림이 거슬리는 기분도 있다.

그러나, 단단하게 얼렸던 얼음도 언젠가는 녹는 것처럼, 기분이란 늘, 아이스크림처럼 녹기 마련이다.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에 미련을 둔다면, 남은 아이스크림을 즐기기도 어렵다.


녹기 전에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것처럼,

순간의 기분도 그 순간으로 끝내야 한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은 더욱 그래야 한다.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감정에 휘둘리듯, 녹는 아이스크림처럼 나도 같이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마음이 다 녹아내리기 전에, 지켜내는 연습을 하자.


녹는 아이스크림 즐기기


그렇다면, 어떻게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잘 즐길 수 있을까?

크게 흔들리지 않고, 순간의 기분을 잘 흘려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마음이 요동칠 때, 다음을 상기시켜 보자.


기분은 일시적인 뇌의 반응이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이 감정이 곧 '나' 자신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회사 토박이이자 대표의 신임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동료가 대표님도 있는 단체 대화방에서 공개적으로 내가 한 업무 진행을 비난한 적이 있다. 몇 발자국만 가면 닿을 서로의 자리가 있음에도 서슴없이, 절제되지 않은 단어와 글자를 남겼다. 말로 해도 될 일을 텍스트로 공개한 것이 텃세 같았고, 나를 깎아내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죽했으면, 그 글을 본 다른 직원들은 나에게 '그 직원은 원래 그러하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다. 그 글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때 나는 기분이 상했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감정들은 이미 희미해졌다. 지금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기억만 남아있다.


그때 나는, 그 동료의 글에 모두가 볼 수 있게 바로 답변을 달았다. 불쾌하게 느낀 점이 있다면 사과드린다는 말과 함께, 상사와의 이해관계와 오해여부에 대해 사실적인 사항을 논리적으로 설명했던 것 같다. 다른 직원들도 예의 있으면서도 단호한 나의 답변에 속 시원하다고 전했었다. 그 이후, 더 이상 그 동료는 나와 대면을 해도 그것과 관련해서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기분은 외부 자극에 의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이다. 분명, 그 당시에는 언짢은 기분을 느꼈어도 '나'의 전부라고 할 수 없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은 잘 닦아 대처하고, 더는 흘러내리지 않게 나의 중심을 잘 잡는 것이 내가 다치지 않는 법이다. 감정이 흘러내리기 전, 기분을 단단하게 붙잡는 것.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식이다.


아이스크림은 결국 녹는다. 그렇기에, 녹고 있는 감정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 녹아내리는 기분을 붙들지 않아야 덜 끈적거리고, 더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녹는 문제가 커다랗게 다가왔지만, 지금은 흐릿하다. 감정은 언제나 그런 식이다.


안 좋았던 순간의 감정은 지나간다.

흔들거리는 내 마음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너무 단단해도 먹기 힘든 아이스크림일 뿐이다.


아이스크림은 적당히 녹아야 더 맛있다.

그러면 나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기분에 마음을 두지 않는 나로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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