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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를 회복시키는 힘은?

<아몬드>

by mhni

책 표지에 무표정한 소년이 있다. 그런데 책 제목은 ‘아몬드’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꽤 강렬한 인상이었다. 2017년 첫 출간 후 계속 서점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던 이 책은 누적 판매부수 45만부, 미국 아마존 ‘Best Book of May 2020’ 선정, ‘2020 일본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수상 등의 화력한 이력과 함께 전 세계 15개국에 번역됐다. 거기에 세계적인 팝스타인 BTS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들고 나와 더욱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2020년 전국 공공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된 문학책의 자리도 ‘아몬드’가 차지하고 있다. 출간 4년째인데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

책에는 감정이 없는 아이 윤재가 나온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아몬드만한 크기의 편도체가 있는데 이것 때문에 공포, 기분 나쁨, 좋고 싫음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 기관이 고장이 나면 감정을 느낄 수가 없다. 윤재는 이 기관이 고장이 난 친구다.


혼자서 윤재를 키우는 엄마는 윤재가 사회 속에서 배척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윤재를 가르친다. 요즘 세상은 뭔가 이상한 사람은 배척하고 혐오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윤재가 튀지 않고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게끔 하는 게 윤재 엄마의 지상 목표였다.

그러다가 윤재는 불의의 사고로 엄마와 할머니를 동시에 잃는다. 책에 나오는 윤재의 표현을 빌면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아몬드’(손원평/창비) 172페이지)라고 할 정도로 의지했던 두 사람을 잃게 된 것이었다. 그 충격적인 사건에도 윤재는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혼자 엄마가 운영하던 헌책방에서 살아간다.


그 이후 책의 내용은 대부분 일명 ‘곤’이라고 불리는 윤이수라는 친구와의 기이한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곤은 어릴 적 엄마를 잃어버리고 여기저기 입양을 다니며 불행한 삶을 살다가 소년원까지 들어갔던 친구다. 이러한 곤을 학교의 모두가 두려워한다. 단 한 명만 빼고... 윤재는 타고난 강심장이 아니라 아예 감정 자체가 없기 때문에 곤이 어떠한 도발을 해와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런 윤재를 보면서 곤은 험한 말로 그리고 폭력으로 윤재를 괴롭히지만 자신이 기대했던 반응이 없자 도리어 초조해 하고 급기야는 분을 참지 못해 스스로 폭발해 버리고 만다.

아몬드.jpg 이미지 출처 : 창비 홈페이지

그 이후에 곤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대해주는 윤재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윤재와 친구가 된다. 여기에는 윤재의 이런 태도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사람들은 곤이가 대체 어떤 앤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단지 아무도 곤이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171페이지)

만약에 같은 반에 있는 친구의 시선으로 두 친구를 본다면 ‘괴물’과 ‘괴물’의 만남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한 명은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고 또 다른 한 명은 남의 감정은 깡그리 무시하고 짓밟은 인간이니... 그러나 그것은 윤재의 말처럼 그들의 겉만 보았을 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들은 남들 보기에 독특할 수 있으나 그 내면에는 사랑받고 싶어 하는 한 인간이 들어있을 뿐이다. 윤재는 두려움이 없는 독특한 감정구조 때문에 곤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또 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와 같지 않고 다른 생각, 다른 외양을 갖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를 배척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도 하나님이 태초부터 계획하시고 지으신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사회가 만들어낸 기준과 잣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우리들은 배척하고 있다. 나보다 가난하거나, 지력이 낮거나, 신체가 불편하거나, 피부색이 다르거나 등 여러 조건들을 나열하고 이 기준에 벗어나면 싫어한다. 이러한 혐오와 거부가 사회에서 괴물을 만들어내고, 이 괴물은 정상인이라고 치부하는 우리들을 위협한다. 윤재의 엄마와 할머니가 희생당한 것도 이런 괴물 때문이었다.


사람들을 배척하고 혐오하는 시선은 옛날에도 동일했다. 요한복음 9장 2절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맹인 된 사람에 대해서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라고 물어본 것만 봐도 그러하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답하신다. 그는 죄인이 아니다. 그의 부모가 죄인인 것도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드러내기 위해 쓰임을 받는 한 사람일 뿐이다.


곤은 나쁜 의미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친구였다. 그래서 좀 더 심한 타락의 길로 나아간다. 윤재는 두려움을 느낄 수 없다는 장점 아닌 장점을 가지고 곤을 구출해 오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하여 곤을 구해낸다. 윤재가 위험을 무릅쓰고 범죄자들의 소굴로 들어간 이유는 친구인 곤과의 우정 때문이었다. 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린 결단은 곤을 구하는데 성공했을 뿐더러 자신의 감정도 살아나게 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거기에 보너스로 식물인간이었던 엄마도 의식을 회복해 윤재에게 돌아온다.

결국 우리와 우리 사회를 회복시키는 것은 주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그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아닐까? 혹시라도 내가 누군가를 나와 좀 다르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면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자문해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 사람을 바라볼 수 있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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