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산소같은 여자 탄소같은 여자
때가 때이니만큼 유시민작가님의 책을 올리기가 조심스럽다. 나는 어떤 정당을 특별히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다. 읽으시는 분들께 미리 양해말씀 올린다.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글쓰기와 과학이 서로 연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내 두뇌도 이과형은 아니다. 그러나 인류가 과학이라는 학문에 기대어 살지 않은 시대가 없었으니, 지금이라도 조심스럽게 과학과 친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이유는 지루할 틈 없이 책장이 잘 넘어가기 때문이다. 작가님과 대화를 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문장이 재밌다. 그리고 잘 모르는 과학이야기는 그냥 패~쓰하면 된다.
내가 이 책의 많은 부분에 밑줄을 긋고 사진을 찍었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탄소'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탄소라고 하면 흔히 화학이라는 말과 맞물려 좋지 않은 이야기로 생각되기 쉽다. 여자라면 누구나 한때 "산소 같은 여자"를 꿈꾸었을 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탄소 같은 여자"라는 제목으로 글 한 편 써보고 싶었다.
오늘 이야기는 탄소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188쪽
그렇다면 생물의 몰에는 다 탄소가 있는가? 그렇다. 탄소가 없으면 생물도 없었다. 탄소는 생물의 몸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살아 있는 유기체에서 얻는 화합물에는 탄소가 있다.
탄소는 왜 생명의 중심이 되었을까? 과학자들이 찾은 답을 정치학 언어로 번역하면, 탄소는 '유능한 중도'여서 성공했다. 중도는 좌우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 극단으로 가지 않는다.
열정이 있어도 몰입하지 않으며, 원칙은 지녔지만 독선에 짜지지 않는다.(...) 남이 원하는 것을 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탄소는 원자번호 6번이다.
189쪽
탄소는 전자를 공유할 기회가 오면 거부하지 않지만 남의 전자를 함부로 탐하지 않는다. (...) 모든 면에서 어중간하다. 바로 그런 성격 덕분에 탄소는 생명 탄생의 주역이 되었다.(...) 전자에 대한 탐욕이 아주 강한 수소가 다가오면 너그럽게 안아준다. 그렇게 해서 탄소와 수소 결합이 생명체의 분자를 이루게 되었다.
191쪽
탄소 원자 하나가 다른 탄소 원자 4개와 결합해 3차원 구조를 만들면 다이아몬드가 된다. (...) 시야를 흐리는 불순물이 전혀 없어서 굴절된 빛을 영롱하게 내뿜는다.(...) 똑같은 탄소인데 결혼 예물이 된 다이아몬드가 부여받은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다는 증거는 없다. 남자가 보유한 권력과 재산의 크기를 증명하는 수단으로 훌륭했지만 그 영롱함으로 사랑의 환희를 북돋운 건 짧은 순간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책임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사랑을 빛바래게 만든 시간에게 물어야 한다.
192쪽
내 몸은 탄소가 중용의 도를 지킨 덕분에 존재한다. 탄소를 함유란 물질은 검은색을 띠는 경우가 많다. 탄소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알고 나자 검은색에 대한 느낌이 달라졌다. 탄소 때문에 검은지 다른 이유로 검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숯불에 고기를 굽다가 손과 얼굴에 검댕이가 묻어도 예전처럼 질겁하며 닦아내지 않는다. 어두운 내 피부색에 대한 불만도 줄었다. 조문을 가려고 검정 넥타이를 맬 때 탄소를 생각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나는 과학의 사실에서 별 근거 없는 감상을 함부로 끌어내는 습관이 있다.
과학 공부를 해도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문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