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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중 Apr 23. 2022

세잎 클로버

"야 이거 받아라"

코로나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갑자기 뭔가를 건냈다. 이제 40대 중년 아저씨 둘이 공원벤치에 앉아 늘어나는 흰머리, 자식이야기며, 현실에 허덕이며 사는 씁쓸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4월 늦봄, 짙은 초록으로 변하기 전 여리고 부드러운 새순이 친구의 손에 있다. 

클로버 잎이다. 이제 막 땅을 뚫고 올라온 이 작은 생명은 '행운'이라는 단어와 마음 속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이거 뭐야, 클로버 잎 아니야?"

클로버를 건내 준 낭만적인 친구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잎의 갯수다. 마음 속으로 하나씩 세어본다. 하나, 둘, 셋. 잎이 세 장이다.

순간 헷갈린다. 세 잎 클로버가 좋은 것이었나 아니면 네 잎이었나? 

나를 잘 아는 친구다보니 내 마음의 고민을 읽고 바로 답을 해준다.

"네 잎 클로버가 행운이다."

"뭐야 그럼 이거 왜 준거야?"

순간 평범한 풀이 되어버린 세 잎 클로버를 손으로 비비며 가볍게 웃고 넘기려는 찰나, 친구가 말을 잇는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지만,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이래."

그리고 다음 말이 내 귀에 꽂힌다.

"요새 나는 세 잎 클로버가 좋더라."

딸들이 학교에서 배워와 알게되었다는 세 잎 클로버의 꽃말 '행복'

아마 친구가 말한 행복은 먼 미래의 막연한 상상이 아닌, 지금 내 옆에 있지만 지극히 평범해 우리가 눈길을 주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버릴지 모르는 그런 것들이리라.

친구는 이제 그런 것들을 지긋이 바라볼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었나보다.


네 잎 클로버는 세 잎 클로버의 생장점에 상처가 나면 생기는 돌연변이라 한다. 

상처로 죽지 않고 살아남아 오히려 잎을 하나 더 피운 질긴 생명력에 행운이라는 꽃말이 잘 어울린다. 

그래도 친구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세 잎 클로버가 눈에 더 들어온다. 

나 또한 '뜻밖의 큰 행운'보다 '소소한 행복'이 점점 소중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한편으로는 피식 웃음이 나온다. 다 큰 어른 둘이 클로버 풀이나 찾고 있으니 말이다. 

고개드는 부끄러운 마음은 사람을 홀리는 벗꽃과 가볍게 불어오는 봄바람 탓이라 생각하며 크게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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