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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hni Oct 05. 2023

절대자를 이긴 신인류의 힘

<엑스맨 시리즈>

 <엑스맨: 아포칼립스>(2016)는 <엑스맨> 시리즈의 새로운 삼부작이다. <엑스맨> 시리즈는 냉전시대를 다룬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 1970년대를 다룬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관통해 아포칼립스에 이르렀다. 


 <아포칼립스>를 논하기 전에 엑스맨에 대해서 논하자면, 엑스맨의 ‘X’는 돌연변이를 만들어내는 유전자 X(X-gene)을 뜻하기도 하고, ‘보통이 아닌’,‘놀라운’이라는 뜻을 가진 ‘extra-ordinary’를 뜻하기도 한다. 다른 많은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들처럼 엑스맨 캐릭터도 스탠 리라는 작가에 의해 탄생하게 되었는데, 엑스맨이 그 간에 등장한 히어로와 다른 점은 그들의 능력이 ‘선천적’이라는데 있다(토니 스타크가 강철 수트를 입고 변하는 ‘아이언 맨’이나, 방사선에 의해 괴력을 갖게 된 ‘헐크’, 슈퍼 솔저 프로젝트에 의해 근육질의 용사로 변한 ‘캡틴 아메리카’는 모두 능력을 후천적으로 얻었다). 


 엑스맨들의 힘이 선천적이기 때문에, 엑스맨 시리즈는 비범하고도 괴상한 초능력자들과 세상의 다수를 차지하는 보통 인간들의 갈등을 주로 다룬다. 영화에서는 엑스맨들이 인간에서 진화한 새로운 인류로 묘사되는데, 인간들은 이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이들을 괴물 취급한다. 인류 역사에서는 절대다수가 상대적으로 약자인 소수자들을 핍박하고 말살하려는 경우가 많았는데, 영화 <엑스맨>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그래서 영화는 단순한 오락영화를 넘어서, 성적소수자를 비롯해서 유태인, 유색인종, 난민, 불법이민자 등 우리 사회의 소수자를 돌아보는 계기를 만든다.

 

 다시 영화 자체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엑스맨> 시리즈는 <퍼스트 클래스>로 시작하는 새로운 삼부작을 통해서 이전의 실패작 <엑스맨 3: 최후의 전쟁>의 기억을 지우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시도는 가히 성공적이라 할 수 있는데, <퍼스트 클래스>에서는 ‘프로페서 X’라고 불리우는 찰스 자비에 교수와 ‘매그니토’라고 불리우는 에릭 렌셔가 어떻게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어서 대립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후속작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돌연변이와 인류를 동시에 말살하려는 ‘센티넬’이라는 로봇병기를 막기 위해 과거로 돌려보내진 ‘울버린’의 이야기를 다룬다. 울버린 일행은 과거를 바꾸는데 성공하고 이를 통해 엑스맨 시리즈의 역사가 리셋 되면서 죽었던 ‘진 그레이’나 ‘사이클롭스’가 살아 돌아오는 기적이 발생한다. 그리운 이들과 재회하여 어안이 벙벙한 울버린에게 찰스 교수는 그가 떠나있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찰스 교수가 말하는 많은 일 들 중 하나가 바로 아포칼립스와의 대결이다. 마블 영화의 전매특허가 된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쿠키영상에서는 무수한 이들의 숭배를 받으며 피라미드를 쌓아올리는 아포칼립스의 모습과 그를 호위하는 ‘4명의 말탄 기사(four horseman)이 등장한다. 이 쿠키영상은 <아포칼립스>와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된다. 이처럼 <엑스맨> 3부작은 유기적인 관계로 연결된 연대기 구조이다. 몇 년에 걸쳐 거대한 이야기 구조를 만들고, 특정한 세계관을 정교하게 구축하는 헐리우드 영화제작 시스템이 놀라울 따름이다.


 <아포칼립스>는 몇 가지 면에서 기독교적 요소를 가져왔다. 일단 ‘아포칼립스’라는 존재 자체가 인류 최초의 돌연변이인데, 과거에 그를 인간들은 ‘엘로힘’, ‘라’, ‘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두려워했다. 그런 그가 오랜 세월을 이집트의 깊은 땅 속에서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다. 그리고 세상을 정화(淨化)한다는 명목으로 세상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이는 세상에 다시 나타나 새 시대를 도래하게 한다는 점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이 ‘아포칼립스’는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절대자와는 거리가 멀다. 원작 코믹스에서도 무한한 능력을 가진 캐릭터로 등장하는 그는 고대인들로부터 ‘엔 사바 누르(절대적 존재)’라고 불리며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마블 코믹스 상에서 ‘셀레스티얼’이라는 외계종족의 능력을 물려받았는데 이들은 창조자의 성향을 가지고 행성을 자유자재로 조종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셀레스티얼은 하나님, 그의 능력을 이어받은 아포칼립스는 예수님으로 치환될 수 있다. 이처럼 창조주를 외계인으로 설정했다는 자체가 기독교의 세계관과 다름을 보여준다. 아포칼립스는 이후에 각기 다른 문명을 돌아다니면서 능력을 흡수하고 점차 강력한 캐릭터가 된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러나 그는 뮤턴트 만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연약한 인간들을 말살하려고 한다. 아포칼립스는 자비로운 예수님보다는 폭군이나 독재자의 모습에 더 가까운데, 이는 영화 초반에 그의 영생을 막으려고 테러를 일으키는 일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절대적인 능력의 신이라면 그는 인신공양을 통해 육체를 바꾸는 시도를 할 필요가 없다. 또 이러한 약점을 이용해서 그에게 대항하는 이들의 등장은 그가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가짜 신’에 다름없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계시록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일부 속성만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성경 속의 하나님은 강한 자들만의 세상을 만들기 원하지 않으신다. 도리어 약한 자들을 구하기 위해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그렇게 보내심을 받은 아들의 사역은 바로 섬김이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마태복음 11장 5절). 온전한 자들이 아닌 치료가 필요한 이들, 연약한 이들을 위로하고 구원하는 이가 바로 기독교의 절대자이시다. 이런 하나님과 영화에 등장하는 가짜 신을 혼동해서는 안되겠다.    


 아울러 아포칼립스가 하수인으로 부리는 ‘4명의 기사’도 요한계시록에 등장한다. 계시록 6장 1절부터 8절까지 네 가지 색의 말이 나오는데 이는 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로 영화 내에서 사일록, 매그니토, 스톰, 아크엔젤과 정확히 대응된다. 아포칼립스는 이들에게 자신의 권세와 힘을 부여한다.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능력을 부어주셨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는 명백히 가짜 신이다. 아포칼립스는 여러 가지 능력을 가진 최강의 돌연변이이지만 엑스맨들의 연대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만다.  


 여기에서는 인간의 힘으로 운명을 이길 수 있다는 인본주의적 성향이 드러난다.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는 시간여행을 통해 인류 역사를 바꾸지만, <아포칼립스>에서는 신 자체와 싸워 승리하고 종말을 피한다. 이것은 곧 인간이 연대하여 힘을 모으면 신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편견과 두려움을 버리고 함께 공존하자는 생각은 찰스 자비에 교수가 시리즈 내내 고수해온 생각이다. 그간 시리즈마다 그는 소수의 진화된 신인류가 힘을 모아 기존 인류사회를 무너뜨리고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극단주의와 싸워왔다. 미국과 쿠바의 갈등을 심화시켜 제3차 대전을 일으키려는 세바스찬 쇼우(<퍼스트 클래스>), TV생중계에서 닉슨 대통령을 살해하여 돌연변이들의 존재감을 세상에 알리려는 매그니토(<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라고 주장하며 인간들을 쓸어버리고자 음모를 꾸미는 아포칼립스(<아포칼립스>)가 찰스 자비에 교수가 싸워왔던 적들이다.

 

 시리즈에서 매번 그가 승리한다는 것은 결국 권선징악의 이야기를 가지는 것이 블록버스터의 조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편견을 버리고 연대한 인간들의 힘이야 말로 세상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실제로 찰스 자비에 교수는 젊은 돌연변이를 모아서 교육하는 학교를 만드는데 그는 돌연변이와 보통 인간이 함께 학교를 다니는 세상을 꿈꾼다. 그에게 있어서 돌연변이는 ‘괴물’이 아니라 ‘재능’이다.


 아포칼립스와의 최후의 격전에서도 프로페서X(찰스 자비에), 매그니토, 진 그레이, 스톰, 사이클롭스, 퀵실버 등이 연대하여 최후 승리를 얻는다. 이들의 연대는 다양한 인종 또는 소수자의 연합을 떠올리게 한다. 찰스 교수는 아포칼립스에게 ‘너는 강할지 몰라도 결국 혼자일 뿐이다’라고 말하며 약한 자의 연대가 강한 자를 이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아포칼립스>는 시리즈에서 드러났던 인본주의에 대한 생각이 신과 같은 절대능력과의 대립을 통해 좀 더 명확하게 부각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아포칼립스>의 엔딩 자막이 다 올라가면 ‘울버린’과 관련된 쿠키영상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엑스맨> 프랜차이즈 시리즈는 계속 제작이 될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엑스맨> 뿐 아니라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항상 강함을 꿈꾸고, 그러한 생각을 자극하는 슈퍼히어로 영화는 계속 등장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능력이 진화된 인간이 어떻게 운명이나 신과 같은 절대적인 가치와 충돌하는지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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