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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hni Nov 05. 2023

맛을 보여 드립니다

<심야식당>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거나 먹는 콘텐츠는 언제나 유행이다. 요리 전문가가 나와 ‘신의 한 수’ 요리법을 전수해주던 과거의 일관된 포맷과는 달리, 이제는 내용이 무척이나 다양하다. 이렇게 음식 또는 요리와 관련한 콘텐츠가 각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음식이 의식주 중 하나로써 인간 생존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인 동시에, 인간에게 지극한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성찬을 보거나, 혹은 그 성찬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는 것(소위 ‘먹방’)만 보더라도 우리는 행복하다.


 태초부터 인간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는 음식은 즐거움도 선사하지만 동시에 많은 배울 거리를 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성서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음식과 요리가 등장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발효’다. 발효는 이집트인들이 처음 발견한 것으로 빵을 만드는 도중에 공기 중의 미생물이 밀가루 안에 들어가 그것이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켜 빵을 부풀리는 과정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누룩의 비유를 통해 발효된 빵처럼 부풀린 삶과 신앙에 대해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주신다. 또한 함께 요리하고 함께 밥을 먹는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심어준다. 널리 알려진 사실대로, 식구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食口’,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식구들이 한 상에 둘러앉았을 때 이루어지는 교육이 바로 ‘밥상머리 교육’인데, 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칠 수 있어 외국에서도 관심이 높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음식’과 관련된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는 능하지만, 정작 직접 요리를 해서 먹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요리에 들이는 시간이 하루에 27분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다. 아울러 ‘차세대 요리사는 슈퍼마켓이다’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어쩌면 그래서 음식 콘텐츠가 더 인기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쁜 하루일과 때문에 요리의 즐거움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그 자리를 값싸고 빠른 ‘패스트푸드’가 대신한다. 


 문제는 패스트푸드가 맛은 있을지 몰라도 영양적인 면에서는 ‘빵점’이라는 사실이다. 값싸게 맛을 내기 위해서는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직접 요리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쉽고 빠르게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의 소비가 많아지고 그만큼 MSG 등 자연의 맛이 아닌 화학의 산물에 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여기에는 진정성 있는 영양은 사라지고 껍데기 맛만 남아있다. 화학조미료에 입맛이 길들여지면, 그 후에는 정상적인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이는 우리의 문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문화도 강렬한 맛을 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작된 문화는 아닐지? 정신적인 건강보다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문화. 무언가 유익한 교훈을 얻기보다는 한순간에 사라지고 마는 일회성 즐거움을 주는 문화. 그런 문화에 우리의 음식이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건강한 음식을 찾아서 먹는 것처럼 정신적으로, 신앙적으로도 교훈을 주는 건강한 문화를 가려서 섭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여기서 만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 도시에 심야에 개장하고 아침에 문을 닫는 가게가 있다. 야근하느라 지친 사람도, 사랑이 깨져서 우는 사람도, 꿈을 잃고 실망하는 사람도, 일상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사람도, 일에 쫓기는 사람도, 상사를 잘못 만나서 하소연하고 싶은 사람도 모두가 환영받는 곳. 바로 <심야식당>이다. 

 모두의 일상이 끝나는 심야시간에 개장하는 <심야식당>은 일본에서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를 끈 작품이다. 정식메뉴는 돼지고기 된장국 하나이지만, 마스터는 손님이 원하는 음식은 가능하면 만들어 준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만화책에는 ‘빨간 비엔나 소시지’, ‘계란말이’, ‘감자샐러드’ 같은 소박한 야식이 매 에피소드마다 넘쳐난다. 배고픈 일반인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는 환영받지 못할 야쿠자, 게이, 쇼걸도 편안하게 모여 배를 채우고, 마음도 채우고, 모두 웃는 얼굴로 돌아가는, 거리 한구석의 안식처가 바로 이 ‘심야식당’이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따뜻한 소울 푸드(soul food)로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는 작은 동네가게 이야기가 재미와 감동을 전해준다는 이 <심야식당>을 보며 나는 생각해 본다. 건강한 교회의 여덟 가지 요소, 그러니까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편안하게 모여 영혼을 채우고 상처를 치유하고 모두 웃는 얼굴로 돌아가는 도심 한복판의 안식처가 바로 우리들의 교회인지를. 모두가 들어야 할 말씀이 있는 교회에 모두가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장벽이 있다면 그것은 문제일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 절로 군침이 넘어간다. 이 만화책을 읽으며 어떻게 하면 말씀을 즐겁게 먹을 수 있을까 또 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가 어쩌면 말씀을 탐하는 ‘미각’이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말씀을 묵상할 때 미각을 활용하며 충분히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천천히 읽는 것이 필요하다. 소믈리에가 와인을 마실 때 급하게 들이키는 것이 아니라 입술을 오므리고 바람을 집어넣어 혀에서 굴리면서 음미하는 것처럼. 그렇게 해야지만 처마 밑 그늘에 100년 동안 묵혀있던 이끼의 맛이 느껴진다(도대체 무슨 맛일까?).


 사람의 구강에는 1만개 이상의 미뢰(味蕾, taste bud)가 있고, 각각의 미뢰 안에 50여 개의 미각 세포가 있어 바쁘게 뉴런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혀의 끝에서는 단맛, 혀 뒤쪽에서는 쓴맛, 혀 앞쪽에서는 신맛을 느끼고, 짠맛은 혀 전체를 통해 느낀다. 이중에서 가장 예민한 것은 쓴맛이다. 쓴맛의 미뢰는 혀 뒤쪽에 마지막 방어선처럼 존재하면서, 쓴맛의 위험물질들이 입안에 들어오면 구역질을 일으킨다. 쉽사리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일단 제지하는 것이다(정진홍,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2』, 21세기북스, 2010, p.240).


 이처럼 말씀을 먹을 때는 맨 먼저 혀끝으로 단맛을 느껴야 할 것이다. 말씀을 읽는 것 자체가 기쁨이 되지 아니하면, 식도락 없이 그저 살기 위해 먹는 것처럼 무미건조한 행위가 될 것이다. 일단, 말씀을 먹되 기뻐함으로 먹자. 그리고 마지막 방어선인 쓴맛의 미각을 통해서는 나에게 주시는 쓰디쓴 말씀은 무엇인지 구별하자. 이 말은 곧 내가 뱉어내야할 위험이나 잘못이 있는가 살펴보자는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혀 전체를 통해 짠맛을 느끼듯이 말씀에 흐르는 스토리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 소금이 생명유지에 직결되듯이, 말씀에서 교훈을 찾아내야 비로소 영적 자양분이 된다.

 

 바쁜 일상에 쫓겨서 제대로 된 말씀의 성찬을 누리지 못하고 그저 주일 아침의 말씀만 허겁지겁 집어 삼키게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 조금씩 미각의 훈련을 통해 스스로 참 맛을 찾아내었으면 좋겠다. 여기서 잠깐. <심야식당>은 만화책이긴 하지만 성인 취향이라 청소년들의 구독에는 주의를 요할 필요가 있다. 또한 다이어트 중인 성인도 ‘심야’ 구독을 주의해야 한다. 허나 후자의 경우에는 <다이어터>라는 웹툰을 함께 읽으면 밀려오는 식욕을 막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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