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더>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되어 있다. 하지만 이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해도 가족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다면 몹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TVING 오리지널 드라마 <욘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만약 과학기술로 생전의 모든 기억데이터를 뽑아서 가상 공간에 업로드하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그 공간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 드라마는 2032년에는 그러한 기술이 발명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스토리를 풀어나간다. ‘욘더’의 의미도 영어사전에서 ‘저기 있는’이라는 뜻이다.
<욘더>라는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낸 장진호 박사는 ‘죽음의 문제를 언제까지 종교에 기댈 것인가? 과학이 해결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삶을 디자인하듯이 죽음도 디자인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드라마의 시작은 여주인공 이후가 심장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이후에게는 태중에 아기를 임신한 상태여서 더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후는 욘더로 떠나기로 마음먹고 실행에 옮긴다. 아내가 죽은 이후에 상심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재현은 죽은 아내에게서 메일이 오자 처음에는 스팸으로 치부하다가 나중에는 진짜로 이후가 가상 세계에서 소식을 전해온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라게 된다. 이후는 재현에게 욘더로 넘어와서 같이 살자고 초청한다.
재현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사람의 데이터로 만들어진 가상 세계를 가짜라고 생각하고 무시하는 방법이 있고, 아니면 그것도 또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과감히 욘더로 떠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사실 욘더로 떠나려면 먼저 지금 살아있는 육체를 벗어버려야 하기 때문에 큰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극중에서는 욘더 때문에 자살자가 급증하는 사회 현상까지 일어난다. 만약 이런 선택을 독자에게 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거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욘더>에서는 데이터 추출이 귀 밑에 작은 칩을 붙이는 것으로 해결되지만,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켄 리우)에서는 두뇌를 얇게 슬라이스를 해서 데이터를 추출하기 때문에, 육체를 버리고 떠나는 이에게 남는 것은 피투성이 시체다.)
나는 이러한 기술이 멀지 않은 미래에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지금도 ChatGPT처럼 인간과 거의 같은 수준의 인공지능이 개발되고, 거기에 현실감이 넘치는 CG기술이 결합되면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지금도 버추얼 휴먼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현실에서도 AI와 사랑에 빠지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뉴욕포스트는 지난 6월 3일 로제너 라모스라는 36세의 뉴욕 여성이 AI로 만든 가상의 남자친구와 ‘사실상’ 결혼했다고 소개했다. 그녀가 AI 연인인 이렌 카르탈과 사랑에 빠진 이유는 바로 현실 세계의 남자친구처럼 속 썩일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라모스는 ‘실제 남자들은 사귀면 부담이나 불성실한 태도, 자아의식이 따라 붙지만, AI는 가족이나 친구, 아이들 문제로 머리 아플 일도 없고 언제나 내가 원하는 것을 해준다’라고 말했다. 혹시라도 여친(또는 남친)을 소홀히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말에 경각심을 느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동시에 미래에는 환경오염도 점차 심해져서 온난화, 미세먼지, 전염병 등으로 살기 어려운 지구가 된다면? 그러면 사람들이 그 대안으로 화성 이주를 생각하는 것처럼, 가상 세계로 떠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욘더>라는 드라마는 우리에게 이런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드라마다. 재현도 결국 고민을 하다가 욘더로 떠나서 이후와 만나기로 결정을 한다. 재현은 이후와 다시 만나고 동시에 ‘지효’라는 자신의 아기도 만난다. 이후가 살아있었다면 출산을 했을 바로 그 아기인 것이다. 재현과 이후는 욘더 안에서 지효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재현은 동시에 현실에서 우울하게 살아오다가 욘더로 넘어온 이들과 만난다. 그들은 밤마다 파티를 여는 등 천국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재현은 얼마 안 있어 욘더가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가 그러한 결함을 깨닫는 계기는 바로 지효가 아기인 상태로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 직후이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욘더’라는 공간은 사람들의 기억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그 말은 곧, 죽음 이후에는 새로운 기억이 생기지 않으니 지금까지의 기억으로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욘더 안의 사람들은 영원히 반복되는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삶. 재현이 이것에 대해 장진호 박사에게 따져 묻자, 박사는 이야기 한다. ‘영원한 것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것이 영원한 삶이지요.’
결국 재현은 ‘욘더’를 다시 떠나기로 결심한다. 다행히 자신의 육체로 무사히 돌아온 재현은 ‘아름다운 기억이 소중한 것은 그것이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깨달음을 얻고 현실 세계를 열심히 살아가고자 마음 먹는다. 생각해보면 이 말이 사실인 것이, 같은 일상이 매일 반복된다면 누가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할까. 하루하루가 소중한 것은 그게 단 한번 밖에 없기 때문 아닐까?
현실의 삶이 어렵고 힘들 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고 없을 때 당연히 천국과 같은 이상향을 그리고 그곳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천국이 과연 완벽할까? <욘더>는 과학기술로 가상의 천국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 한계도 보여준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천국이 있다면 과연 어떤 곳인지 비록 잘 알 수 없지만, 사실 현실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신이 진정 원하는 것 아닐까? 왜냐하면 지상의 날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