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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hni Jan 14. 2024

'여중생a'에게 쓰는 편지

<여중생a>

 영화의 제목은 비록 ‘여중생A’이지만 너는 ‘미래’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 ‘장미래’. 그런데 왜 웹툰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여중생A’라고 표현했을까? 그건 흔히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A모 양’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익명성을 나타내는 동시에 세상의 모든 여중생을 의미하는 보편적 단어 아닐까?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한 여중생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영화 제목을 그렇게 정한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어. 왜일까?

      

 여느 여중생처럼 너도 많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지. 그런데 너의 문제는 좀 더 심각해보여. 왜냐하면 아버지는 술꾼인데다가 상습적으로 너를 폭행하고 있지. 그리고 유일하게 네 편이라고 생각하는 엄마는 일 때문에 너를 돌볼 겨를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다가 너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어. 친구들이 너를 화장실에 가두거나 의자에 분필가루를 묻혀도 너는 그냥 그런 모욕을 당하고만 있지.      


 그러나 그런 너에게는 또 다른 세계가 있어. 시종일관 우울모드로 지내던 학교와는 다르게 집으로 가는 너의 발걸음에는 기쁨이 느껴져. 그 이유는 바로 집에 오면 게임에 접속하기 때문이지. 사람들이 게임에 접속하거나 웹툰을 보거나 TV에 빠져다는 것. 그것은 모두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지. 

 너도 현실에서는 찌질하지만 게임에서는 마법사를 화살 한 방에 보내버리는 멋진 궁수로 활약하지. 그것도 성별도 남자로 바꿔서 말이야. 게임은 네가 유일하게 희열을 느끼는 공간이야.     


 아니, 하나 더 너에게는 너만의 세계가 있어, 그건 바로 글쓰기야. 그 덕분에 너는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반장 백합과 친해지고 네가 쓴 소설을 보여주게 되지. 문제는 너와 백합이 공모전에 같은 소설을 제출하면서 발생해. 거기다가 네가 좋아하던 태양이라는 아이는 백합과 사귀게 되면서 너는 절망에 빠지게 되지. 그러면서 죽음을 꿈꾸게 돼. 엄마에게 유서를 쓸 정도였으니 꽤 심각하게 고민했던 모양이야. 어차피 죽을 건데 학교를 가서 뭐하나 싶어 학교도 나가지 않고.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가 그대로 흘러갔더라면, 너는 정말로 영화 초반에 나오는 것처럼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렸을지도 몰라. 바닥에 피를 흘리며 누워있는 너 자신을 보는 게 사실은 꿈이었지만 어쩌면 현실이 되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너는 죽지 않았어. 본의 아니게 학교 옥상에서 화분을 던지다가 실수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죽지 않았어. 왜일까?      


 가장 큰 이유는 너의 내면에 뭔가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야. 그 변화의 시작은 게임 속 친구인 ‘재희’와의 만남이라고 생각해. 이 친구는 게임에서는 ‘희나’라는 이름의 공주였는데 현실에서는 남자야. 재희는 공원에서 탈을 쓰고 프리허그를 하고 있어. 이 친구는 현실을 여전히 가상세계처럼 살고 있는 신비로운 친구야. 재희도 가까운 미래에 죽을 생각을 하고 있지. 여기 이 세상을 뜨고 싶은 친구가 또 하나 있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너와 재희도 역시 친구 먹기로 하지.     


 너와 재희는 죽기 전 서로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해. 너는 거리에서 연극무대를 꾸며서 태양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재희에게 쏟아 붇지. 내가 볼 때 이건 참 잘한 것 같아. 연극을 통해서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쏟아낼 때 상당부분 치유가 일어난다고 들었어. 너도 역시 그 효과를 본 것 같고. 이때 재희가 너에게 한 말이, ‘이왕 죽을 거면 그 애 한테 진짜로 말하고 죽는게 어때?’ 였을 거야, 아마?     


 여기서 용기를 얻은 너는 학교로 돌아가서 진짜 소설을 쓴 것은 너고 그걸 베낀 건 백합이라고 주장하지. 결국 모든 진실은 드러나고 도리어 백합이 왕따를 당하는 일이 벌어지지. 그러나 너는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처럼 그런 따돌림에 동조하지 않았어. 그것도 참 용기 있는 행동이었지. 너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에게 너는 ‘누구나 한 번은 실수를 하지 않아?’하고 반문하며 백합을 도와줘. 예수님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어. ‘누구든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너의 용서 때문에 결국 영화 마지막에는 왕따를 주도하던 친구와 왕따를 당하던 친구가 모두 벽이 허물어지고 서로 친구가 되지. 너는 현실에서 도피해서 자살을 하는 대신에,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다른 미래를 만들어 낸 거야. 결국 ‘미래는 결정되지 않았어. 우리가 만들어 가는 거야’라는 말을 증명한 거랄까.

 세상 사람들을 따라가지 아니하고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세상 모두가 분노를 외칠 때 도리어 '용서'하기. 이 두 가지가 있다면 비극적 현실도 해피엔딩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교훈을 얻었단다.     

 앞으로는 ‘여중생A’라는 모호한 이름이 아닌 ‘장미래’라는 희망찬 이름을 갖고 살아갈 너에게 항상 좋은 일이 있기만을 바라며 편지를 이만 줄인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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