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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hni Feb 24. 2024

치유의 음식

<남극의 쉐프>

 ‘우리 여기 뭐 먹으러 온 거 아니거든’이라고 도도하게 항변하지만 식사시간을 알리는 소리에 열광하며 달려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영화가 있으니 바로 영화 <남극의 쉐프>이다. 


 해발 3,810m, 평균기온 -54℃의 극한지 남극 돔 ‘후지’ 기지. 귀여운 펭귄도, 늠름한 바다표범도, 심지어 바이러스조차 생존할 수 없는 이곳에서 8명의 남극관측 대원들은 1년 반 동안 함께 생활해야 한다. 이들은 기상학자 대장, 빙하학자 모토, 빙하팀원 니이얀, 차량담당 주임, 대기학자 히라, 통신담당 본, 의료담당 닥터, 그리고 매일매일 대원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선사하는 조리담당 니시무라로 구성되어 있다.

 

 대원들에게 해주는 맛있는 요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눈이 즐겁고 입에서는 군침까지 돌게 만드는 이 영화에서 몇 가지 교훈을 찾아보았다.      


 ① 코이노니아 

 식사교제는 이미 성경에서도 많이 나오는 장면이다. 초대교회에서 떡을 떼며 교제하는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남극의 쉐프>에서는 코이노니아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모든 대원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려 다 같이 시작하는 식사시간은 매일 매일이 똑같고 무료하기만한 그들에게 삶의 낙이 되어주는 시간이다. 절기에는 절기 음식을 챙겨먹고, 생일을 챙겨 파티를 열어 함께 즐거워하는 시간.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각기 다른 환경에서 다른 이유로 왔지만 식탁에 둘러 앉아 하나가 되는 시간이 식사시간이다. 처음에는 귀찮아서, 우울해서 식사를 거르겠다는 대원도 있었지만, 음식을 챙겨들고 그를 찾아가는 니시무라를 통해 대원들은 점점 마음을 열고 하나가 되어간다. 평균 기온 -54도의 극한, 기압은 일본의 60%밖에 안 되어 뭘 해도 숨이 찬 그 곳에서도 따뜻한 식탁이 있었기에 그들은 식사시간에 눈밭을 달려 기지로 돌아온다. 


 음식이란 마음을 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마음을 열지 않고 있는 태신자에게 내가 정성껏 만든 음식을 들고 찾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주일 점심시간에는 교회 식당에서 친한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식사하기보다는 새가족을 찾아 함께 앉아보자. 눈 속을 헤치고 주임에게 오니기리(삼각김밥)를 들고 찾아갔던 니시무라처럼.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② 소명 

 남극은 기압이 낮아 물이 100도가 되기 전에 끓기 때문에 면이 다 익지 않는다. 식재료들은 1년 치를 미리 한꺼번에 가지고 와야 하기 때문에 통조림으로 된 것들과 냉동된 것 밖에 쓸 수 없다. 채소는 약간의 씨앗을 가지고 와서 길러서 사용한다. 생각해보면 음식을 하기에는 열악한 환경이다. 돈 받고 음식을 파는 것도 아니니 대충 굶지만 않게 해줘도 된다. 하지만 니시무라가 만들어 내는 음식은 호텔 최상급 요리를 방불케 한다. 물론 평범한 일본 가정식도 있지만, 한 그릇 한 그릇 정성껏 담아내는 모습을 보면 나라도 달려가서 먹고 싶다. 심지어 비축한 라면을 사람들이 몰래 야식으로 먹어대는 바람에 동이 나자 밀가루를 반죽해서 라면을 만들어 내기까지 한다. 


 사실 니시무라 그는 자청해서 온 것이 아니었다. 다른 대원이 가기로 되어 있다가 사고가 나는 바람에 가족들에게 상의도 제대로 못하고 상사의 일방적인 명령에 의해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끼도 대충 음식을 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헌신이 있었기에 앞서 말한 코이노니아가 그들 안에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간절히 원하던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즐겁게 최선을 다해 일 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그 자리로 부르셨을 때 기쁘게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한다. 칼질 하나, 불 조절 하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완벽한 음식을 만들어 내던 니시무라의 모습을 기억하자. 


 ③ 푸드테라피(음식치료) 

 예수님을 부인하고 갈릴리 바닷가로 돌아가 다시 어부 생활을 하려던 베드로를 찾아가신 예수님은 베드로와 함께 물고기를 구워 드셨다. 베드로는 쥐구멍으로라도 들어가고 싶었을 테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손을 내미셨다. 그의 죄책감을 알고 치료하시고 새 소명을 주신 이 장면이 예수님의 푸드테라피가 아닐까 싶다. 

 극한의 오지에 격리된 8명의 남자들은 하나 둘 향수병에 걸린다. 요즘은 버터가 맛있다며 버터를 통째로 먹는가 하면 라면이 떨어졌다는 말에 의욕을 잃고 시름시름 앓기도 한다. 물론 니시무라도 딸의 아랫니를 다른 사람들의 싸움에 휘말려 잃어버리고 난 뒤 무력해져서 누워만 있게 된다. 


 자신의 몸은 라면으로 이루어져 있다면서 라면이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사느냐고, 밤에 잠도 못 자던 대장을 위해 모토는 니시무라에게 간수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 화학적으로는 가능하다면서. 결국 니시무라는 라면 면발을 만들어내고 모두를 감동시킨다. 이렇게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던 니시무라가 향수병에 걸러 무력해져 있을 때 배가 고파진 대원들은 치킨을 튀긴다. 그리고 니시무라는 그 치킨을 먹으며 예전에 아내가 해주던 눅눅한 치킨을 떠올리며 눈물 흘린다. 이렇게 음식은 때로는 삶의 즐거움을, 때로는 위안과 감동을 준다. 

 베드로를 위해 물고기를 구우셨던 예수님처럼 마음이 어려운 누군가에게 마음과 정성을 담은 요리를 건네고 함께 먹어보는 건 어떨까.      


 이렇게 음식을 다룬 몇 가지 영화와 책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즐거이 받는 방법에 대해서도 식도락에 빗대어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의 몸에 영양분이 되려면, 일단 소화가 되어야 한다. 이처럼 말씀도 우리 안에서 묵상이 되어야 영적인 유익이 흘러나온다. meditation(묵상)과 medicine(약)의 어원이 같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삶의 현장에서 위력이 없는 말씀은 헛된 지식에 불과하다. 명사적인 믿음이 장애물에 부딪힐 때 동사적 믿음으로 변환할 수 있는 에너지가 과연 우리 안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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