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퇴근길이었다. 매일 타는 3호선에 지친 몸을 싣고 가던 중 갑자기 지하철 안에 기관사님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저 안내 방송인 줄 알았으나,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 같아 끼고 있던 이어폰을 뺐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은 과대평가하고, 자신이 이미 한 일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 경기도와 서울을 매일 오가며 출퇴근하는 것 자체만으로 여러분은 대단한 일을 하고 있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서울에서 경기도를 넘어가는 구간에서 방송해주시는 기관사님의 센스 때문일까. 그 짧은 문장은 내 마음 한편에 깊숙이 남았다. 며칠이 지나도 가끔씩 생각나는 그때의 기억에 기관사님이 해준 말을 찾기 시작했다. 구글 이곳저곳을 뒤지며 나온 것은 '더닝 크루거 효과'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잘못된 결정을 내려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지만,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 그로 인해 능력이 없는 사람은 환영적 우월감으로 자신의 실력을 실제보다 높게 평균 이상으로 평가하는 반면,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실력을 과소평가하여 환영적 열등감을 가지게 된다.
이 현상을 말한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는 이렇게 말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의 착오는 자신에 대한 오해에 기인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의 착오는 다른 사람이 더 잘할 것이라는 오해에 기인한다."
즉 능력 없는 사람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능력 있는 사람은 오히려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런 경험이 있었다. 아니 많았다. 주변에서 흔히들 내게 하는 말 중 하나는, "너는 굶어 죽지는 않겠다.", "할 줄 아는 게 많아서 부럽다." 같은 말인데, 이는 보통 내가 가진 다양한 자격증에서 비롯되는 말이다. 보디빌딩 자격증이라던지, 가구제작기능사라던지, 출판을 한 경험이라던지. 저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항상 그들에게 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별 거 아니야."
어떻게 보면 진짜 별거 아닐 수도 있다. 누구든 노력하면 취득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활동들이니까. 그렇다면 그때의 나는 이 모든 것을 별 거 아닌 노력으로 이루어냈을까. 아니다. 가구제작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매주 주말을 반납하고 공방에서 굳은살이 박힐 때까지 연습했고, 책 한 권을 내기 위해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글을 고치고 쓰기를 반복했다. 내가 이루어 낸 이 성과들이 사람들이 보기에는 결코 별 거 아닌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근데 왜 정작 나는 내가 이루어낸 이 성과들을, 간절했던 그때의 나의 모습을 쉽게 잊는 것일까.
영국의 수학자 겸 철학자인 버트란드 러셀은 "이 시대의 아픔 중 하나는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무지한데, 상상력과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의심하고 주저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고, 이루어 낸 모든 것들을 별 것 아닌 것이라고 폄하하고 무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작 남들은 당신의 노력과 성과들에 대해 박수를 치고 있는데 말이다.
'매일 서울에서 경기도를 오가며 출퇴근하는 여러분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는 3호선 어떤 기관사님의 말처럼 우리는 매일을 대단한 노력으로 채워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고생한 스스로에게 칭찬 한 마디 해주는 것이 어떨까