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라이프 46일차
한국에서 출근이나 이동할 때 지하철은 내 삶의 중심이었다. 도쿄에서도 마찬가지다. 지하철은 여전히 가장 익숙하고 효율적인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익숙함 속에서도 한국과 일본 지하철은 분명 다른 점들이 있었다. 오늘은 도쿄 지하철을 이용하며 느낀 일본만의 특징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아직도 첫날 퇴근 후 집에 가려다 도쿄역에서 한 시간 동안 길을 헤맸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도쿄역은 물론, 대부분의 대형 일본 지하철역들은 믿기 힘들 정도로 넓고, 출구가 너무 많아 복잡하다.
특히 일본의 지하철역은 한국과 다르게 출구가 건물 내부로 연결되거나 여러 층으로 나뉘어 있어, 방향 감각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도전 과제가 될 만하다. 심지어 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조차 인도 위에 크게 보이지 않고, 건물과 건물 사이에 숨겨져 있기도 해서 마치 비밀 던전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도쿄역에 겨우 익숙해질 무렵, 신주쿠역을 방문했을 때 또 한 번 당황했다. 신주쿠역에는 무려 159개의 출구가 있다고 하니, 길 찾기란 쉽지 않다. 지금도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길을 찾아다니는 내 모습이 낯설지만, 언젠가는 이 거대한 미로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걸어 다닐 날이 오리라 믿는다.
도쿄를 걷다 보면 신기한 점 중 하나는 도로에서 버스를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이 점이 의아했지만, 일본 지인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일본은 좁은 도로와 복잡한 지형 탓에 버스보다는 지하철이 더 발달하게 되었고, 역과 역 사이가 촘촘히 연결되어 있어 대중교통의 중심이 자연스럽게 지하철로 옮겨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버스 대신 지하철이나 자전거를 더 많이 이용한다.
버스가 적다 보니 도로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광경도 보기 힘들다. 덕분에 도로가 한결 깔끔해 보이고, 버스를 기다리며 추위나 더위를 견디던 한국 생활을 떠올리면, 잘 발달된 일본의 지하철 시스템이 새삼 부럽게 느껴진다.
요코하마에 놀러갔다가 집에갈때 같은 정차 위치에서도 다른 노선을 기다리는 줄이따로있어 놀라웠다. 일본에서는 같은 위치에 여러 노선이나 열차가 정차하는 경우가 있어보여 놀랐다.
그래서 같은 정차 위치에서도 열차마다 별도로 줄을 서야 한다. 예를 들어, 같은 플랫폼이라도 9호선 열차를 기다리는 줄과 4호선 열차를 기다리는 줄이 따로 표시되어 있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정확한 표지와 안내 덕분에 체계적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는 점이 느껴졌다.
지하철에 대해 일본 지인과 대화를 나누며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바로 지연증명서라는 시스템이다. 일본의 지하철은 정교하게 시간 간격이 정리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특정 시간대에는 지연이 발생하기도 한다. 나 역시 출근길에 지연을 겪은 적이 꽤 있다.
지연의 이유는 다양하다고 한다. 기상 악화, 스크린 도어가 없는 구간에서 동물이나 사람이 선로로 들어가는 사고 등 여러 요인이 있다고 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지하철 지연으로 회사에 늦게 도착했을 경우, 역무원에게 지연증명서를 요청해 제출하면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출근 시간 지하철을 떠올리면 꽤 조용한 편이지만, 일본의 지하철은 그보다 훨씬 더 고요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일본에서는 지하철 안에서 전화 통화를 아예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여겨지지만, 조용히 짧게 통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다르다. 지하철에서 전화 통화를 하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따가운 시선과 경멸 섞인 반응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항상 조심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가 통화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이런 고요함 속에서는 사람들의 매너와 배려를 새삼 느끼게 되고, 이 점이 일본 지하철만의 독특한 문화로 자리 잡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밖에도 일본 지하철에서 흥미로웠던 점이 몇 가지 더 있다. 스크린 도어가 없는 구간이 많아 지하철이 들어올 때마다 강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도 그중 하나다. 또, 지하철역 이름이 표기될 때 한자와 히라가나를 함께 보여준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다른점이 많은 지하철은 아직도 더 알아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